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이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이 3일 “한·중·일 3국은 지리적으로 분리될 수 없다. 지금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교류 증진이 중요하다”며 “비바람이 지나간 뒤 햇빛이 찾아오듯 기회를 움켜쥐고 손잡고 나아가 세 나라와 지역에 더 많은 공헌을 해야 한다”고 했다. 왕 위원은 이날 한·중·일 3국 협력사무국(TCS)이 중국 산둥성 칭다오에서 개최한 ‘3국 협력 국제포럼(IFTC)’에서 참석자 사전 면담과 연설에서 이같이 말했다.
왕 위원은 “현재 ‘역사의 변곡점’을 맞이하고 있다. 한·중·일 3국 정상회의 및 외교장관 회의 등을 위한 분위기 조성이 필요하다”고 했는데, 미국과의 패권 경쟁 속 이웃 국가인 한국과 일본을 상대로 ‘상황 관리’에 나선 것이란 얘기가 나왔다. 왕 위원은 “3국은 아시아인이란 뿌리를 인식해야 한다” “관계 개선에 자신이 있다”며 한·중·일 협력의 중요성도 여러 번 강조했다.
올해 10회째를 맞는 IFTC에 중국 외교 라인 서열 1위가 직접 참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019년 이후 4년 만에 대면으로 개최된 이날 포럼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한·중·일 협력 활성화’를 주제로 약 3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왕 위원은 ”중국은 향후 더 높은 수준의 대외 개방에 나설 것”이라며 “한일이 중국이란 고품질 발전의 쾌속열차에 올라타 아시아의 아름다운 미래를 함께 만들자”고 했다. 구체적인 협력 분야로 인공지능(AI), 자동차, 디지털 등을 언급하며 “손을 맞잡고 협력하자”고 했다. 또 협상이 진행 중인 한·중·일 자유무역협정(FTA)과 2020년 중국 주도로 체결된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의 이행을 언급하며 “여러 다자 간 협력 시스템을 통해 서로 이득을 얻자”고도 했다. 다만 왕 위원은 대만 문제에 대해서는 “한·중 수교 당시의 정신이 후퇴해선 안 된다”고 했다. 이어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일대일로(一帶一路·육해상 신실크로드) 사업을 제안한 지 10년이 지났다”며 “한일도 여기에 동참하기 바란다”고 했다.
한·중·일 3국 유대와 협력을 강조한 왕 위원의 이날 발언은 싱하이밍(邢海明) 주한 중국 대사를 둘러싼 설화 논란으로 한·중 간 긴장이 고조되고, 미·중 경쟁 속 한·미·일이 전 분야에서 밀착하고 있는 가운데 나왔다. 왕 위원과의 사전 면담에 배석한 한 인사는 “미·중 갈등 같은 어려운 상황 속에서 기존의 한·중·일 협력을 활성화해 한중·중일 관계를 개선하려는 접근이 느껴졌다”고 했다. 우리 정부도 연말에 서울에서 한·중·일 정상회의를 개최하겠다는 의지가 강한 상황이라 지지부진했던 3국 협력에 탄력이 붙을 것으로 보인다. 한·중·일 정상이 한자리에서 만난 건 코로나 직전인 2019년 12월이 마지막이었다.
왕 위원은 이날 한·중·일 3국 간 공통점과 유대를 강조하는 데 발언의 상당 부분을 할애했다. 왕 위원은 인사말에서 “코로나 3년 동안 세 나라 사람들은 서로 도우며 한 배를 탔고 어려움을 극복한 수많은 감동적인 이야기를 남겼다”며 “가까운 이웃의 정을 충분히 보여준 것”이라고 했다. 왕 위원은 한·중·일 교류 협력의 역사를 회고하며 “중국은 세계 제2의 경제 규모를 가진 나라가 됐고 한국은 선진국이 됐고 일본도 많은 정치·경제 이득을 누렸다” “수교 때의 정신으로 좋은 분위기를 조성하자”고도 했다.
다만 왕 위원은 이날 “일부 국가의 패권적 행태에 반대한다” “한일이 세계 각국과 관계를 발전하는 것을 존중하지만 어떤 관계도 주변국을 억제·봉쇄하는 데 쓰여서는 안 된다”고 했다. 국가명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진 않았지만 미국의 동맹인 한국·일본 앞에서 미국을 견제하는 발언을 한 것이다. 또 “대만 문제에 대한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했는데, 1992년 한·중 수교 당시 우리 정부가 동의한 이른바 ‘하나의 중국’ 입장은 양보할 수 없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중국은 지난 4월 윤석열 대통령이 로이터 인터뷰에서 “대만해협의 긴장은 힘에 의한 현상 변경 시도에서 벌어진 것”이라고 말하자 이를 ‘하나의 중국’ 원칙을 훼손한 것으로 간주해 크게 반발했다. 왕 위원은 방류가 임박한 것으로 알려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에 대해선 “근린 국가, 국제사회와의 협력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했다.
박진 외교부 장관과 하야시 요시마사(林芳正) 일본 외무상도 이날 영상으로 축사를 보냈다. 박 장관은 “한·일·중 3국에는 공통적으로 ‘전화위복(轉禍爲福)’이란 말이 있다”며 “다양한 도전 과제를 극복하며 우정을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시대적 사명”이라고 했다. 개회식에서 연사로 나선 강창희 전 국회의장은 “(3국) 정상회의를 개최하면 여러 이득이 있을 텐데 3국이 협력을 방해하는 요인을 조속히 해소했으면 한다”며 “(회의를 하면) 북핵 문제 해결 방안도 반드시 논의됐으면 한다”고 했다. 하야시 일본 외무상도 “세계의 다양한 도전 과제들에 대응하기 위해 3국 협력을 발전시켜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이날 열린 TCS 국제포럼은 조선일보와 일본 아사히신문, 중국 인민일보가 공동 후원했다. 어우보첸(歐渤芊) TCS 사무총장은 “한·중·일 협력은 동북아 평화와 안정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번영과 발전을 위해서도 필수적”이라며 “지역이 직면한 도전 과제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3국 협력을 더욱 촉진하는 것은 중요하며 불가결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