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간 통신연락선이 복원된 2021년 7월 군 관계자가 서해지구 군 통신선을 활용해 시험 통화를 하고 있다. /국방부

북한이 지난 29일 동해 북방한계선(NLL) 인근에서 열흘간 표류하다 우리 해군에 발견된 북한 선박을 당일 밤늦게 예인해 갔다. 합참이 사건 당일 유엔사와 국제상선통신망뿐 아니라 국내 언론을 통해 북 선박이 귀순 의사가 없다는 사실을 공개하면서 북한이 뒤늦게나마 조난 선박을 구조할 수 있었다.

우리 군과 정부는 북한과 언제든 직통할 수 있는 군 통신선과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채널 통신선을 각각 운용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이 지난 4월 7일 두 연락선을 아무런 설명 없이 일방적으로 끊었기 때문에 ‘언론 보도’라는 제3의 수단을 급히 동원한 것이다. 군과 정부의 ‘남북 핫라인’이 살아있었다면 벌어지지 않을 일이었다.

30일 군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은 지난 29일 오후 내내 유엔사와 국제상선통신망에서 우리 군이 북 선박 조난 사실을 발신해도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국제상선통신망은 공해상에서 수많은 다국적 선박들이 공용 라디오 주파수 같은 통신망에서 교신하는 채널이다. 사실상 합참이 이날 오후 2시 16분쯤 북 선박을 포착하고 오후 5시 40분쯤 국방 기자단을 통해 언론에 공표한 뒤에야 북한 측이 해당 사실을 구체적으로 인지해 경비정 등을 보내 구조 작업에 착수한 셈이다. 군 소식통은 “북한이 컴컴한 밤인데도 경비정을 보내 NLL 인근의 선박을 인수해 갔다는 것은 낮에 우리 군이 유엔사나 국제상선통신망을 통해 알렸을 때 제대로 사건을 접수하지 못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합참은 이날 언론에 공지할 때도 북 선박 인원들이 “북으로 돌아가길 희망했다”는 메시지를 강조해 전파했다고 한다. 자칫 이들이 귀순 시도를 한 것으로 오인받아 북한 보안 당국으로부터 부당한 처벌을 받지 않도록 사전 조치를 취한 것이다. 지난 24일 NLL 이남에서 나포된 북한 목선과 달리 이번 북한 선박 탑승자들은 분명하게 귀순 의사가 없음을 피력했다고 한다. 이에 우리 군도 이들의 요청에 따라 초코바, 식수 등을 제공하고 구조 조력만 했다.

군과 해양업계 등에선 “남북 간 직통선이 하루 속히 정상 복구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북한이 일방적으로 통신선을 끊긴 했지만 우리 정부가 그냥 손 놓고 있기보단 적극적으로 최소한의 통신 수단을 살릴 노력을 해야 한다는 취지다. 한국해양연맹 관계자는 “만약 우리 어선이 조난당해 NLL 이북으로 표류하는 등 반대의 상황을 생각해 봐야 한다”면서 “우리는 인도적 지원을 했지만, 북한은 그러지 않을 수 있다. 전쟁 중에도 대화는 필요하다”고 말했다. 원칙적인 대북 대응 기조를 유지하면서도 여러 경우의 수를 고려해 소통 채널 한두 개는 갖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국방부와 통일부 등에 따르면, 북한은 30일에도 동·서해지구 군 통신선과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정기 통화에 응답하지 않았다. 지난 4월 이후 불통 상태가 반년 넘게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픽=양인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