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50여 년 전 냉전(冷戰) 시기 한국 기업 활동, 수출을 가로막는 등 제재 정책을 폈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미국의 요청 등을 고려해 베트남전에 국군을 파병하자 이를 문제 삼고 나섰던 것이다.

저우언라이 전 중국 총리/조선DB

1970년 4월 저우언라이(周恩来) 당시 중국 총리는 대만과 한국 등을 겨냥해 일명 ‘저우 4원칙’을 발표했다. 당시는 박정희 정부가 1964년 베트남에 국군을 파병한 지 6년째 되던 해였고, 대만도 미국의 참전 요청을 받은 상태였다. 저우 4원칙은 ①한국 또는 대만과 경제 협력 관계를 맺고 있는 기업과는 무역 거래를 하지 않는다, ②한국이나 대만에 투자하고 있는 기업과 경제 거래를 하지 않는다, ③무기를 생산해 베트남전에서 미국을 돕고 있는 기업과 거래하지 않는다, ④미국 기업의 일본 법인 또는 일본 소재 회사와 무역 거래를 하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중국이 수교를 앞두고 있던 일본 측에 한국·대만에 협력하고 투자하는 일본 기업과는 거래를 끊겠다는 식으로 압박한 것이다.

‘저우 4원칙’으로 인해 한국, 대만 기업에 대한 일본의 투자가 잇달아 취소됐다. 일본 도요타가 중국 눈치를 보고 한국 신진자동차(대우자동차 전신)와 협력 관계를 끊었다. 당시 신진자동차는 도요타와 기술 제휴를 맺고 1500㏄ 승용차 ‘코로나’를 출시하는 등 수출 확대를 노리는 터였다. 일본 미쓰비시나 미쓰이 같은 대기업도 한국·대만과의 거래·투자를 중단했다.

거의 유일하게 신일본제철이 포항제철(포스코)과 기술 제휴를 유지했다. 신일본제철 역시 중국의 강한 압박을 받았지만, 박태준 당시 포항제철 회장과 신의를 저버릴 수 없다며 뚝심을 지켰다. 당시 일본 기업들은 중국과 수교를 맺을 것이라는 전망에 따라 중국 진출 경쟁을 벌이던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신일본제철은 “저우 4원칙은 인정하지만, 포항제철에 대한 기술 원조는 그 원칙에 저촉되지는 않는다”는 입장을 중국 측에 통고했다. 포항제철에 대한 기술 지원은 무역 거래도, 경제 협력도 아니기 때문에 ‘저우 4원칙’ 위배가 아니라는 취지였다. 중국·대만 담당 전직 외교부 고위 관계자는 “중국은 이후에도 압박을 계속했으나 신일본제철이 한국과 거래를 단절할 이유가 없다는 논리를 고수해 사실상 포기했다”고 말했다. 그러다 1972년 중국과 일본이 수교를 맺었고, 이에 따라 ‘저우 4원칙’이 사문화되고 이듬해는 완전히 폐지됐다. 중국의 한국, 대만에 대한 제재도 중단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