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과학연구소(ADD) 창립 직원인 강춘강 여사가 지난달 7일 대전 유성구 국방과학연구소를 방문해 1970년대 연구소 직원 사진을 보고 있다./연합뉴스

“미국에서 유튜브만 들어가면 K방산 영상이 뜨는데, 볼 때마다 울컥하더라고요. 감동이 밀려와 평생 모은 연금 전액 100만달러(13여 억원)를 국방과학연구소(ADD)에 쾌척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재미교포 강춘강씨는 본지 인터뷰에서 “올해 초 여든을 맞아 유언장을 쓰다 기부에 뜻이 생겼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결심을 바로 실행에 옮겼다. 지난 8월 ADD에 기부 의사를 밝히는 편지를 보냈고, 이후 석 달 만인 지난달 7일 대전 ADD에서 기부 약정식을 체결했다. 필라델피아에 거주하는 강씨가 약정식을 위해 한국에 잠시 체류하던 지난달 14일 서울에서, 그리고 4일 국제전화로 인터뷰했다.

국방과학연구소(ADD) 창립 멤버 강춘강 여사가 지난달 14일 서울 동대문구의 한 호텔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강 여사는 평생 모은 연금 100만달러를 ADD에 기부하기로 했다. 재미교포인 그는 “올해 여든이 돼 유언장을 쓰면서 ADD가 자주 국방을 이끄는 데 보탬이 되길 바라는 마음을 품었다”고 했다./고운호 기자

-기업가도 아닌데 기부금 100만달러는 큰돈이다.

“1943년 경북 영덕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자랐다. 경북대 영문학과 졸업 직전 1970년 창립된 ADD의 신응균 초대 소장의 비서로 일하게 됐다. 1972년 초까지 창립 멤버로 근무하다 어머니가 ‘집에서 멀리 떨어져 사는 삶을 살라’며 미국으로 유학을 보냈다. 대학에 간 오빠와 달리 학업을 잇지 못한 어머니의 바람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필라델피아 드렉셀대에서 상담심리학 석사학위를 받고 필라델피아 교육청에서 24년간 특수아동·상담심리분석관으로 일했다. 10년 전 70세로 퇴직할 때까지 연금 저축으로 넣어둔 전액이 100만달러다.”

국방과학연구소(ADD) 창립 직원인 강춘강 여사가 지난 7일 대전 유성구 국방과학연구소에서 열린 유산 기부약정서 전달식에서 박종승 국방과학연구소 소장과 기념 촬영하고 있다./국방과학연구소 제공

-기부를 결심한 계기는.

“미국에는 유언장 문화가 있다. 올해 여든이 돼서 유언장을 쓰면서 어딘가에 기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에 어떻게 쓰일지 모르는 곳에 돈을 맡기기보다는 분명한 목적에 내고 싶었다. 그런 와중에 한국 K-2전차, K-9자주포, 전투기 등 한국 무기가 폴란드에 대량 수출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유튜브에 계속 이런 영상이 뜨는데, 이런 걸 젊은 사람들 말로 ‘국뽕’이라고 하는지, 알 수 없는 애국심, 울컥함이 마음 밑바닥부터 올라왔다. 마침 나는 50여 년 전 ADD 창립 멤버였다. ADD가 앞으로 더욱 자주 국방을 이끄는 데 보탬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 ADD에 기부하기로 결정했다. ADD가 잘되면 국방력도 강해지고 방산 수출도 해 나라도 부강해지니 선순환이라고 봤다.”

-당시 여성으로서 ADD 창립 멤버가 되는 건 이례적인데.

“대구에서 자랐지만, 외가는 서울이었다. 서울 홍릉 근처에 ADD를 비롯해 경제 등 각 분야 국가연구소가 창설되는 무렵 대학 졸업반이었다. 외가로 올라가 지내다 ‘나라에 보탬이 되는 일터가 있다’는 외삼촌의 이야기를 듣고 ADD 초대 소장 비서를 지원했다. ADD 초기엔 직원 대부분이 과학자보다는 행정·사무직이었다. 미 백악관 파견단이 ADD를 여러 차례 방문했던 기억이 있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국방의 초석이 되라’며 설립을 주도하며 ADD를 자주 찾았다. 박 대통령은 내가 가져온 보리차를 마시며 소장의 보고를 받았다.”

강춘강씨가 지난달 14일 서울 동대문구의 한 호텔에서 본지와 인터뷰하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고운호 기자

-연금 전액 기부에 가족 반응은.

“드렉셀대 공부할 때 유대인계 미국인 변호사였던 남편을 만났다. 둘 다 나이가 꽤 있어 아이를 낳지 못해 딸을 입양하려고 했는데, 남편 건강이 악화돼 못 했다. 남편은 7년 여 전 세상을 떠나기 전 이스라엘에 재산의 상당 부분을 기부했다. 남편처럼 나도 조국인 한국에 죽기 전 기부하려는 것이다. 국민학교 2학년 때 6·25전쟁이 터졌고, 대구로 피란민이 밀려들어오던 광경이 생생하다. 거리의 아이들은 구두닦이를 하며 푼돈을 벌었고, 미군에 초콜릿을 구걸했다. 그랬던 한국이 이렇게 기적적으로 발전했다. 미국에서 한국을 잊어본 적이 없다. 어머니가 미국으로 유학을 보내며 ‘주는 사람이 되라. 그게 큰 그릇이다’라고 하셨는데, 그걸 부족하나마 실천하고 싶었다.”

재미교포 강춘강 전 미 필라델피아 교육청 심리상담관이 지난 11월 14일 서울 동대문구 신설동 한 호텔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그는 50여년 전 창립 멤버로 근무했던 국방과학연구소(ADD)에 평생 모은 연금 100만 달러를 자주 국방을 이루는데 써달라며 쾌척했다. /고운호 기자

☞국방과학연구소

1970년 박정희 대통령 지시로 설립됐다. 미국·유럽 등지에서 일하던 과학자들을 데려와 최고 대우를 해줬다. 1972년 소총·기관총·박격포·수류탄·지뢰 등을 자체 생산하는 데 성공했다. 1978년 개발한 지대지 유도탄 ‘백곰’은 현무-4 등 미사일 기술 발전의 토대가 됐다. ADD의 뒷받침으로 세계 정상급 전차와 자주포, 항공기, 이지스함 등 350종 넘는 무기가 국산화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