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선박이 24일 북한 주민 4명이 타고 온 목선을 양양군 기사문항으로 예인하고 있다. 이들은 우리 군·경을 보자마자 “북한에서 굶주렸다” “먹고살기 위해 내려왔다”며 귀순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연합뉴스TV

북한 주민 4명이 24일 소형 목선을 타고 강원도 속초의 동해 북방한계선(NLL)을 넘어 내려오다 우리 해경과 해군에 나포됐다. 30대 성인 남자 1명과 그의 아내, 딸, 그리고 아이의 할머니로 추정되는 50대 여성 등 일가족 4명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우리 군경에 “북한에서 굶주렸다” “먹고살기 위해 내려왔다”며 귀순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주민이 동해상으로 귀순한 것은 2019년 6월 15일 삼척항으로 북한 어민 2명이 목선을 타고 귀순했다가 그해 11월 당시 정부에 의해 강제 북송된 지 4년 만이다. 정부는 평양을 제외한 북한 전역에서 극심한 식량난으로 아사자가 속출하고 있어 추가 탈북 동향 가능성도 예의 주시하고 있다.

합동참모본부는 이날 “오전 4시부터 동해 NLL 이북 해상에서 북한 해군으로 추정되는 특이 움직임이 추정돼 다양한 상황에 대비해 감시 등 작전 조치에 들어갔다”면서 “이후 5시 30분쯤 레이더를 통해 동해 북쪽 먼바다에서 내륙 남쪽으로 다가오는 미상 물체를 파악했으며 오전 6시 30분쯤에는 열상감시장비(TOD)로도 탐지했다”고 말했다. 미상 물체는 어선 신호 없이 저속으로 일정하게 내려왔다고 한다. 군은 미상 물체가 북한 선박인지 불분명한 가운데 상황 파악을 위해 초계기와 고속정을 인근 해역으로 보냈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래픽=양인성

이런 가운데 동해상에서 어업 활동 중이던 민간 어선의 어민이 오전 7시 10분쯤 “이상한 배가 보인다”며 육안으로 미상 물체를 확인해 해경에 신고했다. 군 관계자는 “어민의 신고가 군경의 탐지 활동에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군경은 레이더와 TOD에서 점 형태로 보이는 미상 물체가 ‘북한 목선’일 가능성이 커짐에 따라 해경 선박을 급파했다. 이에 오전 8시쯤 속초 외옹치항에서 동쪽으로 약 11㎞, NLL 이남 약 45㎞ 지점 해상에서 길이 7.5m의 목선에 타고 있는 북한 주민으로 추정되는 인원 4명의 신원을 확보했다.

해경이 “어떻게 내려왔느냐”고 묻자 이들은 “살려고 왔다”며 귀순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소식통은 “이들은 우리 당국에 ‘북한에서 생계가 어려웠다’ ‘살기 위해 내려왔다’고 말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해경 도착 전 우리 어민이 선박을 잡고 있을 때 북한 한 인원은 “배가 참 좋다”는 반응도 보였다고 한다. 해군 함정도 현장에 도착해 합동으로 북한 선박을 강원도 양양 기사문항으로 예인했다. 북한 인원은 동해항에서 관계 기관에 넘겨졌다. 정부는 정부합동정보조사팀을 구성해 이들의 월남 목적 등을 면밀 조사할 방침이다.

이번 귀순 조치는 군경과 어민의 3각 공조로 가능했던 것으로 평가된다. 합참과 해군은 오전 4시 이전부터 동해 NLL 이북의 특이 동향을 탐지했지만 그것이 대남 도발 작전인지 월남 목선을 잡기 위한 추격 활동인지 알지 못한 상태였다. 이후 미상 물체가 감시 장비로 잡혔을 때도 단순 부유물인지 확신을 할 수 없었다. 이런 가운데 어선 신고가 들어왔다. 군 관계자는 “서해 NLL에는 섬이 많고 짧아 경계·감시가 비교적 수월하지만, 동해는 섬이 없고 NLL 길이가 400㎞가 넘어 북한 소형 목선이 넘어오는 것을 모두 잡아내기 어렵다”고 했다. 어민의 신고 덕에 속초에서 11㎞라는 원거리에 떨어진 북 목선을 조기에 나포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앞서 군은 지난 2019년 6월 북한 목선이 NLL을 넘어 삼척항 앞바다에서 수시간을 보내다 부두에 들어와 주민들에게 발견될 때까지 탐지하지 못해 경계 실패 논란을 불렀다. 당시 목선은 10m로 이번 7.5m 목선보다도 컸었다. 안보 당국 관계자는 “최근 북한 전 지역에서 식량난 악화로 탈북 행렬이 이어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면서 “군 당국과 협력해 경계 태세를 강화할 방침”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