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정치부 기자 노석조입니다. 우물 밖(外)의 책·세상 이야기(說), ‘외설(外說)’을 나누고자 합니다. 종종 기사 밖으로 나와 독자님과 직접 만날 계획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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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김일성·스탈린, 2023년 김정은·푸틴으로 재현
북한 김정은이 2019년 4월 이후 4년 5개월만에 다시 러시아를 찾아 푸틴 대통령을 만나 “반(反)제국주의 타도” 등을 외치고 핵 잠수함·전투기·우주로켓 기지 등을 둘러보고 지난 18일 평양으로 돌아왔습니다. 지난 10일 러시아행 열차에 오른지 9일만입니다. 어린 시절 평양을 떠나 스위스에서 수년간 유학을 한 김정은이지만 2011년 집권 이후로 따지면 최장 해외 출장입니다.
김정은은 2019년 때는 문재인 정부가 주선한 베트남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에서 ‘노 딜(No Deal)’이라는 예상치 못한 결과를 받고 굴욕적인 귀환 길에 올랐던 적이 있습니다. 김정은은 2018년 한 해에만 문재인 전 대통령을 세 차례나 만나고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 등 트럼프 전 대통령과도 여러 차례 회동하며 대내외에 하노이 회담에 성과가 있을 것이라고 선전했었습니다. 그런데 회담이 ‘빈손’으로 끝나 난생 처음 또는 최소 2011년 집권 이후 처음으로 공개적 망신을 당했습니다. 거의 신적인 존재처럼 떠받들여지는 ‘백두혈통’의 김정은이 치명적인 ‘오류’를 범한 셈입니다.
김정은과 김여정이 그간 살갑게 얼싸안고 자주 만나던 문 전 대통령에 대해 낯뜨거울 정도의 막말을 2019~2022년 내내 퍼부었던 것도 본인들의 실책을 한국 측에 떠넘기고 “니들이 중매를 잘못 서서 그런 것 아니냐”는 질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노이 이후 김정은이 어딜 갔는지 기억하실 겁니다. 그는 하노이 노딜 내상을 입은지 딱 두 달만인 2019년 4월말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가 푸틴과 두 손을 맞잡았습니다. 사태를 어떻게든 만회하고 체면치레할 수 있는 협력국과 파트너가 러시아와 푸틴이라고 판단했던 것입니다. 이후 김정은은 다시 한번 위기를 겪는데, 바로 중국 우한에서 발병한 것으로 알려진 코로나 팬데믹입니다.
보건 체계가 전무하다시피한 북한에서 코로나는 그 자체가 정권의 위기였습니다. 더불어 여름철 대홍수와 각종 재해에 따른 식량난 등 경제난은 아무리 ‘평양 공화국’이라고 불릴 정도로 평양 이외 주민들의 생활고에 무심한 김정은 정권이라고 할 지라도 부담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특히 평양 주민들조차, 당과 군 간부층에서도 제대로 끼니조차 잇지 못할 정도로 사정이 어려워졌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핵만 가지면 다 될 것이라고 김일성 때부터 호언장담하며 참고 기다리라고했는데, 실제로 핵을 가졌는대도 국제적 고립은 더해져가고 실생활은 나아지지 않았으니 김정은 입장에서는 뭐든 치적으로 삼거나 보여줄 이벤트가 필요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이번 북러 정상회담이었습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 전쟁으로 무기고가 바닥난 상황에서 북한으로부터 탄약을 지급 받을 필요가 있었으니, 양쪽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져 이번 회담이 성사됐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스탈린의 오판 부른 영국 외무부 소련 스파이의 첩보
김정은과 푸틴의 만남은 73년 전 김일성과 스탈린을 떠올리게 합니다. 지난주에는 영국 저널리스트 필립 쇼트(Philip Short)의 최신작 ‘푸틴(Putin)’을 통해 푸틴의 조부가 러시아 제국의 비선 실세였던 라스푸틴, 그리고 소련의 지도자 레닌과 스탈린 등 권력자 3인의 사랑을 받는 유명 셰프(요리사)였다는 이야기를 전해드렸는데요.
이번 ‘외설’에서는 미국 하버드 케네디 스쿨 소속 벨퍼센터의 칼더 왈튼 연구원의 신작 ‘스파이들 : 동서간 첩보 전쟁 서사극(Spies: The epic intelligence war between East and West)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필립 쇼트의 ‘푸틴’과 마찬가지로 아직 국내에 번역되지 않은 영문 서적입니다.
미국·영국 이중국적자인 저자는 첩보사 전문 역사학자인데요, 그의 ‘스파이들’에는 6·25전쟁 비사가 있었습니다.
전쟁 1년 전인 1949년 영국 외무부의 미국 담당 데스크(국장급)가 도널드 매클린(Donald Maclean·1913~1983)이라는 소련 스파이었다는 사실입니다. 매클린은 ‘캐임브리지 파이브 스파이 링(the Cambridge Five spy ring)’ 멤버로 유명한 간첩입니다. 영국 명문 캐임브리지를 나온 5인조 소련 간첩이었던 겁니다. 그는 런던 태생인데 캐임브리지 학부를 다닐 때 소련 공작원에 포섭이 돼 외교관이 돼서 소련에 각종 정보를 넘긴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특히 그는 파리, 워싱턴 DC 공관을 거쳐 영국 외무부의 미국 담당 데스크가 돼 영국의 핵심 동맹인 미국의 각종 동향을 건네준 파이프였다고 합니다.
당시 스탈린은 미국, 영국에 심어놓은 여러 스파이를 통해 미국이 아시아에서 전쟁이 일어나도 개입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는 첩보를 두루 받았다고 하는데요. 그럼에도 김일성의 남침을 허락해줄 확신이 없었다고 합니다. 믿을만하다고 보지 않았으니까요.
그러던 와중에 그는 ‘신뢰성이 높은’ 매클린으로부터 핵심 정보를 입수했습니다. 미국 트루먼 행정부는 소련이 아시아 지역에서 새로운 전쟁을 일으킬 가능성이 아주 희박하다고 판단하고 있으며, 설사 한반도를 포함한 아시아 웬만한 지역에서 전쟁이 벌어져도 개입할 여력이 없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매클린은 영국 고위 외교관으로서 워싱턴 DC에서 미 국무부 고위 관계자들을 수시로 만나면서 미측 고급 정보를 자주 가져오는 특A급 스파이였습니다. 이에 스탈린이 매클린의 첩보를 보고받은 뒤에 남침을 해도 되겠다는 판단이 서 김일성에게 전쟁을 재가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미국은 소련이 당시 유럽에서는 독일, 중동에서는 이란 문제로 신경이 빼앗겨 아시아라는 또다른 지역에서 서방과 새로운 갈등을 원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을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미 국무부 장관인 딘 애치슨이 1950년 1월 12일에 한반도를 빼고 일본과 필리핀 등은 포함시키는 미국의 동북아 극동방위선인 ‘애치슨 라인’을 발표한 것도 이 같은 배경에서 나온 것입니다. 스탈린이 유럽, 중동에 이어 한반도에서도 ‘도박’을 벌인 데는 이 같은 첩보전이 있었다고 볼 수 있는 겁니다.
◇스탈린의 6·25도 오판, 푸틴의 우크라 침공도 오판
아이러니한 것은 미국과 소련의 첩보 모두 틀렸다는 것입니다. ‘소련은 당분간 서방과 새로운 전선을 만들지 않을 것’이라는 미국의 첩보와 분석은 결국 소련이 김일성의 남침을 재가했기 때문에 틀렸다고 할 수 있습니다. 동시에 ‘미국은 한반도 전쟁에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는 소련 스파이의 첩보도 결과적으로 미국이 6·25발발 직후 주저 없이 파병을 결정하며 즉각적 대응에 나섰기에 결과적으로 북의 적화통일을 막아냈으므로 틀렸습니다. 왈튼은 중국 마오쩌둥의 공산당이 1949년 국공 내전에서 승리할 때 미국이 개입하지 못한 것도 스탈린의 오판을 낳은 측면이 있다고도 분석했습니다. 김일성의 적화 통일 야욕이 무엇보다 전쟁의 원인이지만 여기에 결정적 영향을 준 것이 이웃한 강대국 지도자 스탈린의 오판인 셈입니다. 씁쓸합니다.
또다른 비극인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도 제2의 스탈린을 꿈꾼다는 푸틴의 오판에 따른 것입니다.
푸틴은 지난해 2월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전쟁을 단기간 종료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미국이 지난 15년간 이라크·아프가니스탄 등 중동에서 차츰 발을 빼고 트럼프 행정부 들어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는 것을 보면서 미국이 ‘세계 경찰국가’로서의 역할을 하지 않으려 한다고 분석했습니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해도 미국이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고 ‘잘못 계산’하고 ‘올 인’한 것입니다.
하지만 스탈린과 마찬가지로 푸틴의 예상은 여지 없이 빗나갔습니다. 알다시피, 미국은 노련하게 확전은 되지 않도록 파병 등 직접 개입은 하지 않으면서도 전쟁은 이길 수 있도록 우크라이나를 ‘적극적으로’ 간접 지원하며 사실상 ‘개입’했습니다. 우크라이나 대통령 젤렌스키와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용맹함과 애국심도 국제사회를 놀라게 할만큼 컸습니다. 푸틴은 코미디언 출신 젤렌스키가 이렇게 강단 있을 줄은 미처 몰랐을 겁니다. 어찌보면 기성 정치인이 아닌 정치 신인이었기에 앞뒤 재지 않고 오직 국민과 조국만을 바라보는 지금의 젤렌스키가 됐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한 가지 분명한게 있습니다. 러시아의 탄약고가 전쟁 개시 1년 7개월만에 바닥났다는 것이고, 이 때문에 푸틴이 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하고 ‘불량정권’으로 정평이 난 북한에 ‘탄약 구걸’을 하게 됐다는 겁니다. 이게 무슨 뜻일까요? 푸틴의 대우크라이나 전쟁이 개시 전 계획한 것과는 너무나 다르게 흘러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푸틴도 다른 데도 아니고 84년생 김정은에게 손을 벌릴 줄은 우크라이나를 호기롭게 침공할 때만해도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 겁니다.
◇ “北 오판말라” 메시지 반복되는 까닭
지난해 11월 한미안보협의회의(SCM) 취재차 미국 워싱턴 DC에 갔었습니다. 그 때 한미 국방부 장관이 펜타곤 기자회견에서 공동으로 발표한 성명이 기억에 남습니다. “김정은에게 경고한다. 북한이 (전술핵이든 뭐든) 어떤 종류로든 핵공격을 하면 정권 종말을 맞이할 것이다. 상황을 오판하지 말라.”
한미는 북한이 대륙간탄도시마일(ICBM)을 동해상으로 시험 발사하거나 모의 전술핵탄두 공중 폭파 실험 등을 하면 “오판하지 말라” “북 공격시, 한미는 압도적으로 대응할 것이다” 등과 같은 메시지를 발표하며 김정은에게 들으라고 강조합니다. 왜 그럴까요? 70여년 전의 교훈 때문입니다. 아닌 건 아니라고, 안 될 건 안된다고 명료하게 말해줘야 ‘도발’과 ‘전쟁’이라는 극단적 상황 아니면 국면 전환의 타개책이 없는 불량정권들이 잘못된 베팅을 못하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권 종말’ ‘압도적 대응’ 같이 극상의 레토릭(외교적 수사)이 사용되는 데는 이러한 배경이 있다는 점을 말씀드립니다.
이상 노석조 기자의 외설이었습니다. 저는 매주 미번역 외서를 읽고 흥미로운 스토리를 발굴해 전하고 있습니다. 조만간 제가 읽을 수 없는 외서를 읽은 분을 통해 싱싱하고 영양가 높은 외서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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