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과 미국의 공군 전투기들이 지난달 21일 남중국해 상공에서 연합훈련을 펼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다국적의 국제 정세 전문가 43명에게 미국·중국 갈등의 전망을 물은 조사에서 35%는 비군사적 형태로 갈등이 지속될 것이라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15%는 5~10년 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4연임이 겹치면서 군사적 충돌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10%는 이보다 빠른 5년 이내 군사적 충돌이 벌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5~10년 내 갈등이 봉합돼 대타협이 이뤄질 것이란 분석은 20%였다. 5년 내 타협이 가능하다는 입장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전문가 모두 미중 갈등이 5년 내로는 해결되지 않을 것으로 내다본 것이다. 나머지 20%는 무응답 등이었다.

윤병세(오른쪽) 전 외교부 장관이 5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니어재단 글로벌 조사 보고서 기자회견에서 보고서 내용을 발표하고 있다. 윤 전 장관은 이번 조사 프로젝트의 의장을 맡았다. /노석조 기자

니어재단은 5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세계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라는 주제의 ‘글로벌 서베이 보고서’ 발표 기자회견을 열고 이 같은 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번 조사는 정덕구 니어재단 이사장이 기획 총괄하고 윤병세 전 외교부 장관이 니어재단 글로벌 프로젝트 의장을 맡아 고명현 아산정책연구원 선임연구원, 이성원 세종연구소 연구위원, 매이슨 리치 한국외대 교수, 로버트 켈리 부산외대 교수, 라몬 파르도 킹스칼리지 런던 교수, 변정아 니어재단 연구부 팀장 등이 참여해 진행됐다.

대만해협에 나타난 중국 전투기.

이들은 지난 1년간 미국 외교협회(CFR), 허드슨 연구소, 프린스턴대, 헤리티지재단, 영국 킹스칼리지, 대만 국방안보연구원, 스위스 보르헤르트 컨설팅, 스웨덴 안보개발정책연구소, 싱가포르 싱가포르 국립대·난양기술대, 노르웨이 에식스대, 뉴질랜드 웰링턴 빅토리아대, 말레이시아국립대오스트리아 유럽 및 안보 정책 연구소 소속 교수·연구원, 그리고 영국 소재 대학의 중국인 교수 2명, 체코·프랑스·독일·인도·이탈리아·일본·한국 국적 학자 등 43명의 각국 국제전문가를 상대로 설문조사를 했다. 국내에서 글로벌 정세 분석 보고서가 나온 것은 처음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미중 관계 전망과 관련 전체의 60%는 미중 갈등이 어떤 형태로든 지속될 것으로 봤다. 가장 큰 비율인 35%는 현재와 유사한 비군사적 갈등 형태가 장기간 이어질 것이라고 봤다. 그러나 25%는 짧게는 5년 내 또는 10년 이내 미중간 군사적 충돌이 벌어질 것이라고 봤다.

미중 갈등 위기가 커지는 기존의 국제 질서에 변화가 오는 원인으로는 중국의 공세적 부상(29%),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24%), 미국 리더십의 쇠퇴(14%), 국가 안보와 경제·기술 분야의 밀접화(10%) 등이 꼽혔다. 유럽의 한 응답자는 “우리는 이제 미국이 여전히 지배적이긴 하지만 약해진 가운데, 주요 강대국간 상당한 이견이 존재하는 더 다극적인 세계에 직면해 있다”는 의견을 달았다고 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지난달 15일(현지시각)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인근 우드사이드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나란히 산책하며 엄지를 치켜세우고 있다. 이날 두 정상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약 1년 만에 대면 회담을 했다. /연합뉴스

아시아계 호주인 응답자는 “우리는 단극적 질서에서 다극적 질서로의 전환을 목격하고 있으며, 이는 국제 질서의 본질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다극적 질서의 창출은 기본적으로 새로운 견인차의 등장을 의미하며, 그 힘을 행사하기 시작한 중국의 부상이 가장 큰 요인이다”고 말했다.

북미의 한 응답자는 “단극에서 다극적으로의 변화는 되돌릴 수 없는 추세다. 많은 국가가 ‘진영으로부터 거리를 두거나, 이익과 협상력을 최대로 높이기 위해 서로 행위자들의 경쟁 관계를 이용하는 전략을 택함으로써 자신들의 이익을 더 잘 보호할 수 있다고 판단할 것이다”고 했다.

니어재단 글로벌 프로젝트팀은 이번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글로벌 공통 관심분야에 대한 협력을 통해 경쟁과 대립을 완화해야 한다”는 제안을 내놓았다. 기후 변화, 자연 재해, 환경의 지속가능성,에너지 전환, 식량 안보 등과 같은 양자적, 지역적, 글로벌 차원의 공동 관심 분야에서의 협력에 힘을 써야한다는 것이다. 또 “유사 입장 국가와 연합을 강화하되 이 연합이 배타적이지 않다는 점을 명확히 하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했다.

정덕구 니어재단 이사장이 5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글로벌 서베이 보고서 발표회 '세계, 어디로 가고 있는가: 파편화된 세계 속 질서를 위한 경쟁'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그러면서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일 때 연합국이 ‘대서양 헌장’의 초안을 작성해 전후 자유주의 국제 질서의 토대를 닦았듯이, ‘인도·태평양 헌장’을 내는 방안도 검토할 것을 제안한다”고 했다. 인태 지역의 중요성이 커진만큼 이 헌장을 통해 인태 지역을 너머 새로운 국제 질서를 구축하는 또 하나의 ‘마그나 카르타(대헌장)’ 될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