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3일 아시안게임이 열린 중국 항저우에서 한덕수 국무총리와 회담하고 “방한 문제를 진지하게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시 주석은 2014년 7월 방한 이후 9년 넘게 한국을 찾지 않고 있다. 한·미·일이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의를 통해 협력을 강화하고 북한과 러시아도 정상회담을 통해 밀착하자, 중국의 태도가 적극적으로 변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중국 외교부 발표문에는 시 주석의 방한 발언이 포함되지 않았다.
한 총리와 시 주석의 회담은 지난 7일 윤 대통령과 리창 중국 총리가 회담을 한 지 16일 만으로, 약 30분간 진행됐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회담 후 브리핑에서 “방한을 시 주석이 먼저 언급했다”며 이는 “본인이 방한할 차례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이라고 했다. 시 주석은 지난해 11월 15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20국(G20) 정상회의를 계기로 윤석열 대통령과 회담했을 때는 “코로나 상황이 안정되면 방한 초청에 기쁘게 응할 것”이라면서도 “편리한 시기에 윤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해 주기를 희망한다”며 사실상 윤 대통령의 선(先)방문을 요청했었다.
중국 외교부 발표문에 따르면, 시 주석은 한 총리와의 회담에서 “한국이 중·한 관계를 중요시하고 발전시키겠다는 것을 정책과 행동에 반영하고, 서로를 존중하며 우호, 협력의 큰 방향을 유지하기 바란다”고 했다. 또 “중국은 14억여 명이 현대화에 진입했고, 반드시 거대한 시장 기회를 추가로 제공할 것”이라며 “중·한 경제는 관계가 밀접하고 산업망, 공급망이 깊이 엮여 있어 양국이 호혜적 협력을 심화해야 계속해서 성과를 낼 수 있다”고 했다. 미국의 대(對)중국 견제에 동조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한 것이다. 특히 중국 시장의 규모를 강조한 것은 한중 관계가 악화될 경우 한국의 중국 시장에 대한 접근이 제한될 수 있다는 점을 암시한 것으로 해석된다.
반면 한 총리는 “불확실한 정세와 공급망 불안정 등 다양한 도전과 과제가 있는 상황”이라며, “중국과 상호 존중, 호혜, 공동 이익을 추구하고 규칙·규범에 기반한 건강하고 성숙한 한중 관계 발전을 추진하고자 한다”고 했다.
한 총리는 시 주석에게 윤 대통령의 대북 정책인 ‘담대한 구상’을 설명하면서 “중국 측이 계속해서 건설적인 역할을 해 달라”고 당부했고, 시 주석은 “남북 양측의 화해와 협력을 일관되게 지지한다”며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계속 노력하겠다”고 답했다고 정부는 밝혔다.
이날 양자 회담에 앞서 진행된 각국 인사 환영 오찬에서는 시 주석이 한 총리와 나란히 오찬장에 입장했다. 시 주석은 한 총리에게 한국에서 항저우까지 “비행기로 3시간이면 오느냐”고 물었고, 한 총리는 “1시간 30분 정도”라고 답했다. 시 주석은 “양국이 가까운 나라구나”라고 했다고 한다. 오찬장에서 한 총리 옆에는 왕이 외교부장이 앉았다.
조태용 국가안보실장은 24일 국내 방송 인터뷰에서 시 주석 방한에 관해 “자기 입으로도 여러 차례 했기 때문에, 그걸 기반으로 해서 외교 채널 간에 우리가 점잖게, 좀 쿨하게 중국이랑 얘기를 해서 성사를 시켜보자 하는 것”이라고 했다. 시 주석의 방한은 양국 관계에서 ‘중요한 전기’이지만 저자세로 부탁하지는 않겠다는 것이다. 시기에 대해선 “연내는 실질적으로 안 될 것”이라며 “명년(내년) 정도 한번 서로 얘기를 해봐야 한다”고 했다.
조 실장은 중국의 대북 압박 동참도 촉구했다. “국제사회가 중국에 대해 ‘북한에 압박을 가해서 북핵이 너무 통제불능 상태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보낼 적기라고 생각한다”고도 했다. 중국이 북한을 설득해 비핵화 대화로 이끌어 낼 가능성에 대해선 “낮게 본다”고 했다. 북한의 안보 우려를 강조하는 ‘쌍궤병행(雙軌竝行·비핵화 협상과 한반도 평화체제 협상 병행)’ 등 중국식 북한 비핵화 해법은 실현가능성이 낮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조 실장은 이날 일관된 대북 압박을 강조하며 “우리 정부가 끝나기 전에 북한이 더 버티기 어려운 시점도 올 수 있다”고 했다.
한편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23일(현지 시각)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북·러 정상회담 후속조치로 내달 북한 평양을 방문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