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13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회담 후 “현행 규칙과 틀 안에서도 우리에게 기회가 있다”고 했다.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를 지키면서도 북한과 군사 협력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는 궤변에 불과하다.
현재 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안은 총 10건이 채택돼 있다. 북한과의 무기 거래 등을 이중 삼중으로 금지하고 있다. 모두 상임이사국인 러시아가 2006~2017년 찬성표를 던진 것들이다. 하지만 러시아는 수년 전부터 제재의 ‘뒷구멍’ 역할을 해왔고, 이번 북·러 회담을 통해서는 대놓고 제재를 허물어뜨리는 모양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장관은 언론에 “북한에 대한 제재는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지정학적 상황에서 채택됐고 우리와 중국, 북한은 완전히 속았다”고 했다.
보스토치니 우주기지를 찾은 김정은에게 푸틴 대통령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기술과 동일한 ‘군사 정찰 위성’ 제작을 돕겠다는 뜻을 시사했는데, 이는 대북 제재 핵심을 정면으로 위반하는 것이다. 결의안 2321호에는 “유엔 회원국이 북한에 탄도미사일 관련 기술을 전수하지 못한다”고 돼 있다. 핵 과학 기술, 항공우주, 첨단 제조 생산 기술 등 구체적인 분야들도 열거해 놨다. 임수석 외교부 대변인은 14일 “북·러 군사 협력이 현실화해 우리 안보를 중대하게 위협하면 대응 조치를 검토할 것”이라고 했다.
김정은과 푸틴과의 회동과 연회에는 유엔 대북 제재 일환으로 여행 금지 대상에 올라있는 북측 인사가 최소 4명 참석했다. 군 서열 1위 리병철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 김정식 군수공업부 부부장, 조춘룡 당 군수공업부장, 장창하 국방과학원 원장 등이다. 북·러가 회담에서 논의한 것으로 알려진 재래식 무기 제공, 북한 노동자의 해외 송출도 마찬가지로 위법이다.
이런 가운데 정상회담을 마친 김정은은 전용 열차를 타고 이동해 14일 오후 하바롭스크주에 있는 산업 도시 콤소몰스크나아무레에 도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제 첨단 전투기인 수호이-57 생산 공장을 둘러볼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은 16일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해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과 만난 뒤 밤늦게 북한으로 출발할 것으로 예상된다. 두 사람이 태평양함대 사령부에 동행할 가능성이 있다. 조선중앙통신은 14일 “푸틴 대통령이 편리한 시기에 방문할 것을 정중히 초청해 쾌히 수락했다”고 했고, 크렘린궁은 “푸틴 대통령이 김정은의 방북 초청을 수락했다”고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