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은 14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국가유공자 및 보훈 가족 190여 명과 오찬을 함께하며 “전쟁의 폐허를 딛고 눈부신 번영과 발전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공산 침략에 맞서 자유를 지켜온 호국 영령들의 피와 땀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날 오찬에는 6·25 참전 유공자를 비롯해 제1·2 연평해전과 천안함 폭침 등 서해 수호 장병과 유족들이 참석했다. 특히 대간첩 작전 전사자 유족과 납북자 가족 등도 정부 주최 오찬 행사에 처음으로 초청받았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그간 문재인 정부에서 남북 대화 등을 이유로 각광받지 못했던 인사들을 예우하겠다는 것”이라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14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국가유공자 및 보훈가족 초청 오찬에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헤드 테이블에서 윤 대통령 옆에는 최원일 천안함 전(前) 함장이, 김건희 여사 옆에는 천안함 승무원 고(故) 민평기 상사의 어머니 윤청자 여사가 자리했다. /대통령실

윤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는 이날 영빈관에 먼저 도착해 참석자들을 직접 맞이하며 일일이 악수했다. 윤 대통령은 오찬장으로 이동해 6·25 참전 유공자회 손희원 회장과 김창석·이하영 이사에게 ‘영웅의 제복’을 직접 입혀주며 태극기 배지를 달아줬다. 이 제복은 과거 참전 유공자들이 단체복처럼 입던 허름한 조끼를 대신한 것이다. 외국 참전용사들이 행진 때마다 입고 나오는 제복에 비해 우리 단체복은 영웅들을 상징하기엔 너무 부족하다는 평가가 많자 국가보훈부가 예우 차원에서 전문가들과 협업해 새로 만들었다. 리넨 소재의 콤비형 재킷과 하의, 반팔 셔츠, 넥타이로 구성돼 있고, 셔츠에는 6·25 참전용사임을 보여주는 기장과 훈장을 달았다. 과거에는 단체복을 개인이 구매해야 했지만, 새 영웅 제복은 참전 유공자 전원에게 무료 제공할 예정이다. 윤 대통령은 “이 제복에는 영웅들의 희생과 헌신을 잊지 않겠다는 정부의 다짐이 담겨 있다”고 말했다.

오찬장 헤드테이블의 윤 대통령 바로 옆에는 지난 6일 현충일 기념식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에게 다가가 이래경 전 혁신위원장의 ‘천안함 자폭’ 발언 등에 항의한 최원일 전 천안함장이 앉았다. 윤 대통령은 최 전 함장에게 “힘든 시기를 보냈을 텐데 어려운 발걸음 했다”며 위로했다고 이도운 대변인이 전했다. 김건희 여사 옆에는 2020년 당시 문재인 대통령에게 다가가 “천안함은 누구 소행이냐”고 물은 고(故) 민평기 상사의 어머니 윤청자 여사가 앉았다.

특히 1968년 북한 무장 공비의 청와대 습격을 저지하다 전사한 최규식 경무관의 자녀 최민석씨와 손녀 최현정씨, 1999년 제1 연평해전 주역 안지영 해군 대령과 허욱 해군 대령도 역대 정부 오찬 행사 최초로 초청받았다. 윤 대통령은 지난 6일 현충일 추념식 후 42년 만에 역대 대통령 중 처음으로 대간첩 작전 전사자 묘역을 방문했다.

오찬에는 또 최성용 납북자가족모임 대표도 처음으로 초청됐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납북자 문제를 외면하지 않겠다는 것”이라고 했다. 앞서 김건희 여사는 지난 4월 경기 파주의 국립 6·25전쟁 납북자기념관에서 납북자·억류자 가족들을 만나 “너무 늦게 찾아뵈어 죄송하다”고 위로했고, 가족들은 “그동안 역대 어느 대통령이나 영부인도 우리를 만나주지 않았는데 희망이 생긴다”고 사의를 전한 바 있다. 북한에 강제로 끌려간 납북자는 6·25전쟁 이후 3800여 명으로 이 중 516명이 돌아오지 못했다.

윤 대통령은 인사말에서 “자유 민주주의 국가를 건설하고 수호하신 분들, 나라의 주인인 국민의 안전을 위해 희생하시는 분들을 제대로 기억하고 예우하는 것이야말로 우리 모두 우리나라의 주인이고 주권자라는 것을 확인시켜 주는 것”이라고 했다. 또 “(보훈은) 헌법 정신을 실천하는 것”이라며 “제복 입은 영웅과 그 가족이 존경받고 예우받는 보훈 문화가 확산돼야 한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여러분이 바로 오늘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영웅”이라고 했다.

오찬에는 상륙작전이 펼쳐진 인천의 갯벌장어구이, 화살고지 전투에서 승리한 철원의 오대쌀로 만든 비빔밥 등 6‧25 당시 주요 격전지의 특산물을 활용한 음식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