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아라비아를 국빈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22일(현지 시각)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 겸 총리와 정상회담을 하고 양국 간 투자 협력을 수소 등 에너지, 인프라, 전기차, 조선, 스마트팜 분야 등으로 다각화하기로 했다. 원유 수출입이 중심이 된 이른바 ‘중동1.0′ 협력 관계를 첨단 신산업 분야로 확대해 ‘중동2.0′으로 업그레이드하겠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양국 기업은 윤 대통령 국빈 방문을 계기로 156억달러(약 21조원) 규모의 투자 양해각서(MOU) 및 계약 51건을 체결한다. 작년 11월 빈 살만 왕세자 방한을 계기로 양국 기업이 체결한 290억달러(39조원) 규모의 투자 MOU·계약과는 별개다. 양국은 또 사우디 원유 530만배럴을 울산 한국석유공사 저장기지에 비축하고, 원유 공급망 위기 때 한국이 이를 우선 구매할 수 있도록 하는 계약도 체결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리야드 야마마궁에서 사우디 실권자인 빈 살만 왕세자와 회담에 이어 국빈 오찬을 함께했다. 윤 대통령은 회담에서 “올해는 한국 기업이 사우디에 진출한 지 5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라며 “포스트 오일(Post-Oil·석유 이후) 시대에 한국은 사우디에 최적의 파트너”라고 했다. 윤 대통령은 “양국 관계가 전통적인 에너지, 건설 등 분야에서 자동차, 선박도 함께 만드는 첨단 산업 파트너십으로 발전하는 것은 고무적”이라며 “관광, 문화 교류 분야에서도 협력이 확대되길 바란다”고 했다. 빈 살만 왕세자는 “한국은 사우디 국가 발전 전략인 ‘비전2030′의 중점 협력국”이라며 “한국과 다양한 분야에서 실질 협력을 더욱 발전시켜 나갈 것”이라고 했다. 빈 살만 왕세자는 석유 위주 경제 구조를 제조업이 바탕이 된 신산업 구조로 바꾸겠다며 비전2030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이어 양국 기업인들이 참여하는 한·사우디 투자 포럼에 참석했다. 이날 포럼에서 양국 기업은 에너지, 인프라, 전기차 등 신산업 분야에서 투자 MOU와 계약 46건을 체결하는 등 윤 대통령 사우디 방문을 계기로 총 156억달러 규모의 MOU·계약 51건을 체결한다고 대통령실이 밝혔다.
윤 대통령은 작년 11월 양국 수교 60주년을 맞아 방한한 빈 살만 왕세자와 회담에서 양국 협력 관계를 원유 수출입 중심에서 첨단 신산업과 에너지 공급망까지 아우르는 전략적 관계로 격상하기로 했었다. 이를 계기로 사우디는 한국 기업과 290억달러(39조원) 규모의 투자 MOU 및 계약 26건을 체결했다. 윤 대통령은 답방 격인 이번 국빈 방문에서 빈 살만 왕세자와 지난 1년간 계약 이행 상황을 점검하고 후속 조치 등을 논의했다.
빈 살만 방한 이후 양국은 사우디가 9조2580억원을 들여 울산 온산산업단지에 석유화학시설을 짓는 샤힌(Shaheen·아랍어 ‘매’) 프로젝트 착공식을 지난 3월 열었다. 또 벤처 투자를 위한 1억6000만달러 규모의 공동 펀드 조성, 현대로템과 사우디 기업 간 합작법인 설립 계약, 삼성물산과 사우디 국부펀드 간 공동 투자협약서 체결 등 후속 조치가 이어지고 있다. 최상목 대통령 경제수석비서관은 브리핑에서 “왕세자 방한 이후 1년이 안 된 기간에 양국 기업이 맺은 MOU 및 계약의 60% 정도가 가시화했다”고 밝혔다.
이런 가운데 양국 기업들이 윤 대통령 사우디 방문을 계기로 추가로 156억달러 규모의 투자 MOU와 계약을 체결하는 것이다. 이날 열린 양국 투자 포럼에서 현대차와 사우디 국부 펀드가 4억달러 규모의 합작 공장 건설 계약을 맺는 등 양국 기업은 윤 대통령 사우디 방문을 계기로 수소 등 에너지, 인프라, 제조업 등 첨단 신산업 분야에서 총 51건의 MOU·계약을 맺는다.
한전·포스코홀딩스·롯데케미칼이 아람코와 함께 블루암모니아 생산 협력 의향서(LOI)를 체결하는 등 에너지 분야에서 계약 2건과 MOU 5건을 맺었다. HD현대일렉트릭은 변전소 건설에 변압기와 고압 차단기를 납품하는 계약을 했다. 첨단산업·제조업 분야에서는 현대차의 반조립(CKD) 공장 계약을 포함해 총 17건의 협약을 맺었다. CTR, 대영채비, 피라인모터스, 코리아유통 등 중소·중견기업도 각각 전기차 부품과 충전 분야에서 사우디 업체와 MOU를 맺었다. SPC그룹은 현지 갈라다리브러더스그룹과 조인트벤처를 설립하고, 파리바게트 진출을 추진한다. 북미, 유럽 등에서 인기를 끄는 K푸드를 할랄 시장으로 확산하겠다는 것이다. 이 밖에 농심이 사우디 그린하우스와 손잡고 현지 스마트팜 시장에 본격 진출하기로 했다.
윤 대통령 방문을 계기로 사우디가 울산에 원유 530만배럴을 비축하기로 하는 등 에너지 공급망 협력도 강화했다. 1680만배럴을 비축할 수 있는 한국석유공사 울산기지에 5년 동안 사우디 아람코의 원유를 비축하는 사업이다. 한국 비축기지를 아람코에 대여하는 것으로, 아람코는 이 물량을 자회사인 에쓰오일에 공급하거나 중국 등 해외에 판매할 수도 있다. 유사시에는 한국이 우선 구매권을 갖는다. 한국은 5년 동안 비축시설 대여료도 받는데, 임대 수입은 5400만달러(약 730억원)에 이를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산업부와 사우디 에너지부 간에 ‘수소 오아시스 협력 이니셔티브’도 체결했다. 대표적인 무탄소 에너지인 수소의 생산·유통·활용과 관련 제도 등 수소 생태계 전반에 걸쳐 양국이 협력하기로 한 것이다. 최 수석은 “세계 최대 수소 수출국을 목표로 하는 사우디와 수소차, 연료전지 등 수소 기반 산업을 선도하는 한국은 협력 잠재력이 매우 크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5000억달러가 투입되는 네옴시티 건설 사업과 관련해 한국 기업들이 250억달러 규모의 수주전에 나선 것을 언급하며 빈 살만 왕세자의 관심과 지원도 요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