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 분열, 좌우 대립, 남남 갈등을 유발하기 위한 북한의 심리전이 갈수록 거세짐에 따라 평시에 이에 대한 대처 방안을 마련해놓지 않으면 전시(戰時)엔 되돌릴 수 없는 타격을 입을 것이라는 지적이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전면전 시 북한은 대한민국 사회를 내파(內破)시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가짜 뉴스를 살포할 것”이라며 “범정부적 콘트롤타워를 설치하고 민·관·군이 한 몸이 돼 북한의 심리전에 경각심을 갖고 대처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전면전이 발발하면 북한은 국내 고정 간첩과 반(反)국가 세력을 총동원, 인터넷 심리전 우위를 점하려고 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전쟁 초반 한국 사회의 혼란을 극대화하기 위해 ‘대통령 등 전쟁 지휘부가 외국으로 도주했다’ ‘아군이 전방에서 전멸하고 있다’ ‘미군이 한국에서 철수 중’ 같은 가짜 뉴스를 뿌려댈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최근 초등학교 교사 자살 사건과 관련 특정 정치인이 연루됐다는 근거 없는 소문이 삽시간에 퍼져 큰 파장이 일었던 것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가짜 뉴스에 취약한지를 여실히 보여줬다. 북한이 전시엔 그 약점을 총력을 다해 노릴 것이라는 얘기다.
정부 관계자는 24일 “평소 대한민국 사회 내 계층·집단 간 분열을 조장하고 내란을 획책하던 세력이 최고조로 준동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가짜 뉴스를 통해 일반 시민의 공포·불안을 조장, 소요 사태를 일으켜 후방을 교란시킨다는 전략이다. 북한은 이런 혼란을 틈타 전화국·유류저장소 등 국가 주요 시설을 타격, 후방에 치명타를 주겠다는 작전을 갖고 있다. 가짜 뉴스가 사회 도처에 동시다발적으로 창궐하고 주요 기반 시설이 도미노식으로 파괴되면 전쟁 수행 능력이 급격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럴 경우 전방에서 제대로 된 전투를 하기도 전에 전쟁이 끝나버릴 수도 있다. 압도적 경제력과 군사력도 심리전에 말리면 제 역할을 할 수 없다는 얘기다. 한 예비역 장성은 “대한민국은 고도로 민주화한 사회이기 때문에 전면전 수행 역량에 민간 여론이 절대적 영향을 끼친다”며 “교묘한 심리전으로 정부에 대한 신뢰를 훼손, 정부 전복 시도까지 할 수 있다”고 했다. 베트남전 당시 남베트남에서 암약하던 간첩들은 사회 혼란과 갈등을 부추겼다. 이 나라는 결국 미국의 최신 무기를 지원받고도 국론 분열로 패망했다.
전쟁이 발발해도 민간 통신망이 모두 먹통이 되는 것은 아니다. 우크라이나 역시 트위터 등 각종 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아군의 사기를 북돋고 국민을 안심시키는 데 적극 활용했다. 전옥현 전 국정원 차장은 “지금도 인터넷은 대통령 탄핵을 아무렇지도 않게 언급하는 등 준(準)전시 상황인데 진짜 전쟁이 나면 가짜 뉴스가 엄청나게 위험해질 것”이라고 했다. 인공지능(AI) 기반 이미지 합성 기술인 딥페이크까지 활용한다면 한국 사회의 동요는 엄청나진다. 대통령의 항복·도주 선언 같은 가짜 영상까지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군은 기본적인 대민(對民) 심리 작전이 포함된 전쟁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군의 역량만으로 재래전과 심리전이 결합한 ‘하이브리드 전쟁’에 대응하기는 역부족이다. 전시에 북한이 대량 급조한 유해 계정을 차단하거나 긴급 영장 등으로 고정 간첩이나 종북 세력을 제거해야 하는데 인적·제도적 장치가 미비하기 때문이다. 평시 이런 업무를 하던 국정원·방첩사·사이버사 등은 문재인 정부 시절 각종 수사에 시달리며 전시 작전 수행 능력에 손상을 입은 상태다.
한국국방안보포럼 신종우 전문연구위원은 “군뿐 아니라 행정안전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방송통신위원회 등의 기능을 한데 모은 범정부적 콘트롤타워가 필요하다”고 했다. 또 군의 전시 작전 계획뿐 아니라 행안부의 ‘충무 계획’ 등 민간 대비 계획에도 이러한 심리전 대응책이 구체화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합참 계엄 계획이나 충무 계획 훈련이 형식적으로만 이뤄졌던 관행도 개선돼야 한다.
전문가들은 “평시 인터넷에 올라오는 각종 가짜 뉴스는 사회의 분열을 노린 북한의 공작일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한다. 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장은 “북한 통일전선부가 최근 기조를 사이버 심리전으로 전환했다”고 했다. 북한이 58개 사이트를 운영하며 유튜브 등 소셜미디어를 통한 사이버 심리전을 강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유 원장은 “북한 공작원은 한국 젊은이들에게 친숙한 유행어를 사용하며 인터넷에서 함께 어울리고 있다”며 “가치관이 정립되지 않은 청소년들이 친북·좌경화하지 않도록 ‘대항 심리전’에 나서야 한다”고 했다.
아산정책연구원 양욱 연구위원은 “북한의 심리전 공작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이 낮아진 상황”이라며 “국가 안보에 대한 우려마저 정치 공세로 매도됐기 때문”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인터넷 심리전, 여론 조작이 사회 질서를 해치거나 정부 기능을 마비시키는 위험에 맞서려면 ▲인터넷 실명제 ▲특정 국가 사이트 접속 제한 ▲정부·언론의 팩트 전달 기능 강화 등의 정책적 대비가 필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