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 초음속 전투기 ‘KF-21 보라매’ 사업의 타당성 조사와 발전 방안 연구 등을 총괄하던 한국국방연구원(KIDA)의 선임연구원이 최근 과로로 쓰러져 ‘뇌사(腦死)’ 상태에 빠진 것으로 22일 알려졌다. 현무 탄도미사일 개발에 참여했던 한국국방과학연구소(ADD) 연구원이 지난 21일 실험 중 폭발로 순직한 사건에 이은 비보다.
복수의 소식통에 따르면, KIDA에서 무기획득사업을 책임지는 고모(52) 분석단장은 지난달 말 서울 동대문구 KIDA에서 “몸이 안 좋다”면서 조퇴를 했다가 자택에서 쓰려졌다. 병원으로 후송됐지만 뇌사 판정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최선임 연구원 직급인 책임연구위원으로 KF-21 전투기사업 분석단을 이끌어왔다고 한다. 최근 그는 KF-21의 첫 양산 사업에 대한 타당성 조사 연구와 관련해 마음고생이 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고 단장이 이끄는 연구팀이 분석해보니 KF-21 성능에 다소 미흡한 점이 발견돼 초도 양산 물량을 당초 계획한 40대에서 20대로 줄이는 것이 적합하다는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개발사 측의 입장과 충돌하는 것이어서 논란이 됐다.
KF-21은 올해 1월 초음속 비행에 성공하는 등 4.5세대 첨단 전투기로서 성능은 입증했지만 아직 공대지 미사일 능력은 갖추지 못해 추가 개발이 필요한 것으로 분석됐다. 고 단장은 ‘양산하면서 미사일 성능도 업그레이드하면 된다’는 개발사 측과 절충안을 찾으려 수일간 밤을 새웠다고 한다. 소식통은 “쓰러진 분석단장은 다른 무엇보다 마치 자신이 KF-21 개발에 딴지를 건 것으로 오해받는 데 스트레스를 받았다”면서 “무기 관련은 모든 게 다 기밀이라 제대로 해명도 못 하고 속앓이를 많이 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무기 체계 전문가로 지난 20여 년간 KIDA에서 근무한 그의 손을 거쳐 간 주요 무기만 4~5가지는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 정책과 무기 개발 국책 기관인 KIDA와 ADD는 K방산의 전례 없는 수출 성과에 뿌듯해하면서도 마냥 웃지는 못하는 분위기라고 한다. 한 관계자는 “연구원들의 과로사, 퇴사 행렬이 끊이지 않아 연구소 분위기가 전반적으로 숙연하다”고 말했다. KIDA에서는 2021년 한 연구위원이 일과 중 신경마비 증상을 보이며 쓰러져 사망했다. 지난 21일 폭발 사고가 발생한 ADD에서는 2019년 추진제 연료 실험실에서 폭발 사고가 나 선임 연구원 1명이 숨지고 연구원 5명이 크게 다쳤다. ADD는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고위력 탄도미사일 현무-4, ‘한국판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로 불리는 장거리 지대공 유도무기(L-SAM) 개발에 성공했다. 그러나 이 같은 핵심 무기 개발에 참여했던 연구원들이 지난 5년 사이에 140~170명 퇴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매년 30명 안팎의 이탈 행렬이 이어진다는 것이다. 한 연구원은 “성과보상금이 제대로 지급되지 않는 등 상대적으로 낮은 처우를 받는 데다 ‘비닉(비밀) 무기’ 개발을 하기 때문에 개인 생활이 제한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연구원 대부분은 대학이나 민간 기업으로 자리를 옮긴다고 한다.
KIDA 전직 책임연구위원은 “폴란드, 호주,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등으로 K무기가 대거 수출될 수 있는 배경에는 어디에 이름 하나 알리지 않고 음지에서 묵묵히 본분을 다해온 연구원들의 피와 땀, 그리고 헌신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부와 군이 지난 21일 순직한 ADD 연구원 사건에 대해 ‘애도 메시지’를 냈듯이 국가가 ‘숨은 주역’의 애국심과 헌신을 잊지 않고 각별히 챙기고 대우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