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연평도와 백령도 북쪽의 이른바 ‘해상 국경선’에서 군사 대비태세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북한에서 ‘국경선’은 북·중 경계를 말했는데, ‘적대적 두 국가 체제’를 선언한 북한의 기조가 반영된 표현으로 풀이된다. 김정은이 ‘연평도·백령도 수역’이라며 지명을 구체적으로 언급한 것도 이례적이다. 향후 도발을 앞두고 명분을 쌓기 위한 작업에 들어갔다는 관측이 나온다.

김정은이 14일 오전 신형 지상대해상(지대함) 미사일 '바다수리-6형' 검수 사격 시험을 지도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5일 보도했다. 김 위원장은 연평도와 백령도 북쪽 국경선 수역에서의 군사적 대비태세를 강화할 중요지시를 내렸다고 통신은 전했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은이 지난 14일 신형 대함미사일 검수사격 시험을 지도하는 자리에서 “해상 국경선을 믿음직하게 방어하며 적 해군의 모험적인 기도를 철저히 분쇄할 데 대한 방도”를 제시했다고 15일 보도했다. 통신에 따르면 김정은은 “적들이 구축함과 호위함, 쾌속정을 비롯한 전투함선들을 자주 침범시키는 연평도와 백령도 북쪽 국경선 수역에서의 군사적 대비태세를 강화할 데 대한 중요 지시”를 내렸다. 특히 “서해에 몇 개의 선이 존재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으며 또한 시비를 가릴 필요도 없다”며 “명백한 것은 우리가 인정하는 해상 국경선을 적이 침범할 시에는 그것을 곧 우리의 주권에 대한 침해로, 무력도발로 간주할 것”이라고 했다고 통신은 전했다.

북한에서 ‘국경선’은 통상 북한과 중국 경계를 뜻했다. 하지만 북한은 올해 들어 남북을 “동족 관계가 아닌 교전국 관계”로 규정하면서 지난달 ‘남쪽 국경선’ 발언에 이어 이날 ‘해상 국경선’을 들고 나온 것이다. 앞서 김정은은 지난달 “우리 국가의 남쪽 국경선이 명백히 그어진 이상 불법 무법의 북방한계선(NLL)을 비롯한 그 어떤 경계선도 허용될 수 없으며 대한민국이 우리의 영토·영공·영해를 0.001㎜라도 침범한다면 그것은 곧 전쟁 도발”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날 ‘국경선’ 발언은 북한의 의도적인 용어 혼란전술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국방부 관계자는 “김 위원장이 말한 ‘남쪽 국경선’이 과거 서해 NLL을 무시하면서 제시했던 ‘서해 경비계선’ 등과 일치하는지는 명확하지 않다”며 “북한이 말하는 도발의 레드라인이 어딘지 모호한 측면이 있다”고 했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이연주

양욱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NLL 지역에 대한 경고로 보인다”며 “NLL을 넘어서면 새로 개발했다고 주장하는 대함미사일로 타격할 수 있다는 경고”라고 했다. 북한은 이날 하루 전 발사한 순항미사일이 ‘지상대해상’(지대함) 미사일이라고 주장했다. 지대함 미사일은 육지에서 함정을 타격하는 용도로 쓰인다. 북한 전문가들은 향후 북한이 일방적으로 ‘해상 국경선’과 ‘남쪽 국경선’을 일방적으로 선포하고 나설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있다.

북한이 14일 발사했다고 주장한 신형 지상대해상(지대함) 미사일 '바다수리-6형' 발사 모습/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군 관계자는 “김정은 입에서 연평도·백령도라는 구체적인 지명이 나온 것은 이례적인 일”이라고 했다. 연평도와 백령도를 언급하면서 이곳에서 군사적 긴장 수위를 높이려는 의도라는 해석이 나온다. 해당 구역에서 향후 북한이 도발을 감행할 때를 대비한 사전 명분 쌓기에 나섰다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이날 “한국 괴뢰들이 국제법적 근거나 합법적 명분도 없는 유령선인 ‘북방한계선’이라는 선을 고수해보려고 발악하며 3국 어선 및 선박 단속과 해상순찰과 같은 구실을 내들고 각종 전투함선들을 우리 수역에 침범시키며 주권을 심각히 침해하고 있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

다만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말 폭탄일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며 “정말 연평도·백령도 수역을 언급하며 포격 등 국지도발을 하려면 이러한 공개적 언급 없이 기습 타격을 시도할 것”이라고 했다. 북한 입장에서는 실제 도발을 앞두고 이런 공개적 언급을 통해 한국과 미국의 대비태세를 강화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