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2018년 9·19 남북 군사 합의 체결 이후에도 백령도·연평도 등 우리 서북 도서를 겨냥해 북한 섬과 인근 내륙 해안에 배치된 포문을 지난 5년간 총 약 3400회 개방한 것으로 27일 뒤늦게 알려졌다. 북이 남북 간 포문 폐쇄 합의를 정면으로 위반한 모습은 줄곧 우리 군의 감시 카메라에 잡혔다. 하지만 군 당국은 그간 사진·영상 증거물을 해병대 등 관련 부대에서 보고받고도 북한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고, 국회 국방위나 국민에게 알리지도 않았다. 감사원은 9·19 협상 과정과 사후 관리 등과 관련해 위법성은 없었는지 감사 여부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신원식 국방부 장관은 이날 국회 국방위 국정감사에서 “북한이 알려진 것보다 9·19 합의를 훨씬 많이 심각하게 위반한 것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신 장관은 “3400회 위반은 장소로 따져서 나온 수치인데, 북측 특정 한 곳엔 포문이 많아 포문 수 기준으로는 7000문 가까이 합의를 위반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북한이 매일 3~4회 포문 폐쇄 의무 조항을 위반해 온 셈”이라며 “그런데도 우리는 포 사격 훈련도 안 하고 포문도 폐쇄하면서 9·19 합의를 신줏단지 모시듯 지키고 있다. 이게 과연 올바른 태도인지 의문”이라고 했다.
2018년 당시 문재인 정부가 북한과 체결한 9·19 합의에는 해상 분야와 관련해 “서해 완충 수역(초도~덕적도)에서는 포 사격·해상 기동 훈련을 중지한다. 해안포와 함포의 포구 포신 덮개를 설치하고 포문 폐쇄 조치를 한다(1조 2항)”고 명시돼 있다.
신 장관이 북한의 포문 폐쇄 합의 위반 장소로 지목한 곳은 2010년 연평도를 포격한 북한 4군단 배치 지역으로 추정된다. 4군단은 서북 도서뿐 아니라 인천·경기 수도권까지 사격이 가능한 240mm 방사포를 비롯한 야포·해안포를 여럿 운용하고 있다. 김정은의 측근인 박광주 상장(한국 중장급)이 9·19 합의 때부터 지금까지 5년 내내 4군단장을 맡고 있다. 신 장관은 ‘포문 개방 증거 자료가 있느냐’는 질의에 “군이 영상으로 다 촬영했다”고 답했다.
국민의힘 성일종 의원은 이날 국감에서 북한의 9·19 위반이 포문 건만 3400회나 된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전직 국방부 장관들은 왜 이것을 발표하지 않았느냐”고 지적했다. 해병 연평 부대와 군 정보 당국 등이 고성능 카메라로 북한 포문 개방 장면을 지난 5년간 다 촬영해 놓고도 왜 북측에 문제 제기도 않고 국내에서도 은폐했느냐는 것이다. 신 장관은 성 의원이 ‘영상 증거까지 있는데 왜 전직 장관들은 이걸 묻고 갔느냐’면서 거듭 묻자 “문재인 정부는 포문 개방을 별로 위반이라 인식하지 않은 것 같다”면서 “하지만 포신 덮개 설치, 포문 폐쇄 조치는 9·19 합의문에 명백히 나와 있다”고 말했다. 포문 개방은 공격을 하기 위한 전 단계의 위협 조치이기 때문에 군사 합의 때 포문 폐쇄 내용이 담겼다.
문 정부는 2019년 이후 언론이 여러 차례 북한 장재도 등지의 해안포가 개방된 장면을 촬영해 보도했지만 이에 대해서도 명확한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이에 군이 문 정부의 대북 유화 정책에 보조를 맞추려고 9·19 합의 위반 사실을 쉬쉬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당시 정경두 국방부 장관과 청와대 안보실 인사들이 9·19 합의 사항을 사실과 다르게 홍보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신 장관은 “정 전 장관은 9·19 완충 수역에는 ‘수역(水域)’뿐 아니라 ‘황해도 내륙 지역’도 포함되기 때문에 우리가 양보한 게 아니라고 했었다”면서 “그런데 북한이 황해도 내륙에서 포를 쏘고 포문을 개방해 놓고 있어도 가만히 있었다”고 했다. 당시 청와대 인사들도 9·19 합의에 따라 황해도 내륙 지역에서 포 사격은 없을 것이라고 국방위원들과 취재 기자들에게 말했다고 한다.
신 장관은 북한군 포문 개방에 대해 전임 정부에서 문제 제기하지 않은 것에 대한 감사원 감사가 필요하다는 성 의원 지적에 “지금 감사원에서 9·19 군사 합의에 대해 감사 여부를 검토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