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18일(현지 시각) 한미일 정상회의가 열린 미국 대통령 별장 캠프 데이비드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세 정상은 이날 정상회의 후 공동기자회견에서 "한미일 관계의 새로운 장이 시작됐음을 선언한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의를 통해 새로운 장을 열게 된 한·미·일 협력의 주요 무대는 인도·태평양(Indo Pacific)이다. 전 세계 인구 65%가 거주하고 GDP(국내총생산)의 62%를 차지하는 인·태 지역은 오늘날 지구상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지역이다. 세계 무역량의 30%가 지나가는 길목인 남중국해는 우리나라 원유·천연가스 수송의 과반을 차지하는 핵심 해상 교통로이기도 하다. 정부는 “인·태 지역의 안정과 번영은 개방형 통상 국가인 대한민국의 국익에 직결된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지난해 12월 발표한 인도·태평양 전략에서 “대한민국이 성취한 민주주의와 경제성장을 가꾸어 더욱 크게 도약하기 위해서는 인·태 지역의 평화와 안정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했다. 한국은 2021년 기준 대외 교역이 GDP의 85%를 차지하는, 경제성장에서 수출 기여도가 절대적인 개방형 통상 국가인데 이 지역에서 법치, 항행(航行)의 자유 등 보편적 가치에 기반한 국제 질서가 계속해서 유지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세계 15대 경제 대국 중 7국이 인·태 지역에 있어, 현안에 관여하고 주요국과 협력을 확대하는 것이 우리 외교의 공간을 넓히는 효과도 있다.

인·태 지역이 우리 경제에서 갖는 중요성은 수치로 증명된다. 전체 수출액의 약 78%, 수입액의 약 67%가 이 지역에서 나온다. 한국의 20대 교역 파트너 중 과반인 14국이 인·태 지역에 있고 해외 직접투자의 66%도 이곳에 집중돼 있다. 특히 한국은 무역 대부분을 해상 교통로에 의존하는데 상당량이 ‘호르무즈 해협→인도양→믈라카해협→남중국해’를 거쳐 한반도로 들어오는 구조다. 남중국해는 우리나라 원유 수송의 약 64%, 천연가스 수송의 약 46%를 차지하는 핵심 교통로다.

그래픽=양인성

그런데 최근 중국의 패권주의, 미·중 갈등 등과 맞물려 인·태 지역에서 긴장이 고조되는 일이 빈번해졌다. 중국이 남중국해에서 필리핀·베트남 등과 해상 영유권 분쟁을 빚고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올해 2월에는 남중국해 상공에서 미 해군 초계기와 중국 전투기가 150m 거리에서 대치하는 일촉즉발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외교 소식통은 “이 지역에서 어느 특정 국가(중국)가 규칙과 질서를 따르지 않고 입맛대로 행동하게 되면 불확실성이 증대해 우리 경제와 안보에 심각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고 했다.

이웃 국가인 일본은 2007년 고 아베 신조 총리가 ‘인도양과 태평양의 결합’이란 개념을 제시했을 정도로 이 지역의 전략적 중요성을 일찌감치 간파했고, 영국·프랑스·독일 등 유럽 국가들도 최근 각자의 전략을 발표해가며 관여를 확대하고 있다. 미국은 “다른 어떤 지역보다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앞으로 21세기 세계의 궤도를 결정할 것”(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이라고 할 정도로 이 지역에서 뜻을 같이하는 국가들과 연대해 규칙과 질서를 수호하는 일에 공을 들이고 있다. 최근 제도화가 완성된 한·미·일 협력이 이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영국은 지난 2021년 9월 최신예 항공모함인 ‘퀸 엘리자베스’가 일본 요코스카 미국 해군 기지에 기항해 화제가 됐다.

한국은 인·태 지역의 핵심 국가이면서도 중국과의 관계를 고려해 대만이나 남중국해·동중국해 문제에 대해 언급을 꺼려왔다. 하지만 최근 중국 해경이 필리핀 해경선에 물대포를 발사하자 현지 대사관이 이례적으로 우려를 표명하는 등 적극적으로 입장을 내기 시작했다. 가치 외교와 글로벌 중추 국가를 표방하는 윤석열 정부 들어 ‘우리 국력에 맞게 주요 사안에 대해 할 말은 하겠다’는 외교 기조가 선명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최근 일부에서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자유·인권 같은 보편적 가치가 도전받고 있다”며 “한국은 규칙 기반 국제 질서를 강화하는 동시에 다양한 국가가 협력·상생하는 역내 질서를 도모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인·태 지역 진출은 미·중·일·러 등 이른바 ‘4강’에 국한됐던 우리 외교의 지평이 확대된다는 의미도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5월 피지 등 태평양도서국포럼(PIF) 회원 18국을 서울로 초청해 사상 첫 한·태도국 정상회의를 주재한 것이 대표적이다. 태도국은 전 세계 면적의 14%에 육박하는 광활한 배타적 경제수역(EEZ)을 갖고 있고, 참치 어획량의 70%가 이곳에서 나올 정도로 어족 자원이 풍부해 협력 확대에 따른 실익이 적지 않을 것으로 분석된다. 우리 정부는 호주·캐나다·인도·몽골 등 다른 인·태 국가들과도 협력을 확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