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29일 서울에서 열린 첫 한·태평양도서국(태도국·太島國) 정상회의에서 상호 파트너십 구축을 골자로 한 정상선언문을 채택하고 양측의 연대·협력 강화를 위한 행동 계획을 발표했다. 한국 정부는 이번 정상회의에 태평양 중·서부와 남태평양에 있는 피지 등 14국과 호주·뉴질랜드, 프랑스 자치령인 뉴칼레도니아·프렌치폴리네시아 등 태도국포럼(PIF) 회원국 18국 정상 모두를 초청했고, 태풍 피해를 입은 마이크로네시아를 제외한 17국에서 정상 또는 장관급 인사가 참석했다. 한국이 1995년 PIF의 대화 상대국이 된 지 28년 만에 성사된 첫 정상회의다. 작년 말 독자적인 인도·태평양 전략을 발표한 윤 대통령이 그동안 치중해온 한반도 주변 4강(强) 외교에서 태평양 지역으로 외교 지평 넓히기에 나선 것이다. 한국은 태도국 중 유일한 미수교국이었던 니우에와 이날 수교를 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 영빈관에서 한·태도국 정상회의를 주재하고 ‘회복력 있는 태평양의 자유, 평화, 번영을 위한 파트너십’을 천명하는 ‘2023 한·태도국 정상선언문’을 채택했다. 정상선언에서 한국은 태도국의 ‘푸른 태평양대륙 전략’을 지지하고, 태도국은 한국의 대(對)태평양 기여 강화 의지를 환영한다고 밝혔다. 정상들은 선언문에서 ‘규칙에 기반한 지역과 국제 질서 강화를 위한 연대’ ‘기존 태평양 지역 협의체 기반의 태평양 지역주의 지지’ ‘PIF 대화 상대국으로서 한국의 관여와 협력 강화’ 등에도 합의했다. 정상들은 또 해양, 기후, 에너지, 사이버, 보건 분야를 포함한 포괄적 안보 협력과 해양 안전, 불법 어업 대응 역량 강화, 기후변화 대응 등에서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윤 대통령은 “북한이 태평양을 사격장 삼아 핵 미사일 도발 위협을 일삼고 있다”며 “함께 북한의 위협과 도발에 단호히 대처하자”고 했다.
이날 회의에서 한국 정부는 태도국에 대해 공적개발원조(ODA)를 2배 증액해 2027년까지 3990만달러(약 530억 원)로 늘리기로 하고,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재정, 기술 이전, 역량 강화를 위한 지원도 강화하기로 했다. 선언문에는 태도국 정상들이 한국의 2030 부산엑스포 유치 신청을 환영하고, 한국은 2024~2025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비상임이사국 선거 등 국제기구 선거에서 지지해 달라고 요청하는 내용도 담겼다. 태도국 14국 가운데 11국이 엑스포 개최지 투표권을 갖고 있다. 윤 대통령은 “태평양이라는 광활한 바다에서 한배를 탄 이웃인 한국과 태도국이 공동 번영을 위해 힘차게 항해해 나가자”고 했다. 윤 대통령은 이어 “한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의 핵심 파트너가 태도국 포럼”이라고 했다. 김건희 여사도 이날 태도국 정상 배우자들을 초청해 국립중앙박물관과 진관사에서 친교 행사를 하고 한국의 부산엑스포 유치 노력을 알렸다.
정상회의 공동의장인 쿡제도의 마크 브라운 총리는 “코로나 팬데믹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 봤듯이 지역 간 협력은 매우 중요하다”며 “파트너십을 계속 이어가 지속 가능성, 회복 탄력성, 평화와 번영을 구가하게 되길 바란다”고 했다.
한국이 태도국에 이처럼 공을 들이는 것은 이 지역이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전략적 요충지로 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태도국은 최근 미·중 패권 경쟁이 심화하면서 지정학적 중요성이 한층 커지고 있다. 전 세계 면적의 14%에 육박하는 배타적 경제수역(EEZ)을 갖고 있고, 참치 어획량의 70%가 이곳에서 나올 정도로 어족 자원이 풍부하다. 한국 정부는 윤 대통령이 작년 말 독자 인도·태평양 전략을 발표하고 협력 강화에 나섰다.
한편 윤 대통령은 이르면 이번 주 중반 공식 기자회견을 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기자회견은 작년 8월에 이어 대통령 취임 이후 두 번째 회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