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대에 불을 밝혀라!”
1950년 9월 인천상륙작전을 앞둔 시점. 대북 첩보부대 ‘켈로부대’ 요원들에게 인천항 팔미도 등대를 탈환하라는 특명이 떨어졌다. 낙동강까지 밀리며 열세를 면치 못하던 상황. 연합군을 이끄는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은 북한 인민군의 허를 찌르는 인천상륙작전을 결단한다. 낮은 수심의 인천 바다를 가로질러 대규모 전력을 전개하기 위해선 북한군에 점령당한 인천항의 팔미도 등대를 점등해야만 했다. 이 결정적 미션을 ‘군번 없는 군인’ 켈로부대원들이 맡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등대에 불을 밝혔다.
전세를 뒤바꾸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켈로부대. 이 부대엔 부부 첩보원인 이철(남)·최상렬(여)이 있었다. 그리고 이들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은 훗날 육군 장교가 돼 DMZ를 지키는 소대장이 됐다.
국방부는 이날 고인이 된 이철·최상렬 부부를 비롯해 이름 없이, 계급장 없이 6·25전쟁 당시 비정규군으로 나라를 위해 헌신한 ‘숨은 영웅’과 이들 유가족, 관련 단체장 등 18명을 서울 용산 육군회관에 초청해 오찬 간담회를 개최했다.
이날 이철·최상렬 부부 첩보원의 장남이자 1976년 육군 장교로 임관해 최전방 GOP에서 소대장으로 근무했던 이성훈(70) 선생도 참석했다. 그는 GOP 근무 중인 1977년 비무장지대(DMZ) 작전을 하다 지뢰 폭발 사고로 두 다리를 심하게 다치면서도 군인으로서의 본분을 다한 국가유공자다. 그는 이날 휠체어를 타고 웃는 얼굴로 육군회관에 나타났다.
이성훈 선생은 이날 “국가를 위해 헌신한 부모님이 자랑스럽고 국가가 이분들의 희생을 잊지 않고 기억해줘서 고맙다”고 했다. 그러면서 “현재 군 복무하는 분들 모두 국가와 국민을 위해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게 임했으며 한다”고 했다. 이날 간담회에는 6·25 당시 개성 탈환 작전에서 공을 세운 한집안 5형제 유격대 생존자도 참석했다고 국방부는 전했다.
국방부는 2021년 4월 13일 ‘6·25전쟁 전후 적 지역에서 활동한 비정규군 공로자 보상에 관한 법률’ 제정 이후, 6·25전쟁 당시 민간인 신분으로 적 지역에 침투해 첩보수집 및 유격활동 등 국가를 위해 특별한 희생을 하신 이들의 공로를 인정하고 이들에게 공로금을 지급하고 있다. 현재까지 총 2043명이 공로를 인정받았다.
신범철 국방차관은 “나라가 어려울 때 군번도 계급도 없이 적(敵) 지역에 침투하여 군인도 할 수 없었던 위험천만한 임무를 수행하신 데 대하여 국방부를 대표해 진심으로 감사하다”면서 “자라나는 미래 세대가 애국 헌신하신 분들이 ‘국가의 영웅’임을 알게 하고 그 숭고한 정신을 공유할 수 있도록, 교육・홍보 강화 및 사료(史料) 보존 등 비정규군 예우정책을 적극적으로 살피겠다”고 밝혔다.
임천영 보상심의위원장도 “비정규군 공로자를 한 분이라도 더 찾고 공로를 인정받으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며, “공로자 대부분이 85세 이상의 고령자임을 감안해 신속한 보상으로 이분들의 명예를 회복하고 자긍심을 높이는 계기가 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한국유격군총연합회 박충암 회장은 “20대 젊은 나이에 오직 조국을 수호하고 고향을 수복하겠다는 신념으로 유격부대에 입대했다”며 “적 지역에서 여러 작전을 펼치며 피 흘린 전우와 살아남은 전우의 고귀한 희생을 70년 지난 지금이라도 인정해 오늘과 같은 행사를 마련해준 국방부와 보상법률이 제정될 수 있도록 힘쓴 의원들에 감사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앞으로도 6·25 비정규군의 헌신을 후세들이 있지 않고 기억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