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이 20일(현지 시각)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제78차 유엔총회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은 20일(현지 시각) 취임 후 두 번째 참석한 유엔총회에서 기조연설을 통해 북한과 러시아의 군사 거래 시도가 우크라이나뿐 아니라 한국의 안보·평화에 대한 직접적 도발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북한에 대해 ‘안보리 결의를 정면으로 위반하는 정권’이라고 한 데 이어,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러시아에 대해서도 “전쟁 수행에 필요한 무기와 군수품을 안보리 결의를 정면으로 위반하는 정권에서 지원받는 현실은 자기모순적”이라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윤 대통령은 “이러한 상황에서 안보리의 개혁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폭넓은 지지를 받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이 1년 전 첫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국제사회가 연대해 자유의 가치를 지켜야 한다”고 한 점과 비교해 보면 규탄 대상이 구체화되고, 경고 수위도 한층 높아졌다. 윤 대통령은 이달만 해도 북·러를 공동으로 겨냥해 “군사 협력 시도 중단”(6일 아세안 정상 회의), “국제 제재를 위반하는 불법적 행위”(17일 AP 인터뷰)라고 했지만, 이번처럼 러시아만 별도로 언급해 직접적으로 비판하는 메시지를 내지는 않았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북·러의 군사적 밀착 국면이 심화하며 국제 정세가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상황에서 국제 현안에 대응하는 대통령 발언 강도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尹대통령,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과 악수 - 제78차 유엔총회 참석차 미국 뉴욕을 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이 19일(현지 시각) 유엔본부에서 안토니우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과 악수를 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북한과 러시아 간 군사 거래는 우크라이나뿐 아니라 대한민국의 안보와 평화를 직접적으로 겨냥한 도발이 될 것"이라고 했다. /연합뉴스

윤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중국을 언급하지는 않았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어떤 연설이든 집중된 포커스 메시지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중국이 북·러의 군사 협력을 불편해하는 상황이 반영됐다는 해석도 나온다. 윤 대통령은 지난 7일 인도네시아 순방에서 중국 리창 총리와 만났을 때 “(북한 핵·미사일 문제에 대해) 중국이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서 책임과 역할을 다해달라”고 했었다.

윤 대통령은 기조연설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가치와 이념의 분열, 글로벌 경제의 위축과 식량·에너지 위기 초래 등 국가 간 격차가 커지고 있다”며 개발·기후·디지털 격차 해소를 위해 한국이 적극 기여하겠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개발 격차 해소를 위해 내년 공적개발원조(ODA) 정부 예산안 규모를 6조5000억원으로 올해(4조5000억원)보다 40% 이상 확대했다며 맞춤형 개발 협력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기후 격차와 관련해선 “녹색기후기금(GCF)에 3억달러를 추가 공여하는 등 그린 공적개발원조를 확대하겠다”고 했다. 특히 탄소 중립 목표 달성을 위해 “원전·수소와 같은 고효율 무탄소 에너지(CFE)를 폭넓게 활용·공유하겠다”며 이를 위한 오픈 플랫폼인 ‘CF 연합’을 결성하겠다고 했다. 디지털 격차 완화를 위해 “글로벌 디지털 규범 형성과 AI(인공지능) 거버넌스 구축에 한국이 주도적 역할을 해나가겠다”며 유엔 국제기구 설립을 지원하기 위한 ‘AI 글로벌 포럼’ 개최를 제안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제78차 유엔총회에서 기조연설에 나선 가운데 러시아 대표단(빨간색 원 안)이 윤 대통령의 발언을 경청하고 있다./연합뉴스

윤 대통령은 “국제사회에 책임 있는 기여를 다하기 위해 2030년 부산 엑스포를 개최하고자 한다”고 했다. 이어 “70여 년 전 공산 세력의 무력 침공을 받아 한반도 대부분이 점령당했을 때, 자유의 마지막 보루 역할을 한 부산이 없었더라면 오늘날 대한민국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은 19일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과도 취임 후 세 번째 면담을 하며 한·유엔 협력과 한반도·우크라이나 문제 등을 논의했다. 윤 대통령은 “북한의 도발을 방지하고 북한의 인권 상황이 실질적으로 개선될 수 있도록 유엔과 지속 협력해 나가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복합 위기의 시대에 유엔을 중심으로 한 글로벌 연대가 중요하다”며 “우리의 국제적 위상에 걸맞은 책임 있는 역할을 수행하겠다”고 했다.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그간 유엔에서의 한국 정부의 활동과 기여에 사의를 표하고 “한국의 안보리 비상임이사국 수임 기간 주요 국제 현안 해결을 위해 더욱 긴밀히 소통해 나가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20일(현지 시각)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제 78차 유엔총회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기조연설을 통해 북한과 러시아의 군사밀착 움직임을 비판했다./ United Nati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