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주한 미 해군 사령부 본부 건물 복도에 걸린 흥남철수 사진. 미 해군 구축함 베가호가 열흘간의 흥남철수 작전 마지막 날인 1950년 12월 24일 북·중공군이 사용하지 못하도록 폭파해 시커먼 연기로 뒤덮인 흥남 부두를 뒤로하고 부산을 향하고 있다. /노석조 기자

부산 남구의 주한 미 해군사령부 본부 복도에는 6·25 전쟁 당시 촬영된 흑백 사진 한 장이 다른 여러 사진과 함께 걸려 있다. 열흘간 이어진 ‘흥남 철수 작전’의 마지막 날인 1950년 12월 24일 미 해군 구축함 베가호(USS Begor·APD-127)가 시커먼 폭발 연기에 휩싸인 흥남 부두를 뒤로하고 떠나는 장면이다. 당시 미군 폭약반은 부두 인근까지 추격한 북한·중공군이 사용하지 못하도록 부두 주요 시설을 전면 폭파하고 철수길에 올랐다.

흥남 철수는 1950년 12월 중공군의 개입으로 고립될 위기에 처한 한미 병력과 피란민 등 20여 만명을 철수한 전례 없는 대규모 작전을 말한다. 당초 미군 사령부는 한국군 1군단, 미 보병 10군단 등 병력 10만명과 차량·군수품만 싣고 부산으로 철수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북한·중공군 밑에서 살 수 없다”며 지역 피란민 10만여 명이 부두로 몰려왔다. 미군은 망설였다. 전시 작전 선박에 민간인을 태우는 건 군 규정 위반이었다. 간첩이나 적 병력이 탑승할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백일(1917~1951) 1군단장 등은 병력뿐 아니라 피란민 10만여 명을 부산과 거제로 철수시키자고 미측을 설득했다.

이에 12월 15일부터 24일까지 열흘간 군함, 상선 등 선박 190여 척을 동원한 대규모 철수 작전이 펼쳐졌다. 동원된 화물선 메러디스 빅토리호에만 피란민 1만4000여 명이 탔다. 28시간 항해 끝에 성탄절인 25일 거제에 도착했는데, 거센 추위에도 승선자 단 1명도 숨지지 않고 오히려 그사이 5명의 아이가 태어났다. 미국에선 이런 흥남 철수와 동원된 배를 각각 ‘1950년 크리스마스의 기적’, ‘기적의 배’로 부른다. 함흥이 고향인 문재인 전 대통령의 부친 고(故) 문용현씨도 이 흥남 철수 작전을 통해 거제로 피신할 수 있었고 그곳에서 문 전 대통령을 낳았다.

주한 미 해군사령부는 6·25 전쟁 때 한미가 함께 힘을 모아 기적의 스토리를 쓴 흥남 철수를 ‘한미동맹의 초석’이라며 관련 사진을 본부 메인 복도에 걸어 놓고 있다고 한다. 미 해군 관계자는 “부산 기지에는 흥남 철수의 역사가 깃들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