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1일 강원도 화천 15사단 수색대대에서 만난 방가영(22) 하사는 ‘월화수목금금금’보다 못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요일 구분 없이 6일 단위로 반복되는 일과는 이렇다. 첫째 날, 실탄 사격·작전 토의 등 DMZ(비무장지대) 수색 작전 예행연습을 한다. 둘째 날, 완전 무장을 하고 DMZ 지뢰밭에 들어가 수색로를 확인하고 정찰 작전을 한다. 셋째 날, 전날 작전 결과를 정리·보고하고 개인 화기를 점검한다. 병사들도 챙긴다. 넷째 날, 다음 날 실시할 DMZ 야간 매복 작전 준비를 한다. 사격 훈련을 한다. 다섯째 날, 장시간 DMZ 인근에서 대기하다 DMZ에 들어간다. 군사분계선(MDL) 인근에서 밤새 매복한다. 여섯째 날, 정비를 하며 휴식 시간을 갖는다. 하지만 다음 날 작전 준비하는 ‘첫째 날’로 돌아가기에 마음 편히 외출할 수 없다. 하더라도 주변에는 영화관 등 즐길 여가 시설이 없다.
방 하사는 민간 기업에서 일하는 또래들과 비교될까 봐 인스타그램 같은 소셜미디어는 일찌감치 끊었다고 한다. 방 하사는 “어릴 적부터 군인을 동경해 군인이 됐고, 지금도 최전선을 지킨다는 사명감으로 산다”면서 “다만 병력 충원이나 과학화 장비 도입 등을 통해 짧은 주기로 찾아오는 수색·매복 작전에 대한 업무 부담을 줄일 필요는 있다”고 했다.
최전방에 초급 간부를 위한 정식 ‘숙소’는 없었다. 대신 ‘작전대기실’이라는 공간에서 산다. 이날 차를 타고 MDL을 향해 산속에 들어갔더니 30여 명의 장병이 3개월간 머물며 경계 근무를 서는 2층짜리 소초가 나왔다. 학군사관후보생(ROTC) 출신으로 임관 11개월 된 윤준섭(26) 중위가 이 소초를 책임지는 소초장이었다. 그의 잠자리는 2층 병사 내무실 건너편의 상황실 옆 소초장실 겸 작전대기실에 있었다. 사실상 ‘퇴근’이 없는 구조다. 군 관계자는 “GOP 지역은 임무 특성상 숙소라는 게 따로 있지 않고, 작전대기시설을 침실로 쓴다”고 했다.
부소초장(중사)과 하사 4명은 소초 건물 뒤 컨테이너형 가건물을 작전대기실로 썼다. 각자 13.5m²(4평)의 공간에 작은 침대· 세탁기·냉장고 등을 두고 지냈다. 소초 뒤편이라 빛이 거의 들지 않았다. 한 부사관은 “8시간씩 하루 3교대 경계 근무를 서기에 낮에 자고 밤에 활동하는 경우도 많아 빛이 안 드는 게 나쁘지만은 않다”고 했다. 군에 따르면, 전체 GOP 소초의 30~40%에는 이런 수준의 ‘작전대기실’조차 보급되지 않은 실정이라고 한다. 부사관 상당수가 병사와 같이 내무실에서 지낸다는 것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대기실 보급을 빠르게 늘려나가고 있다”면서 “초급 간부 근무 여건 개선을 위해 다양한 방안을 고심 중”이라고 했다.
소아과, 산부인과 등 병원은 물론 약국조차 없을 정도로 열악한 생활 여건도 간부 사기를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꼽힌다. 결혼 기피 직업군이 되기 십상이고 결혼을 하더라도 안정적인 가정생활 유지가 어렵기 때문이다. 전방의 한 장교는 “얼마 전 아이가 독감에 걸려 고열로 엉엉 우는데 집 근처에 작은 의원 하나 없어 약 처방도 받지 못했다”면서 “내 몸이 아픈 건 참겠는데, 아내·아이가 간단한 진료도 받지 못할 때는 자괴감이 든다”고 했다. 15사단 간부들이 사는 화천도 소아과를 가려면 차로 3시간 거리인 춘천까지 가야 한다고 한다.
병사들의 군 복무 기간은 갈수록 줄어 18개월로 단축되고, ‘병사 월급 200만원’ 정책이 시행돼 초급 간부들의 상대적 박탈감이 더욱 커지고 있다. 2018년에 초급장교 연봉은 병사에 비해 6.9배 많았는데, 올해는 2.4배가 됐고, 2025년에는 1.6배로 줄어든다. 같은 기간 병사 대비 부사관 연봉도 6.5배에서, 2.2배, 1.4배로 줄었다. 3사 출신인 김남규(27) 중위는 “돈은 둘째 치고 군을 깔보는 사회의 시선, 간부라는 ‘명예’마저 땅에 떨어진 것은 참기 어렵다. 힘이 쭉 빠진다”고 했다. 용인대 군사학과 김의식 교수는 “정치권이 표심을 의식해 병사 처우 개선에만 신경을 쓰다 보니 상대적으로 간부에게 소홀했다”면서 “이들이 정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균형을 맞추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