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첩 행위의 정의와 법 적용 범위, 조사 당국의 직권을 대폭 확대한 중국의 방첩법(반간첩법) 개정안이 다음 달 1일부터 시행된다. 법 규정이 모호하고 당국의 자의적인 해석이 가능해 25만명이 넘는 우리 교민과 기업 활동이 위축될 가능성이 커졌다. 중국 정부가 ‘국가 안보’를 이유로 처벌을 남발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외교부는 “관광·체류 시 예상치 못한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법안을 숙지해 조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2014년 이후 9년 만에 개정된 법안은 간첩 행위의 적용 대상을 ‘국가 기밀·정보를 빼돌리는 행위’에서 ‘국가 안보 및 이익에 위배되는 활동’으로 확대한 것이 핵심이다. ‘국가 안보와 이익’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아 중국 당국이 자의적인 판단을 할 가능성이 커졌다. ‘비밀 문건’으로 분류되지 않은 데이터·자료·물품 등도 유출하면 처벌 대상이 된다. 외교 소식통은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 비판 기사를 검색하거나 저장·가공하는 행위만으로도 중국 당국의 오해를 살 수 있게 됐다”며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같은 법이라는 우려가 있다”고 했다.
개정안은 ‘제3국을 겨냥한 행위라도 중국의 국가 안전이 위협받으면 법 적용이 가능하다’고 돼 있다. 이에 따라 북한 등 민감한 현안과 관련된 학계 인사를 면담하거나 북·중 접경 지역을 촬영하는 현지 언론 활동이 위축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국가안전기관이 신체·물품·장소를 검문하고 재산 정보 등 광범위한 자료를 열람할 수 있는 권한도 부여했다. 또 ‘당국의 간첩 행위 조사에 반드시 협조해야 하고 증거 수집을 거부할 수 없다’는 의무 조항도 신설됐다.
이에 따라 여행객들은 현지에서 사진 촬영을 할 때 군사시설, 방산업체, 보안구역 등이 찍히지 않도록 유의하는 자세가 요구된다. 시위 현장 주변을 방문하거나 시위대를 직접 촬영하는 것도 적용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가급적 방문을 삼가는 것이 좋다. 또 현지에 진출한 우리 기업 상당수가 시장 조사, 정보 수집을 위해 컨설팅 업체를 고용하고 있는데 이 부분도 재점검이 필요하다. 다만 현재까지 축적된 처벌 사례가 없기 때문에 주중 대사관과 소통하면서 각별히 유의하는 것 말고 뾰족한 대안은 없는 상황이다. 정부는 법 시행 초기 이행 동향을 지켜보면서 재외 국민과 기업에 미칠 영향 등을 심층 분석해 대응하겠다는 입장이다. 또 7월부터 여행객들에게 중국 입국 시 멀티미디어메시지(MMS)를 발송하고 여행 업계와 간담회를 갖는 등 당분간은 주의 사항을 알리는 데 주력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