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수근 상병 사망사건 수사와 관련해 ‘집단항명 수괴’ 혐의로 군 검찰에 입건된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이 국방부 법무관리관으로부터 사건을 축소하라는 외압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대통령실 파견 군 관계자로부터 ‘조태용 국가안보실장이 보고 싶어한다’면서 조사 결과를 먼저 달라고 해서 안 된다고 했다가 차선책으로 언론 브리핑용으로 정리한 자료를 제출하기도 했다고도 했다. 이 같은 통화 내용 일부는 휴대폰에 녹음이 되거나 통화 당시 스피커폰을 통해 박 전 단장 외 다른 군 관계자들도 들은 것으로 알려졌다.
해병대사령부는 이와 관련 “현역 해병대 장교로서 해병대사령관과 일부 동료 장교에 대해 허위사실로 일방적인 주장을 하는 것에 유감을 표한다”고 했다.
박 전 수사단장은 11일 국방부 검찰단 앞에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8월 1일 오전 9시43분 유재은 국방부 법무관리관과 한 통화에서 “법무관리관이 ‘직접적인 과실이 있는 사람으로 (혐의를) 한정해야 한다’고 했다”고 말했다. 이 통화는 박 전 수사단장이 이종섭 국방장관에게 기초수사 결과를 지난달 30일 보고해 결재받은 이후 이뤄진 것이다.
박 전 수사단장은 “직접적인 과실이 있는 사람이라고 하면 직접 물에 들어가라고 한 대대장 이하를 말하는 것이냐”라고 물었더니, 법무관리관이 “그렇다”고 했다고 전했다.
이에 박 전 수사단장은 “그것은 협의의 과실로 보는 것이다. 나는 사단장과 여단장도 사망의 과실이 있다고 보고 광의로 과실 범위를 판단했다”며 “어차피 수사권은 경찰에 있으니 경찰에서 수사해 최종 판단하면 될 것 아니냐”고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유 법무관리관에게 “지금 하신 말씀은 외압으로 느낀다. 제삼자가 들으면 뭐라 생각하겠나. 이런 이야기는 매우 위험하다. 조심해서 발언해달라고 했다”고 박 전 수사단장은 전했다.
전날 국방부 관계자는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유 법무관리관이 박 전 수사단장과의 통화에서 ‘죄명을 빼라, 혐의자 및 혐의사실을 빼라’고 했다는 주장에 대해 사실이 아니라는 입장을 밝혔다.
다만, 법무관리관이 “죄명을 빼고 사실관계만 적시하거나 공문 처리해서 기록만 넘기는 등 이첩 방법이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라고는 말했다고 국방부 관계자는 전했다.
국방부에서 초급 간부들에게도 혐의를 적용한 것을 문제 삼아 이첩을 보류한 것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 박 전 수사단장은 “국방부에서는 초급간부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7월 30일 국방부 장관 보고 시 “국방부 장관은 ‘사단장도 처벌받아야 하나’라고만 질문했으며, 초급 간부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방부는 어느 순간 언론에 나온 내용을 보고 초급간부를 언급하고 있다”며 “처음부터 그럴 마음이었으면 우리 장병들이 그런 위험한 물가에 가는데 구명조끼는 둘째치고, 안전로프라도 구비했어야 하지 않았나”라고 비판했다.
이어 “지휘부가 장병을 대하는 태도가 수단이나 도구가 아니라 내 자식 같고 정말 전우처럼 여기면 좋겠다”고 했다.
대통령실에 수사 결과를 보고했는지에 대해서는 7월 30일 해병대사령부 정책실장으로부터 “대통령실 안보실에서 수사 결과보고서를 보내라고 한다”는 말을 들었으나, “수사 중인 사안이어서 안 된다”고 답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김계환 해병대사령관이 전화해 수사서류를 보낼 수 없다면 언론브리핑자료라도 보내주라고 지시해 어쩔 수 없이 다음 날 언론에 브리핑할 예정이었던 자료를 안보실 김모 대령에게 보냈다”고 밝혔다.
박 전 수사단장은 임성근 1사단장이 구명조끼, 로프 등 안전 장비·장치 없이 입수해 수중 수색하는 장병들의 사진을 보고 받고 “휼륭하다. 휼륭한 공보 활동을 하고 있구나”라고 말했다고도 주장했다. 이 사진을 카카오톡을 통해 보고 받을 시점은 채 상병이 수중 수색을 하다 급류에 휩쓸리기 2시간 전인 지난달 19일 오전 7시 무렵이었다고 한다. 사단장이 그의 주장대로 안전 장비를 잘 착용하고 수색하라고 지시하고 이를 잘 관리했었다면 이 사진을 봤을 때 안전 조치를 왜 안 했느냐고 따졌어야 했는데, 그러지 않았다는 것이 박 전 수사단장의 주장이다.
해병대 수사단은 7월 31일 안보실에 보낸 것과 동일한 자료를 언론에 브리핑할 예정이었으나, 이후 국방부로부터 브리핑을 취소하고 이종섭 국방부 장관이 우즈베키스탄 출장에서 돌아올 때까지 수사 결과를 경찰에 이첩하지 말라는 지시가 내려갔다.
그러나 박 전 수사단장은 8월 2일 오전 사건을 경북경찰청에 이첩했으며, 국방부는 같은 날 오후 경찰로부터 사건기록을 회수하고 다음날 해병대 수사단을 압수 수색했다.
해병대사령부는 이날 입장문을 내며 박 전 단장의 주장을 반박했다.
사령부는 “해병대사령관은 7월 31일 정오 채수근 해병상병 순직사건 조사자료에 대한 경찰 이첩을 보류하고, 국방부 법무검토 후 이첩하라는 지시를 장관으로부터 수명했다”면서 “이에 따라 해병대사령관은 당일 오후 4시 참모 회의를 열어 ‘8월 3일 장관 해외 출장 복귀 이후 조사자료를 보고하고 이첩할 것’을 수사단장에게 지시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전 단장이 주장하는 사항 중 “사령관은 내가 옷 벗을 각오로 국방부에 건의하고 경찰에 이첩하는 방안도 있다” 등 사실과 다른 부분들이 있으나, 이는 군검찰단의 수사를 통해 밝혀질 것이라고 했다.
이어 “전 단장이 현역 해병대 장교로서 해병대사령관과 일부 동료 장교에 대해 허위사실로 일방적인 주장을 하고 있는 것에 유감을 표한다”고 했다.
국방부도 이날 박 전 단장이 예정된 군 검찰 소환 조사를 거부한 데 대해 “신속하고 공정한 수사를 방해하고 사건의 본질을 흐리게 만들어 군의 기강을 훼손하고 군사법의 신뢰를 저하시키는 매우 부적절한 행위”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국방부 검찰단은 강한 유감을 표하며, 향후 법과 원칙에 따라 수사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