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을 국빈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23일(현지시간) 하노이 주석궁에서 열린 한·베트남 정상 공동 언론발표를 마친 뒤 보 반 트엉 베트남 국가주석과 함께 박수치고 있다./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과 보 반 트엉 베트남 국가주석이 23일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 이행을 위한 행동 계획에 합의한 것은 아세안과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경제·안보 협력을 강화하는 게 양국의 전략적 이익에 부합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공급망 탈(脫)중국화 흐름 속에서 공급망을 다변화하고 글로벌 경제 위기 극복을 위해 양국 간 교역·교류 확대가 필수적이란 데 뜻을 같이했다는 것이다. 외교 소식통은 “경제 협력을 고도화하면서 방산 등 안보 협력도 강화해 인도·태평양 지역에서의 중국 팽창을 견제하면서 발전 동력을 이어가자는 데 양국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것”이라고 했다.

尹대통령, 호찌민 묘소 참배 -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23일(현지 시각) 베트남 하노이 호찌민 묘소에서 헌화하고 있다. 베트남 독립을 이끈 국부(國父) 호찌민 전 국가주석이 안치된 이곳은 김대중 전 대통령을 시작으로 역대 한국 대통령이 베트남 방문 때 참배했다. /뉴시스

양국 정상이 이날 정상회담에서 채택한 행동 계획은 크게 다섯 분야다. 외교·안보 협력 강화, 교역 확대, 희토류 등 핵심 광물 공급망 협력, 국민 교류 증진, 베트남 지속 발전 지원 등이다.

윤 대통령은 이날 정상회담 후 양국 공동 언론 발표를 통해 “격상된 양국 관계에 걸맞게 우리의 협력을 더욱 공고히 하고, 인도·태평양 지역의 자유, 평화, 번영에 기여하기 위한 방안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양국은 그간 경제 중심 협력에서 나아가 외교·안보·방산 협력도 강화하기로 했다. 한국 해경의 퇴역 함정 양도, 해군·해경 간 협력 강화 등 아세안 지역 해양 안보 협력·공조 강화도 추진하기로 했다. 마약 거래 등 국제 범죄 정보 교류와 수색 구조 협력 등을 목표로 한 이 합의는 베트남의 연안 치안력 강화를 표방하지만, 최근 남중국해에서 베트남을 비롯한 아세안 국가들과 영유권 분쟁을 벌이는 중국 견제 성격도 깔린 것으로 보인다.

그래픽=이철원

윤 대통령은 지난해 공개한 ‘한·아세안 연대 구상’과 ‘인도·태평양 전략’에서 ‘힘에 의한 일방적 현상 변경 반대’ 입장을 명확히 했다. 이는 중국의 지역 내 패권 팽창에 대한 견제 뜻으로 해석됐다. 윤 대통령이 트엉 주석과 이날 희토류 등 핵심 광물 자원 협력을 강화하기로 한 것도 미국·중국 간 전략 경쟁이 격화함에 따라 공급망 탈중국화가 가속하는 상황과 관련이 있다. 베트남은 희토류·보크사이트(매장량 세계 2위), 텅스텐(세계 3위) 등 핵심 광물이 풍부하다.

한·베트남은 윤석열 정부 출범 후 반년 사이 정상 상호 국빈 방문을 통해 양국 관계를 최고 단계인 ‘포괄적 전략 동반자’로 격상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회담에서 “최근 엄중한 국제 정세와 글로벌 복합 위기 속에서 양국 간의 공조가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하다”며 “트엉 주석과 자유·평화·번영의 인도·태평양 지역을 위한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협력 방안을 논의하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트엉 주석도 한국을 경제 발전과 대외 정책의 “우선순위 국가”로 규정했다.

베트남을 국빈 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과 보 반 트엉 베트남 국가주석이 23일(현지시간) 하노이 주석궁 대정원에서 열린 공식환영식에서 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다./연합뉴스

1억명이 넘는 인구와 풍부한 자원을 갖고 작년 8%대 성장을 기록한 베트남은 한국의 3대 교역국이다. 글로벌 경제 위기 극복을 위해 양국 교역의 역동성을 살려야 한다는 점에서도 고도성장을 이어가는 베트남은 한국에 중요하다. 윤 대통령은 지난 21일 보도된 베트남 국영 통신사 VNA 인터뷰에서 “올해 양국 간 교역이 마이너스 성장을 하고 있다”면서 “협력의 범위를 제조업 위주에서 금융과 유통, IT, 문화 콘텐츠 등으로 고도화하고 협력의 방식도 수평적 분업 관계로 나아가야 한다”고 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베트남이 그동안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를 맺은 나라는 러시아·중국·인도뿐이었다”며 “베트남 역시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한국과 핵심 이익을 공유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했다. 베트남도 고도성장을 이어가기 위해 중국의 팽창을 적절히 견제하면서 공급망 탈중국 흐름을 자국 발전 기회로 삼겠다는 전략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양국은 이미 중국 견제를 위해 미국 주도로 지난해 결성된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 회원국으로 지난 5월 정부 간 공급망 협정 체결에도 함께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