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용~위용~!” 지난 18일 한미 연합 공군기지인 군산 기지(Kunsan Air Base). 전투기 격납고 비상등에 빨간불이 들어오며 경보음이 울렸다. “다다다닥!” 격납고 옆 비상대기실 ‘얼러트(Alert)’에서 조종사와 정비대원들이 군홧발로 뛰쳐나왔다.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카디즈)을 중국·러시아 전폭기가 침범했다는 상황을 가정, 8분 안에 이륙해 대응에 나서는 훈련이었다.

군산 기지는 한미 전투기가 같이 배치된 유일한 한미 연합 기지다. 오충원(왼쪽) 제38전투비행전대장과 제프리 D 슐먼(오른쪽) 미 제8전투비행단 부단장은 지난 18일 올해 한미 동맹 70주년을 기념해 본지에 기지를 공개하면서 부대 패치 교환식을 가졌다. 슐먼 부단장이 먼저 미 8전비 패치를 오 전대장 왼쪽 가슴에 붙여주고 주먹으로 꾹꾹 누르며 친근감을 표하고 있다. /고운호 기자

조종사들은 실제로 최근 제주도 남방 카디즈에 중·러 폭격기들이 무단 진입하자 KF-16 전투기를 몰고 출격해 이들을 쫓아내는 전술 조치 작전을 펼쳤다. 관제탑에선 미 공군 대원들이 우리 측과 송수신하며 작전을 뒷받침했다. 얼마 뒤 미 조종사들도 F-16 전투기를 몰고 한반도 상공을 비행하며 연합 방위 태세를 강화했다. 군 관계자는 “군산은 카디즈 기준으로 정중앙에 위치해 서남부뿐 아니라 서북·동남북 상공도 대응 가능한 전략적 요충 기지”라고 말했다.

한국 공군과 주한미군이 한미 동맹 70주년을 맞아 이례적으로 군산 기지의 한미 주요 시설 내부를 전면 공개했다. 한미가 따로 자국 시설이 있는 기지 일부나 전투기를 제한적으로 외부에 공개한 적은 있지만 한미가 같이 사용하는 기지 핵심 시설을 ‘기밀 해제’한 것은 처음이다. 군산 기지는 한미 공군의 연합 작전이 이뤄지는 국내 유일의 부대다. 경기도 오산이나 평택 기지에 한미 공군 인원이 같이 근무하긴 하지만, 한국 전투기가 배치돼 있진 않다. 양국 전투기가 나란히 활주로를 오르며 연합 방위 태세 임무를 수행하는 곳은 군산 기지뿐이다. 한국 제38전투비행전대, 미군 제8전투비행단이 각각 KF-16 약 20대, F-16 약 40대 등 총 60여 대를 운용한다. 미국이 전세를 뒤집기 위해 우크라이나에 긴급 제공한 전투기 기종인 F-16 60여 대가 항시 무장 출격 가능 상태로 ‘장전’돼 있는 것이다. 미국의 주요 전략자산으로 꼽히는 5세대 최신예 전투기 F-22 랩터와 미 해병대의 F-35B가 각각 올해 초와 지난해 한반도에 전개됐을 때 출격한 곳도 군산 기지였다.

그래픽=양인성

“제프리, 오늘 그 급강하 비행 어떻게 한 거야?” “그거 고도가 이 정도 됐을 때 확 눌렀다가 잡아당겨.”

군산 기지의 오충원 제38전투비행전대장(대령)과 제프리 D 슐먼 미 제8전투비행단 부단장(대령)은 한미 연합 공중 훈련 비행을 마치고 나면 꼭 따로 만나 이 같은 대화를 나눈다. 사후 브리핑 자리에서 공식적으로 작전 결과를 평가하는 시간을 갖지만, 그날 저녁에는 군산 기지 조종사들의 선술집인 ‘후치(Hooch)’에 가서 맥주 한 잔을 시켜 놓고 ‘진짜 디브리핑(debriefing·임무 수행 보고)’한다고 한다.

오 전대장은 지난 18일 군산 기지 미 장교식당에서 가진 본지 인터뷰에서 “군산 기지는 한미 전투기와 조종사들이 같이 있는 유일한 기지”라면서 “비행을 하고 나서 서로 언제든 만나 교본에 없는 진짜 비행 노하우(know-how)를 나눌 수 있는 아주 특별한 곳”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군이 한국에 주둔한다는 건 단순한 전술적 이점을 떠나 한미 대원들이 얼굴을 맞대고 서로 침을 튀겨가면서 토론하고 유대 관계를 쌓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오 전대장은 약 10년 전 대위 때부터 군산 기지에서 근무하다 올해 초 에이스 조종사 출신들이 가는 군산 기지 38전대장에 임명됐다.

한미 전투기 60대 '엘리펀트 워크' - 2012년 3월 당시 군산 기지에서 한미 공군의 KF-16 및 F-16 전투기 60여 대가 활주로에서 일명 '엘리펀트 워크(Elephant Walk·코끼리 걸음)'훈련을 하고 있다. 엘리펀트 워크는 여러 대의 전투·폭격기가 최대 무장을 한 채 활주로에서 일렬로 이동하며 신속 출격에 대비하는 연습으로, 코끼리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걷는 것 같다는 데서 이름이 유래했다. /공군

슐먼 부단장은 군산에만 세 번째 근무라고 했다. 그는 “미 공군에서 군산 기지는 아프가니스탄 등 중동 어느 기지보다 중요한 부대로 정평이 나 있다”면서 “미 8전비는 6·25전쟁 당시 공중 지원 임무를 맡았고 공산당으로부터 지역 방어를 하기 위해 수많은 군사작전을 성공적으로 치러냈다”고 말했다. 슐먼 부단장은 중동 지역에서 벌어진 여러 전쟁에 실제 참전한 적이 있는데, 그때 습득한 실전 비행 경험을 한국 조종사들에게 전수해 주고 있다.

오 전대장은 “오늘날 한국 조종사는 실전 경험이 없지만 미 공군 조종사 상당수가 중동 근무를 마치고 군산에 오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우리는 이들의 싱싱한 전쟁 경험을 고스란히 취득할 수 있다”면서 “한미 연합 공중 훈련은 이런 경험을 연습해 보는 효과도 있다”고 말했다. 여러 대의 전투기가 최대 무장을 하고 활주로에서 밀집 대형으로 지상 활주하는 ‘엘리펀트 워크’ 훈련도 2012년 군산 기지에서 한미 연합으로 처음으로 실시됐다. 엘리펀트 워크는 전투기들이 코끼리들처럼 한꺼번에 움직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비행 시 조종사들을 별칭으로 부르는 미군의 ‘콜 사인(Call sign)’ 문화도 군산 기지에서 한국군에 전수됐다고 한다. 오 전대장 콜사인은 그가 검술 유단자여서 ‘투 소드(쌍칼)’라고 미 조종사들이 지어줬다고 한다. 군산 기지는 한미 연합 공중 작전을 탄생시킨 ‘요람’이자 작전 수준을 발전시킨 ‘R&D 센터’ 같은 부대인 것이다.

이날 저녁 기지에서는 애국가와 미국 국가가 동시에 울려 퍼졌다. 그 순간 길을 가던 한미 장병들은 발걸음을 멈추고 각자의 국기를 향해 경례를 했다. 윤영삼 공군 공보실장(대령)은 “군산 기지는 한반도에서 유일하게 한미 공군이 활주로, 유도로, 항행 시설 등 작전 시설을 공동으로 운영하며 함께 작전을 수행하는 부대로 매일 저녁 한미 국가가 울려 퍼진다”면서 “한미 장병이 동고동락하며 ‘힘에 의한 평화’를 구현하는 한미 동맹의 축소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