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사관학교 총동창회가 29일 육사 충무관(생도 학습관) 앞에 설치된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문제와 관련, 입장문을 내고 “소련군 종사자에게 생도들이 거수경례하도록 방치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홍 장군이 해방 전 소련군에 속했던 점을 지적하며 사실상 국방부와 육군의 홍 장군 흉상 이전을 지지한 것으로 해석됐다. 총동창회는 “2018년 육사 영내에 조형물 설치 시 홍범도 장군 흉상 배치가 적절치 않다는 의견이 많았다”면서 “충분한 공감대 없이 강행됐고, 이 때문에 지금까지 논란이 이어지는 것”이라고 했다. 2011~2012년 49대 육사교장을 지낸 박종선 육사 총동창회장을 이날 전화로 인터뷰했다.
-입장문은 왜 냈나.
“육사가 정쟁의 대상이 됐다고, 육사 총동창회에서 난리가 났다. 카카오톡 단체방이 부글부글하다. 우리가 이런 와중에 뛰어들면 되겠느냐는 소수 의견이 있었지만, ‘더는 좌시하면 안 된다’는 목소리가 절대다수였다.”
-충무관 앞 다섯 흉상 중 홍 장군이 논란이다.
“국가 유공자, 독립 유공자를 폄훼할 의도는 전혀 없다. 깎아내릴 이유도 없다. 현재 다섯 흉상이 모셔져 있는데 각 인물에 대해 총동창회에서도 큰 반발은 없다. 홍 장군의 독립운동 활동에 대해서도 인정하고 있다. 다만 이분의 마지막 행적은 분명 논란이다. 홍 장군은 소련이 우리 독립군을 무장해제할 때 이에 동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좌진·이범석 장군은 무장해제하면 안 된다 했는데, 소련 입장에 섰던 것이다. 이후 무장해제한 독립군이 거의 전멸됐고, 생존한 수백 명은 소련 재판정에 섰는데, 홍 장군은 이 재판위원 역할까지 했다. 결국 이 재판으로 독립군 수백 명이 처형되고 옥살이를 했다. 홍 장군은 소련군에서 활동하고 레닌도 만나 권총까지 받고 사진도 찍었다.”
-독립 활동을 인정받아 서훈도 받았는데.
“역사 평가에서는 나중에 어떻게 됐느냐가 중요하다고 본다. 반성하고 뉘우치면 용서할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잘했더라도 나중에 달라지면 이건 다른 얘기가 된다. 홍 장군은 독립군 활동을 했지만, 결국 소련군 편에 섰다.”
-홍범도함도 있는데.
“흉상의 위치가 지금 논란이 되는 것 아닌가. 그분이 유공자인 것은 다들 인정하고 존중한다. 흉상이 놓인 충무관은 생도들이 하루에도 수차례 드나드는 곳이다. 누가 시키지 않았지만 생도들은 자발적으로 흉상 앞에서 거수경례를 한다. 그런데 6·25 때 우리의 적은 북한·중공군·소련군이었다. 소련이 김일성의 남침을 뒤에서 봐준 것은 다 드러난 팩트 아닌가. 그런데 우리 생도들이 소련군에 몸담았던 인물에게 경례하게 놔두는 것이 과연 괜찮을까 하는 문제의식이 제기되는 것이다.”
-이미 5년 전에 흉상이 설치됐다.
“홍범도 흉상 논란은 2018년 설치 때도 총동창회 내에서도 있었다. 하지만 당시 총동창회가 단체 행동을 하면 되겠느냐. 일단 있어보자고 했다. 그때 내가 회장이 아니어서 정확히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때보다 심하게 정치권에서 육사를 놓고 정쟁을 벌여 이대로 두면 학업에 집중해야 할 생도들이 혼란에 빠질 것 같아 차제에 육사 역사관을 분명하게 정립해야겠다고 판단돼 입장문을 냈다.”
-해결 방안은 없을까.
“충무관 앞 다섯 흉상은 모두 독립·광복군 인물이다. 그런데 6·25전쟁과 관련된 국군 영웅의 흉상은 없다. 애초에 충무관 앞에 흉상을 놓으면서 6·25 영웅 흉상을 같이 놓았더라면 균형감이 생겨 이렇게 논쟁이 되지 않았을 것 같다. 육사 개교에 사재를 털며 기여한 미군 밴 플리트 동상, 1965년 수류탄을 몸으로 막아 부대원을 살린 강재구 소령 등 동상은 있지만, 육사에 6·25전쟁 영웅 동상이 몇 없는 것은 문제다. 지금이라도 바로잡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