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지난 18일(현지 시각) 미국에서 열린 정상 회의 후 발표한 공동성명(‘캠프 데이비드 정신’)에서 “3국 협력은 단지 우리 국민만을 위한 파트너십이 아닌 인도·태평양 전체를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한·미·일 3국 협력이 한반도 등 동북아를 넘어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발생하는 도전과 도발, 위협에 공동 대응하는 포괄적 협력체로 진화했음을 선언한 것이다. 협력 대상도 군사 안보를 넘어 공급망·금융 등 경제 안보와 첨단 기술 등을 망라하기로 했다. 인도·태평양 지역 안보 협력에 중점을 둔 쿼드(미국·일본·호주·인도)와 오커스(호주·영국·미국)를 넘어선 강력한 한·미·일 협력체가 탄생해 북한·중국·러시아와의 대립 구도가 더 선명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3國 정상 나란히 함께 - 윤석열 대통령,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왼쪽부터)가 18일(현지 시각) 미국 수도 워싱턴DC 인근 미 대통령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서 정상회담을 마친 뒤 공동 기자회견을 하기 위해 나란히 걸어오고 있다. /UPI 연합뉴스

3국 정상은 특히 한·미·일 협력체가 북한보다 중국을 겨냥한 것임을 분명히 했다. 3국 정상은 공동성명 등에서 “역내 규칙 기반 국제 질서에 부합하지 않는 행동에 대한 우려를 공유한다”면서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일방적 현상 변경 시도에도 강하게 반대한다”고 했다. 또 대만해협에서의 평화·안정 유지의 중요성을 재확인하면서 양안(兩岸)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촉구했다. 남중국해와 동중국해 등에서 필리핀 등과 영유권 분쟁을 벌이는 중국을 항행(航行)과 상공 비행의 자유를 보장한 ‘역내 규칙 기반 국제 질서’를 저해하는 주체로 지목한 것이다. 한·미·일 공동성명에서 중국을 직접 명시한 것은 처음이다. ‘해외 정보 조작과 감시 기술 오용, 허위 정보’ 대응을 위한 3국 협의를 성명에 명시한 것도 중국과 러시아를 겨냥한 것이라고 외교 관계자는 전했다.

중국은 한·미·일 정상이 공동 기자회견에 나선 지 3시간 만에 대만해협 등에서 군사훈련에 나서며 반발했다. 지난 19일 오전 7시(한국 시각)부터 20일 오전 7시까지 중국 인민해방군 군용기 45대와 군함 9척이 대만 인근 해상에서 훈련했고, 이 가운데 군용기 27대는 대만해협 중간선을 침범하거나 대만 방공식별구역(ADIZ)에 진입했다. 대만 부총통의 미국 방문을 훈련 구실로 내세웠지만 “아시아판 나토”라고 반발해 온 한·미·일 협력체 탄생이 현실화하자 무력시위에 나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 다롄 해사국은 항행 경고를 통해 20~27일 서해 북부 보하이 해협에서 군사 임무를 수행한다며 해당 지역 안으로 선박 진입을 금지한다고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은 공동 기자회견에서 “세계는 변곡점(inflection point)에 있다”면서 “60~70년마다 한 번씩 세계가 크게 변하는데 지금이 그 시점이라고 본다”고 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가속화한 북·중·러 밀착에 맞선 새로운 차원의 한·미·일 협력체 탄생은 70년 전 한미, 미·일 동맹 탄생에 비견할 정도의 세계 질서 변화를 반영한 것이란 뜻으로 풀이된다. 윤 대통령도 기자회견에서 “역내 가장 발전된 자유민주주의 국가이자 경제 대국으로서, 또 첨단 기술과 과학 혁신을 선도하는 3국의 강력한 연대가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했다. 기시다 총리도 “일·미, 한미 동맹의 공조를 강화하고 3국 안보 협력을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리는 것은 시대적 요청”이라고 했다.

한·미·일 3국 협력체는 인구 5억명, 세계 경제의 32%를 차지하는 경제·안보 블록의 탄생을 의미한다. 미국이 주도하는 오커스는 의제가 안보에 국한돼 있고 회원국인 영국은 인도·태평양 역외 국가란 한계가 있다. 쿼드는 러시아 제재 국면에서 인도가 비협조적 태도를 보이면서 해양 감시 역할에 머물고 있다. 고위 외교 관계자는 “쿼드와 오커스는 지정학적 밀접도나 협력의 응집력 측면에서 한·미·일 협력체에 비할 바가 못 된다”고 했다. 3국 정상은 ‘캠프 데이비드 원칙’ 문서에서 “우리는 3국이 하나가 될 때 더 강하며 인도·태평양 지역이 더 강하다는 것을 인식한다”고 했다. 고위 안보 관계자는 “중국·러시아와도 당국 간 대화를 통해 상호 존중과 호혜, 공동 이익에 기반한 관계를 이어가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은 정상 회의를 마치고 귀국해 “한·미·일 협력을 위한 새로운 장을 열었다”며 “다음 3자 정상 회의가 한국에서 열리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차기 3국 정상 회의가 한국에서 개최된다면 서울이나 6·25전쟁 때 유엔군이 한국에 처음 상륙한 부산, 휴양지인 제주 등이 개최지로 거론된다.

한·미·일 3국 정상이 18일(현지 시각) 미국 대통령 별장 캠프 데이비드에서 만나 정상회담을 갖고 중국의 안보위협과 경제안보에 대응할 새로운 3국 협력체 출범을 선언했다./로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