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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 공군 기지를 다녀왔습니다. 특별한 곳입니다. 북한이 ‘북한판 이스칸데르(KN-23)’ 탄도미사일을 시험발사할 때 주로 겨냥하는 표적이 군산 기지입니다. 기지에 한국 제38전투비행전대, 미군 제8전투비행단이 각각 KF-16 약 20대, F-16 약 40대 등 총 60여 대가 운용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동성이 뛰어난 F-16 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사랑받는 전투기 기종입니다. 미국이 전세를 뒤집기 위해 우크라이나에 긴급 제공한 전투기도 다름 아닌 F-16이었죠. 공군 핵심 자산이 밀집한 군산 기지는 그래서 좀처럼 외부인을 기지 안에 들이지 않습니다.
이런 군산 기지를 지난 18일 특별 취재 허가를 받아 오전 11시부터 오후 3시 30분까지 4시간 30분 동안 장시간 현장 취재했습니다. 중국·러시아 폭격기 등 군용기의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 침입 시 단 8분 만에 출격해야 하는 비상대기 근무 상황을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 38전대의 오충원 전대장, 미 8전비의 슐먼 부단장도 만나 한미 연합공중작전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한미 전투기 조종사들이 같이 주둔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상세히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 쓴 기사를 보시려면 이 링크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韓美 전투기 조종사가 한 부대에...군산 하늘엔 애국가·美국가 함께 울린다]
더불어 나누고 싶은 이야기는 군산 기지에 얽힌 소소한 듯하지만 알아둘 만한 이야기입니다. 기지를 돌아다니면서 눈에 띈 것은 한 미국 아저씨의 사진과 늑대 그림이었습니다. 장교 식당 등 실내외 곳곳에 이 아저씨 사진 또는 초상화가 걸려 있었는데요, 누군가 이름을 봤더니 미 공군의 전설적인 ‘탑건’인 고(故) 로빈 올즈(Robin Olds·1922~2007) 준장이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주위 장교들에게 물어봤더니 이 아저씨는 6·25 전쟁에 참전하지도 않았고, 주한미군으로 근무한 적도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이 분이 군산 기지의 상징적 인물이 된 것은 왜일까요? 궁금해서 알아봤습니다.
바로 현재 군산 기지의 미 공군8전비가 한국 배치 직전 올즈에 의해 미 최고의 전투비행단으로 재탄생했기 때문이었습니다. 8전비의 애칭은 ‘울프팩(Wolf Pack·늑대 무리)’으로 8전비 전투기 꼬리날개에 늑대 그림이 그려져 있는데, 이 애칭도 올즈가 붙여준 것이다. 그래서 군산 기지에는 늑대 그림도 많았던 것입니다.
현재 군산 기지의 주축인 미 8전비는 1974년 군산에 배치되기 직전까지 베트남전(월남전)에 참전했습니다. 올즈는 1966년 태국 우봉 공군기지에 주둔한 8전비 단장(대령)으로 부임해 월남전에 참전했습니다. 그는 부임 첫날 “지금부터 너희를 가르칠 텐데, 난 여기 있는 누구보다도 뛰어나다”며 부대원들을 한 명씩 손가락으로 지목했다고 합니다.
그는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나치 독일군의 Fw 190 전투기 등 적기 12대를 격추하고 지상에서도 12대를 격파하는 전과를 올려 ‘에이스 파일럿’의 반열에 오른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2차 대전 후 6·25 전쟁 때도 북한·중공군과 싸우겠다며 참전을 원했지만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아내가 극구 반대해 포기했다가 월남전에 뛰어들었다고 합니다.
그는 참전 당시인 1967년 미 공군 F-105 전투기가 베트남 미그(MiG)-21에 연거푸 피격되자 ‘볼로(BOLO·스페인어로 술주정뱅이) 작전’을 생각해냈습니다. 미 F-105 전투기가 출격하는 것처럼 기만 작전을 펴서 북베트남 미그-21이 대응에 나섰을 때 미 F-4를 띄워 요격했던 것입니다.
이 작전으로 미국은 전투기 손실이 전혀 없이 북베트남 미그-21 7대를 격추했습니다. 당시 북베트남에는 총 16대의 미그-21이 있었기 때문에 7대 격추는 미국의 압승이었습니다. 이 공로로 올즈는 준장으로 진급했습니다. 당시 올즈는 볼로 작전에 출격하는 조종사들을 ‘양의 탈을 쓴 늑대’에 비유해 ‘울프팩’이라고 불렀고, 이때부터 이것이 8전비의 애칭이 됐습니다. 8전비는 1974년 주둔지를 군산 기지로 옮겨 49년이 지난 지금까지 한국 공군과 함께 한반도 상공을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이날 인터뷰를 마치고 군산기지 관제탑도 직접 올랐습니다. 한국군이나 미군만 있을 줄 알았는데, 미군 측과 함께 한국군도 함께 자리하고 근무 중이었습니다. 서해안 바로 옆에 긴 활주로가 놓여 있었는데요. 활주로 바로 옆은 지금은 육지처럼 보이지만 새만금 간척 사업을 하기 전까지만 해도 바닷물이 들어왔다고 합니다. 또 하나 눈에 띈 것은 F-16, KF-16전투기가 날아오르는 해안가를 따라 남북으로 뻗은 주 활주로 옆으로 동서로 놓인 얇고 짧은 활주로였습니다. 주 활주로가 세로로 돼 있다면 이 작은 활주로는 가로로 놓여 있어 좀 이상해 보였습니다. 폭도 너무 좁아서 지금 전투기들의 활주로로 역할 하기도 어려웠습니다.
물어봤더니 이 활주로는 일제 시대 일본군이 1938년 중·일 전쟁 중에 건설한 것이었습니다. 공군 자료를 보니, 군산 기지는 이렇게 일본이 활주로를 놓으면서 조성이 된 것으로 기록돼 있었습니다. 지도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군산은 중국 산둥반도를 코앞에 두고 있습니다. 산둥반도에서 닭 우는 소리도 들린다는 말이 있을 정도죠. 지금도 군산 기지는 한반도 서남부 공중 방어의 최선봉 부대로 역할하고 있습니다. 일본이 중일 전쟁을 치를 때 지금의 군산기지에 활주로를 놓은 것도 지리적 전략성을 고려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렇게 시작된 군산기지는 해방 후에는 미군이 사용했습니다. 3년 뒤인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이후인 1949년에는 한국 공군의 기지가 됐습니다. 6·25전쟁 때는 북한군에 두 달여 빼앗겼다가 1950년 9월 3일 미 육군이 탈환했습니다. 짧은 세월 군산 기지에 참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미 공군이 처음으로 주둔한 것은 F-84를 주 기종으로 하는 제27전투비행단이 1951년 군산 기지에 공식 배치됐을 때입니다. 이후 지금의 미 8전비가 1974년 F-4를 주 기종으로 군산에 배치됐습니다. 미 8전비는 1981년 기종을 F-4에서 F-16으로 교체하며 전력을 대폭 강화했습니다. 현재 미 8전비 예하에는 35대대, 80대대 등 두 전투 비행 대대가 있습니다.
군산에서 한미 공군 전투기가 나란히 서게 된 것은 1960년대부터입니다. 한국 공군은 1963년 당시 F-86을 운영하는 제11전투비행단 소속의 제111전투비행대대(111비행대대)를 군산 기지에 배치했습니다. 그전까지 한국 공군에는 전투기 전력이 부족했습니다. 111비행대대는 1985년 F-5로 기종을 전환했습니다. 1987년에는 군산 기지에 제38전투비행전대를 창설했다. 111 비행대대가 현 38전대의 모태인 셈입니다.
38전대는 2006년 전투기 기종을 F-5에서 KF-16로 바꿨고, 이때부터 한미 연합 공중 작전이 본격적으로 이뤄지기 시작했습니다. 그전까지는 한국 공군의 F-5와 미 F-16의 성능 차이가 커서 실질적인 연합 훈련이 쉽지 않았다고 합니다.
한국 공군의 주력 기종인 KF-16과 미 F-16의 연합 훈련의 핵심 기지가 된 군산 기지는 한미 양국의 참모총장을 배출한 부대로 유명합니다. 그만큼 에이스 조종사들이 배치되는 곳이라는 의미다. 정상화 전 공군참모총장과 찰스 퀸턴 브라운 주니어 전 미 공군참모총장(현 합참의장) 모두 군산 기지 조종사 출신입니다. 정 전 총장이 군산 38전대 111 비행대대장일 당시 브라운 전 총장이 미 8전비 단장으로, 둘이 약 7개월간 같이 근무했다고 합니다.
김정수 현 39 비행단장(준장)은 위탁 교육 제대로 미 공사를 졸업했는데 미국 쪽 동기였던 테드 클라크 준장과 대령이던 2020년 같은 시기 군산 기지에서 각각 38전대장, 미8전비 단장을 맡았습니다. 군 관계자는 “군산 기지는 한미 동맹의 축소판과 같은 곳”이라면서 “전쟁 때 북한에 빼앗기기도 했지만 지금은 한미 연합 공중 작전의 중추 기지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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