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이달 초 취임 후 첫 한국 방문을 추진 중인 것으로 30일 알려졌다. 윤석열 대통령의 국빈 방미 기간 일본 정부가 한국을 수출 심사 우대 국가 목록인 ‘화이트리스트’에 4년 만에 포함시킨 데 이어 총리의 조기 답방까지 추진하고 나선 것이다. 강제징용 배상 문제에 대한 해법 발표로 시작된 윤석열 정부의 선제적 외교가 한일 정상회담→ 미국의 긍정적 평가→국빈 방미 환대→한일 ‘셔틀 외교’ 복원이라는 연쇄 성과로 이어지며 우리 주도로 한미 동맹, 한·미·일 협력이 강화되는 선순환을 낳고 있는 모습이다. 윤 대통령은 28일(현지 시각) 하버드대 강연에서 화이트리스트 복귀 결정을 언급하며 “이런 식으로 변해가는 것”이라고 했다.
요미우리신문 등 일본 주요 언론들은 30일 “기시다 총리가 5월 초순 방한해 윤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는 방향으로 조율에 들어갔다”고 보도했다. 방한이 실현되면 2018년 2월 아베 신조 당시 총리가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한국을 방문한 이후 5년 3개월 만이다. 셔틀 외교 차원에서 보면 2011년 이후 12년 만이 된다. 방한 시점은 7~8일이 유력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통령실과 외교부는 “결정된 바가 없다”면서도 협의 중인 사실을 부인하지 않았다.
당초 일본은 이달 19~21일 히로시마에서 열리는 주요 7국(G7) 정상회담 이후 올해 여름쯤 기시다 총리가 방한하는 것을 검토했다. 하지만 G7을 계기로 예정된 한·미·일 정상회의를 앞두고 한일 결속을 과시할 필요가 있고, 한·미·일 협력을 중시하는 미국의 의향도 고려해 조기 방한으로 선회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강제징용 배상, 지소미아(GSOMIA·군사정보보호협정) 등 한일 간 난제에 대해 주도권을 갖고 매듭을 하나하나 풀어온 윤 대통령을 미국이 국빈(國賓)으로 환대한 것이 상대적으로 소극적이었던 기시다 총리의 행동 변화를 이끌어낸 측면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 대통령은 한미 정상회담 모두발언과 기자회견에서 윤 대통령의 한일 관계 개선 노력을 언급하며 “용기 있고 원칙 있는 일본과의 외교에 감사한다. 이는 우리 3국 간 파트너십을 강화한다. 그것은 엄청난 차이를 만든다”고 했다. 빅터 차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 한국 석좌도 “바이든 정부에 한일 관계 개선은 매우 중요하다”며 “일본과 관계를 개선하려는 윤 대통령의 노력을 미국이 긍정적으로 평가한 점이 국빈 방미(訪美) 실현에 영향을 미쳤다”고 했다.
한미가 전례 없는 수준으로 밀착하면서 이제 공은 다시 일본으로 넘어갔다는 분석이다. 기시다 총리가 방한할 때 미국을 의식해 ‘성의 있는 호응’ 조치를 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교도통신은 “일본 정부로서는 당연히 이런 흐름을 간과할 수 없다”고 분석했다.
전직 외교부 고위 간부는 “윤 대통령이 지지율 하락, 야당 반발에도 불구하고 한일 관계 개선에 드라이브를 거는 게 처음에는 거칠게 보였을 수 있지만, 결국 하나둘씩 성과로 이어지고 있다”며 “강제 징용과 역사 문제가 일단락되면 한일, 한·미·일 협력이 지금과는 차원이 다른 수준으로 업그레이드가 될 것”이라고 했다. 앞서 윤 대통령은 하버드대에서 “과거사가 정리되지 않으면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된다”며 “변화가 이뤄지고 흐름이 만들어진다면 한일 정권 담당자들이 변한다 하더라도 그러한 흐름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