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 억류됐다가 숨진 미국인 대학생 고(故) 오토 웜비어의 부모가 미국 은행에 동결돼 있던 북한 자금 220만3258달러(약 28억6000만원)를 회수했다고 VOA(미국의 소리)가 15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아들이 세상을 떠난 지 6년이 넘었지만 북한을 상대로 한 프레드·신디 웜비어 부부의 ‘정의 구현’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는 부부가 북한의 새 자금원으로 지목된 가상 화폐 계좌까지 파헤치고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미국 뉴욕 남부연방법원 재판부는 지난달 23일 “미국 은행에 예치된 북한 자금을 웜비어 부부에게 지급하라”고 판시했다. 소유권 이전이 승인된 자금은 뉴욕멜론은행에 예치된 220만3258달러로 원소유주는 ‘러시아 극동은행’이다. 부부는 “극동은행은 북한 고려항공의 대리·대행 기관”이라며 해당 자금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했는데 법원이 이를 받아들인 것이다. 미 재무부 해외자산통제실(OFAC)은 지난해 5월 극동은행이 고려항공에 재정·물질·기술 지원을 제공했다며 이 자금을 동결했다.
오토 웜비어는 2016년 1월 북한 여행 중 평양에서 정치 선전물을 훔치려 한 혐의로 체포돼 같은 해 3월 노동교화형 15년을 선고받았다. 이후 17개월 동안 억류됐다가 2017년 6월 의식불명 상태로 석방됐고, 귀환한 지 엿새 만에 사망했다.
웜비어 부부가 아들의 죽음에 대한 북한 책임을 묻기 위해 소송을 제기하고 돈을 받아낸 것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아들이 세상을 떠난 이듬해인 2018년 워싱턴DC 연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해 법원으로부터 5억 달러 손해배상액을 인정받은 것이 그 시작이었다. 이 판결을 근거로 전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는 북한 자산을 추적해 압류하거나 동결시켰다. 2019년 북한산 석탄을 불법 운반하다 인도네시아 당국에 억류된 선박 ‘와이즈 어니스트호’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 매각 대금 일부를 건네받은 것이 대표적이다.
북한의 자금을 회수해 책임을 묻기 위한 부부의 노력은 치밀했다. 2019년 미 의회가 통과시킨 ‘오토 웜비어 북핵 제재 강화법’은 북한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자금뿐 아니라 제3자 대북 금융제재 대상의 자금에 대해서도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줬다. 재무부가 극동은행 자금을 동결하면서 “오토 웜비어법의 정신에 따른 것”이라 했는데 이 제재를 근거로 법리를 구성했으니 부부가 아들 이름을 딴 법안의 첫 수혜자가 된 셈이다.
오하이주 신시내티의 웜비어 일가는 지역에서 부유하고 영향력 있는 유대인 가문으로 부부는 삼남매 중 장남인 오토가 22세의 젊은 나이에 숨지자 모든 연줄을 동원해 보복 조치에 나섰고 현재 진행형이다. 웜비어 부부는 2019년 방한해 “김정은이 사람을 잘못 선택했다”며 “내가 죽는 순간까지 악랄한 김정은 정권과 싸우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