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동포회, 선민네트워크 등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지난해 7월 서울 중구 중앙우체국 앞에서 집회를 갖고 "중국의 탈북민 강제 북송에 반대한다"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스1

유엔인권최고대표사무소 서울사무소(OHCHR Seoul) 가 탈북민 강제 북송(北送) 저지를 위한 복수의 행사에 초대를 받았지만 잇따라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중 국경 개방으로 중국에 구금된 최대 2000여명의 탈북민들이 강제 북송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이를 앞장서서 문제 제기하고 바로잡아야 할 사무소가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는 것이다. 국내 대북인권단체들은 “사무소가 지나치게 중국 눈치를 보고 있는 것 아니냐”며 격앙된 반응을 보이고 있다.

11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통일준비국민포럼·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 모임 등 2개 단체는 11일 열리는 ‘강제 북송 저지를 위한 긴급 세미나’ 주최를 앞두고 사무소에 참여를 요청했다. 하지만 사무소 측은 ‘휴가 가능성이 있다’며 확답을 주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주최 측 관계자는 “시간이 지체돼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어 다른 분으로 섭외를 결정했다”고 했다. 또 다른 국회의원실도 중국의 강제 북송 관련 세미나 개최를 앞두고 사무소 측에 참여를 타진했지만 참여가 어렵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한다.

이 때문에 국내 북한인권 활동가들은 “위의 행사들에서 북한의 탈북민 송환 요구에 보조를 맞추는 중국 정부에 대한 비판이 많이 나올텐데 이런 상황이 불편해 고의로 피한 것 아니냐”하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외교 소식통은 “비교적 ‘언론의 자유’가 있는 유엔인권이사회(UNHRC)의 북한인권특별보고관과는 다르게 사무소 직원들은 기본적으로 유엔 공무원이라 제네바(본부) 허락 없이 민감한 현안에 대해 언급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했다. OHCHR은 지난해 8월 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 인권 문제가 적시된 보고서를 발간해 ‘반(反)인륜적 범죄’라 비판했는데, 이에 대해 중국 외교부가 “소수 서방 국가 세력이 기획한 소동”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지난 2015년 6월 유엔인권최고대표사무소 서울사무소가 개소했을 당시 서울 종로구 글로벌센터에서 열린 개소식에서 윤병세 당시 외교부 장관(왼쪽에서 셋째)과 자이드 라아드 알 후세인 유엔인권최고대표(왼쪽에서 두번째)가 박수를 치고 있다. /오종찬 기자

1993년 설립된 OHCHR은 유엔 조직 중 하나로 ‘세계 각국의 인권 보호와 계몽’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우리에겐 강경화 전 외교부 장관이 한국 여성으로는 최고위직인 부대표를 지낸 것으로 친숙하다. 지난 2013년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가 보고서를 통해 “북한 인권 침해에 대한 책임 규명을 돕는 조직을 설치하라”고 권고해 2015년 서울사무소가 개소했다. 하지만 세미나 참여 거부는 물론 올해 초 발간한 보고서에서 강제 북송과 관련된 중국 정부의 책임을 제대로 언급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 원로 인사는 “국제 사회의 무관심 속에 여러 사람들이 노력해 만들어진 사무소인데 너무 아쉽고 화가 난다”고 했다.

이런 가운데 전환기정의워킹그룹(TJWG)·물망초·북한인권시민연(NKHR) 등 12개 단체들은 11일 볼커 튀르크 유엔인권최고 대표 앞으로 항의 서한을 보내 “탈북민에 대한 중국의 심각한(grave) 인권 침해 책임을 묻는 것이 중요한데 사무소는 고의로 침묵하고 있는 것이 우려스럽다”고 했다. 이들은 “세계에서 가장 강한 나라의 책임을 묻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탈북민의 인권을 옹호하는 기관이라면 이 문제에 대한 뻔뻔한 정치화(blatant politicization)를 끝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