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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의 무장 강경파인 하마스(HAMAS)의 이스라엘 기습 공격 테러가 전 세계에 충격과 공포를 안겼습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유대교와 이슬람의 분쟁이라는 오랫동안 얽히고설킨 갈등 문제를 떠나 무고한 민간인들을 정치적 목적으로 잔인하게 살해하고 인질로 삼는 행태 자체는 결코 용납되어선 안 될 것입니다.
저는 지난주 수요일 미국의 최근 인기도서인 ‘지하(음지) 제국 : 미국은 어떻게 세계 경제를 무기화했나(Underground Empire: How America Weaponized the World Economy)’를 이번 ‘외설’에서 소개 해 드린다고 했었는데요. 주말새 이스라엘에서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고, 현재 가장 중대한 사안이 바로 이번 하마스·이스라엘 전쟁이라고 판단돼 급히 계획을 변경해 이스라엘과 관련된 다른 미번역 외서를 꺼내놓기로 했습니다. ‘지하 제국’을 기대하신 독자님께는 양해를 구합니다. 읽어봤는데 정말 역작이라는 말을 절로 나올 만큼 ‘인사잇풀(insightful)’하고 내용 전개도 머릿속에 워싱턴 DC의 재무부 건물, 중앙정보국(CIA) 등 주요 기관 곳곳이 그림 그려질 정도로 시각적으로 서술돼 있었습니다. 일주일만 더 기다려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50년 전 첩보전 실패 반복한 이스라엘
오늘 제가 해제(解題)할 외서는 2016년 8월 미국의 하퍼(Harper) 출판사가 펴낸 ‘디 에인절(그 천사): 이스라엘을 구한 이집트 간첩(The Angel: The Egyptian Spy Who Saved Israel)’입니다. 저는 2018년 하드커버로 구해서 읽었는데요, 이번 사태를 보고 5년 만에 서재에서 다시 꺼내봤습니다.
저자는 이스라엘 하이파 대학교에서 정치학부 교수를 지낸 우리 바르-요셉(74)입니다. 그는 이스라엘군에서 정보분석관을 지낸 첩보 전문가입니다. 1990년 스탠퍼드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민주국가에서 정보기관의 역할’을 비롯해 첩보전 등 각종 국가안보 문제에 천착해왔습니다. 특히 이집트가 전승절로 기리는 1973년 중동 4차 전쟁인 ‘10월 전쟁(이스라엘에서는 욤 키푸르 전쟁, 이집트에서는 라마단 전쟁이라 부릅니다)’을 오랫동안 연구해왔습니다.
이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미국의 도움을 받아 가까스로 이기긴 했지만 이번 하마스 사태와 마찬가지로 당시 이집트의 수에즈 운하 지역에서의 기습적인 침공에 방어 전선이 무너져 2800명이라는 역대 최대 사망자가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까딱하면 진짜 패할 뻔 했고요. 그가 쓴 ‘디 에인절’이라는 책도 왜 그때 이스라엘 대외 첩보부인 ‘모사드’와 군 정보부인 ‘아만’이 전쟁을 예측하지 못했는가에 대한 물음에 대한 답 중 하나입니다.
제가 이번 사태와 관련해 이 책을 고른 것도 첩보전의 중요성과 더불어 첩보 분석의 현실적인 난해함 등을 한번 짚어보며 생각할 기회를 독자님들과 나누고 싶어서입니다. 모사드는 10월 전쟁 이후 50년간 조직 규모도 늘리고 첩보 역량도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키웠을 겁니다. 그런데도 어이없이 일개 무장 단체의 재래식 기습전도 예측하지 못하며 또다시 정보전에서 실패했다는 것은 아이러니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방심은 역시 쥐약입니다.
◇이중간첩 ‘에인절’의 제보 “내일 전쟁이다”
‘디 에인절’은 모사드가 1970년대 관리하던 이집트인 간첩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의 주적은 이집트였습니다. 이집트는 이스라엘과 바로 붙어 있었고, 무엇보다 사우디, 요르단 다른 아랍국에 비해 인구가 가장 많은 대국이었습니다. 이집트는 엘리트 장교들이 이끄는 군사 정권이었습니다.
이집트는 원래 왕정이었는데, ‘자유 장교단’이 쿠데타를 일으켜 알 파루크 왕정을 무너뜨리고 현재와 같은 이집트 공화국을 세웠습니다. 2011년 아랍 정변으로 이슬람주의 운동단체 ‘무슬림형제단’ 출신의 무르시라는 인물이 대선에서 당선되며 문민정부를 출범시키긴 했지만, 불과 1년 만에 엘시시 당시 국방부 장관에 정권을 빼앗겼습니다. 이스라엘에게 있어 이렇게 군이 강했던 이집트는 큰 위협이었다는 것입니다.
모사드가 특별 관리하던 간첩은 보통 간첩이 아니었습니다. 딴 사람도 아닌 이집트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빨대’로 두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의 이름은 아슈라프 마르완이었습니다. 책 이름 ‘디 에인절’은 그의 코드명이었습니다. 그는 1973년 10월 전쟁 발발 직전에 모사드가 가장 먼저 알린 ‘최고의 스파이’였는데요, 대체 그는 어떻게 ‘에인절’이 됐던 것일까요?
바르-요셉에 따르면, 마르완은 자발적 스파이였다고 합니다. 1970년 런던 주재 이스라엘 대사관에 전화를 걸어 ‘정보 제공 의사가 있다’며 먼저 손을 내밀었습니다. 대사관은 깜짝 놀랐습니다. 그는 3개월 전인 9월까지만 해도 14년간 이집트의 ‘파라오’였던 가말 압델 나세르 대통령의 사위이자 대통령 보좌관이었기 때문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김정일에게 딸이 있었는데, 그 딸의 남편이 우리 국가정보원에 협력하는 스파이였다면 어땠겠습니까? 심지어 그냥 김정일 사위도 아니고 김정일 지근거리에서 실제 업무를 하는 참모였다면요. 짜릿한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입니다. 김정은의 딸 주애가 아직 어리지만 나중에 결혼한 남편이 스위스 같은 나라에서 대한민국 대사관에 전화를 걸어 자진해 스파이가 되겠다고 할 정도로 상상 불가 수준의 일이 벌어졌던 것입니다.
당시 마르완이 이렇게 이스라엘 측에 먼저 접근한 데 대해선 여러 설이 있지만 가장 유력한 것은 그가 사치스럽고 방탕한 생활로 ‘용돈 부족’에 시달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이스라엘 측에 접근했을 때도 정보 제공에 대한 금전적 대가를 항상 요구했다고 합니다.
동기가 어떻든 이스라엘은 마르완을 각별히 관리했습니다. 그의 실체를 아는 사람은 총리·국방장관 등 극소수였습니다. 6개월이 흘렀을 무렵, 간첩으로서 그의 가치가 급등했습니다. 1971년 5월 그가 전(前) 정권, 즉 자신의 장인 나세르 측 세력의 쿠데타 시도를 막으며 사다트 대통령의 신뢰를 얻어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영전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침공 방안 등 동맹국과 긴밀한 논의가 그를 통해 오갔습니다. 사다트는 ‘충신’ 마르완을 감히 의심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1973년 10월 5일 마르완은 급히 모사드 국장 즈미 자미르에 접선을 요청하고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전합니다. “내일 전쟁이 개시됩니다.” 이집트가 이스라엘을 기습 침공할 것이라는 결정적 정보를 ‘에인절’이 넘긴 것입니다.
놀란 자미르는 서둘러 골다 메이르 총리에게 보고했습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총리는 전쟁 대비에 주저했습니다. ‘이번에도 군사 훈련일 것’이라 여겼던 것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이집트는 수에즈 운하를 기준으로 놓인 휴전선 인근에서 대규모 군사훈련을 실전처럼 꼬박 꼬박했습니다. 이스라엘은 1973년 8월 실시한 이집트 훈련이 실전인 줄 알고, 비용이 수백만 달러 드는 예비군 동원령을 발령하는 ‘헛수고’를 한 적도 있었습니다.
이런 경험 때문에 메이르 이스라엘 총리는 막상 진짜 전쟁을 알리는 첩보를 입수하고서도 또 훈련이겠지 라는 쪽으로 생각하게 됐던 것입니다. 모사드도 보고해놓고도 확신이 없어 뜻을 관철하지 못했습니다. 마르완이 그전에 몇 차례 전쟁이 있을 것이라고 알려준 적이 있었는데, 그때 아무 일이 벌어지지 않아 모사드와 군 정보기관 아만에서도 마르완의 말을 믿을 수 없다는 평가가 돌았기 때문입니다. 일각에서는 마르완이 이스라엘에 허위 정보를 주려는 역간첩일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에인절’의 귀띔은 사실이었습니다. 10월 6일 이집트는 최신 소련 무기로 전선을 넘어 쳐들어갔고 이스라엘은 전쟁 초기 대패했습니다. 1~3차 전쟁 압도적 승리를 거둔 이스라엘이 개전 초기 박살 난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모사드로는 최고의 스파이를 두고도 첩보 진위 분별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마르완의 제보를 다른 경로로 확인할 마땅한 방법이 없었던 것입니다.
욤 키푸르라는 이스라엘의 명절 연휴를 노린 이집트의 전략은 주효했던 것이고, 이를 간파하지 못한 이스라엘은 2800명이라는 큰 희생자 수에 무릎을 꿇어야 했습니다. 전쟁에서 정찰 등 정보전이 얼마나 중요한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독자님들 중에 마르완이 진짜 이스라엘 스파이가 아니라 모사드 내부의 의심대로 ‘가짜 스파이’였을 것으로 보시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하지만 마르완이 어떻게 됐는지를 아시면 그런 의심을 거두실 것입니다. 그가 2007년 6월 런던 그의 집 발코니에서 의문의 추락사로 63세를 일기로 사망했기 때문입니다. 정확한 사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그는 의문사를 당하기 전부터 그의 아내에게 누군가로부터 미행을 당하는 것 같다는 걱정의 말을 했다고 합니다. 사고 당일 그의 집 근처에 수상한 남성 2명이 돌아다니는 CCTV에 포착되기도 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에서는 10월 전쟁 당시 마르완의 제보를 모사드와 아만이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문제를 놓고 뒤늦게 법정 다툼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재판 과정에서 그만 ‘그 에인절’이 사다트 대통령의 비서실장 마르완이었다는 사실이 노출돼 이집트에서 큰 논란이 되고 있었습니다. 그전까지 30여년간 마르완이 1970년대 모사드의 스파이였다는 사실은 전혀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마르완이 사고로 추락했는지 암살당한 것인지 그렇다면 누가 죽였는지는 여전히 미스터리지만, 일련의 상황에 비춰보면, 이집트 측에서 조국의 배신자를 처단한 것일 가능성이 클 것입니다.
◇국정원, 모사드 같은 실패 가능성 없나
50년 전 10월 전쟁, 그리고 이번 하마스 기습전은 여전히 분단국인 우리에게 여러 시사점을 줍니다. 시간당 1만 5000발의 장사정포를 쏟아부을 북한의 포격을 과연 우리 군은 막아낼 역량을 갖췄는지, 북한이 만약 전략핵 미사일을 장전해놓고 백령도나 파주에서 납치극을 벌일 경우 대응할 방책은 있는지 등등입니다.
이와 함께 우리 국가정보원은 우리 군 정보 당국은 북한을 얼마만큼 들여다보고 있을지 대북 정보 역량은 어느 수준일지 궁금합니다. 충분할까요? 우리는 모사드가 중동전쟁을 벌이는 동안 이집트의 대통령 비서실장을 ‘에인절’로 삼고 있을 만큼 지금 김정은의 최측근 중에 협력자를 두고 있을까요? 김정은이 오늘 아침은 된장찌개를 먹었는지 빵에 스위스산 치즈를 발라 먹었는지 알까요? 무엇보다 북한의 대남 공격용 무기가 어디에 얼마만큼 어떻게 배치되고 있는지 빼놓지 않고 파악하고 있을까요?
북한이 각종 기만술로 거짓 정보를 뿌리다 일시에 하마스처럼 육해공으로 침투작전을 펼칠 때 이를 미리 탐지하고 이에 맞는 대비태세에 돌입할 만큼 빠른 정보 진위 판별력과 분석력을 갖추고 있을까요?
설마 북한이 그러겠느냐? 너무 오버하는 것 아니냐? 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50년 전 그때 그 방식대로 또 당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심지어 이집트보다 약한 준군사조직 하마스의 불도저, 패러글라이딩, 구형 로켓포 등에 박살이 날 줄 예상이나 하겠습니까?
이스라엘은 1인당 GDP가 5만 2000달러에 달하는 OECD국가입니다. 중동에서 유일한 ‘사실상(de facto)의 핵보유국’인 군사 강국입니다. 이런 나라가 군사적 공격을 받아 수백명의 민간인 사망자를 본 것은 매우 드문 일입니다. 이런 참사가 어디서도 더는 벌어지지 않으면 좋겠지만, 그 예외가 한국이 아니라는 법은 없습니다. 어쩌면 가능성이 상당히 높은 나라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북한은 세계에서 손으로 꼽히는 ‘불량정권’이고 무엇보다 그간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제1·2연평해전, DMZ 목함지뢰 도발, KAL기 폭파 테러, 아웅산 테러, 무장공비 침투,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반인륜적 군사, 테러, 범죄 행위를 2~3년이 멀다하고 벌여왔기 때문입니다.
한 가지 더. 마르완 같은 인물이 반대로 우리 쪽에 숨어있진 않을까요?
바르 요셉 교수가 지난 8일 이스라엘의 뉴욕타임스(NYT)라 불리는 일간 하아레츠 기고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1973년 전쟁과 달리 이번 하마스 방어 실패는 정보 부족, 군의 부적합한 대응, 그리고 정치적 리더십의 부재 등 총체적 실패에 따른 결과다.”
적은 상대가 내분으로 혼란스러울 때를 노립니다. 김정은은 우리 여의도를 24시간 지켜보고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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