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원 기자의 외교·안보 막전막후 <2회>]

경호팀 만류로 취소되자 자정부터 호텔 20층 방에서 동생과 술 마셔

DJ, “큰일 하는 남자에겐 역경 따른다. 고난 이겨내라”고 조언

클린턴, 1년 뒤 DJ에게 “작년 내게 해준 말 영원히 잊지 않을 것”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1992년 대선 때 TV프로그램 ‘아르지니오 홀 쇼’에 출연, 색소폰을 연주하고 있다. 검은색 선글라스를 끼고 엘비스 프레슬리의 ‘하트브레이크 호텔’을 연주, 조지 HW 부시 대통령의 엄숙한 이미지와 비교되며 인기가 치솟았다. /조선DB

1998년 방한한 빌 클린턴 미 대통령 에피소드는 KBS 열린음악회 공개 녹화장 불시 방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경호진도 놀랐다, 클린턴이 DJ 만찬 후 열린음악회 달려간 이유]

< 1회 참고 https://www.chosun.com/politics/diplomacy-defense/2024/04/07/NBEGST55GJGFPO743PQHOXRL5E >

1998년 11월 21일 클린턴이 세종문화회관에 예고 없이 나타난 기사를 급히 송고한 직후인 저녁 11시30분쯤입니다. 클린턴이 자신이 머물던 H호텔의 유명 바(Bar) J에 내려가 색소폰을 불 예정이라는 정보를 입수했습니다. H 호텔의 J는 투숙 중인 외국인들은 물론 한국의 유명인들도 자주 들르는 곳으로 지금도 유명합니다. 저도 당시 가끔 이곳에서 지인을 만나곤 해서 잘 알고 있었습니다. 가능성이 없다던 클린턴의 KBS 열린음악회 공개 녹화장 방문도 현장에서 목격했기에 이곳에도 클린턴이 갈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 즉시 그곳으로 날아가다시피해서 갔습니다.

22일 자정쯤 H 호텔에 도착했습니다. 지하의 J에 들어가서 깜짝 놀랐습니다. 실제로 그곳에 색소폰이 준비돼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당시 그곳에서 일하던 고참 직원도 클린턴이 내려올 가능성을 부인하지 않았습니다.

클린턴은 1992년 대선 때 미국의 유명 TV프로그램인 ‘아르지니오 홀 쇼’에 출연, 색소폰을 연주할 정도의 실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당시 그는 검은색 선글라스를 끼고 엘비스 프레슬리의 ‘하트브레이크 호텔(상심의 호텔)’을 연주했지요. 그가 색소폰을 부는 모습은 당시 현직 대통령이던 조지 HW 부시(아버지 부시)의 딱딱한 이미지와 비교되며 인기가 치솟는 요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는 퇴임 후, 이탈리아에서 열리는 산레모 가요제 주최 측으로부터 색소폰을 연주해 달라는 초청을 받기도 했습니다.

H 호텔 상황 파악이 끝난 후, 편집국에 “아무런 경호 장치 없는 세종문화회관에 깜짝 출연한 클린턴이라면 색소폰이 불고 싶어서 내려올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했습니다. 클린턴이 등장할 가능성에 대비, 구석에 자리잡고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새벽 1시를 넘어 신문 최종판을 마감할 때까지 클린턴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새벽 2시쯤 귀가했습니다.

그 다음 날 H 호텔과 이곳을 담당하는 경찰로부터 뒷얘기를 들었습니다. 중요한 공식 일정을 모두 마친 클린턴이 바에서 색소폰을 불고 싶다고 했으나 경호팀에서 ‘불가(不可)’ 의견을 강하게 피력했다고 합니다. J의 실내가 어둡고 손님들이 많아서 경호가 불가능하다는 이유였습니다.

그러자 클린턴은 자정 무렵부터 20층 프레지덴셜룸에서 바로 옆 방의 동생 로저를 불러 함께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새벽녘까지 이어졌다는 얘기도 있었습니다. 당시 호텔 측과 경찰로부터 “클린턴 형제가 술을 꽤 마신 것 같다. 빈 술병이 여러 병 나왔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면 클린턴은 이날 왜 J에 가서 색소폰을 불려고 했으며 왜 자정 무렵부터 동생과 술을 마셨던 걸까요? 클린턴은 당시 3박4일 일정으로 방한했습니다.김대중 대통령과 정상회담 등 중요한 일정은 21일 모두 끝나고 22일은 주로 미군 격려 행사여서 다음 일정에 큰 부담이 없었던 것이 영향을 미쳤을 수 있습니다.

그보다는 당시 클린턴이 백악관 인턴과의 섹스 스캔들이 폭로되면서 그의 인생에서 최대의 위기를 맞았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1993년 7월10일 방한한 美 클린턴 대통령 내외./연합뉴스

클린턴의 성추문은 당시 절정에 이르고 있었습니다. 케네스 스타 특별검사는 그가 11개 항(項)의 법률을 위반, 탄핵 사유에 해당한다는 보고서를 냈습니다. 1998년 11월 방한 직전에 연방 하원에서 탄핵 절차가 시작됐습니다. 어쩌면 곧 백악관에서 나와야 할지도 모르는 처지였습니다. 당시 그가 힐러리와 같은 방에서 못 자고, 거실에서 잔다는 얘기기 나오기도 했습니다. 클린턴은 1993년 7월, 1996년 4월 방한 당시에는 부인 힐러리 클린턴(오바마 정부에서 국무장관 역임)과 함께 왔습니다. 하지만 1998년 세 번째 방한에는 힐러리가 동행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스트레스 속에서 한미 정상회담을 마친 그가 동생과 함께 술을 많이 마신 것 같다는 해석이 나왔습니다. 워싱턴 DC로 돌아가면 하원에서 탄핵안이 통과될지도 모르는 불안한 상태였던 것이지요. 실제 클린턴의 탄핵소추안은 그로부터 약 한 달 뒤인 1998년 12월 미국 하원에서 가결됐습니다. 클린턴은 1999년 2월 미 상원이 표결을 통해 탄핵 소추안을 기각 처리함으로써 살아날 수 있었습니다. 클린턴의 서울 H 호텔 색소폰 소동은 이 같은 탄핵 흐름의 한 모퉁이에서 일어난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1997년 미 대통령 집무실에서 백악관 근무 인턴들과 기념 사진을 찍을 당시의 빌 클린턴과 모니카 르윈스키. /백악관

[P.S.]

#1 섹스 스캔들로 어려움에 처한 채 한국에 온 클린턴을 김대중 대통령이 위로해준 것을 1999년 외교부를 출입하면서 알게 됐습니다. DJ는 1998년 11월 21일 저녁 청와대 만찬이 끝난 마친 후, 클린턴이 KBS 열린음악회 녹화장으로 가기 전에 연회장 구석으로 불렀다고 합니다. DJ가 목소리를 낮춰 말했습니다. “큰일을 하는 남자에겐 생각하지 못했던 고난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당신이 잘 극복해 나갈 것으로 믿습니다.” DJ는 이런 말도 했습니다. “당신은 미국의 재정 적자 모두 없애고, 경제 틀을 튼튼하게 해서 미국의 영웅으로 기록될 것입니다. 역경을 이겨 내시길 바랍니다.”

그로부터 10개월 뒤인 1999년 9월. DJ와 클린턴이 오클랜드에서 열리는 제7차 APEC 정상회의에 참석했습니다. 이를 계기로 김대중-클린턴-오부치 일 총리가 한미일 3국 정상회담을 가졌습니다. 회담장에서 오부치가 먼저 나간 후, 이번엔 클린턴이 DJ 를 불러 세웠습니다. 클린턴이 DJ에게 말했습니다. “I’ll never forget what you said when I went to Seoul(내가 지난해 서울에 갔을 때 김 대통령이 내게 해 준 말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입니다).” 결국 실패로 끝난 DJ의 햇볕정책은 동의하기 어려운 점이 많지만, DJ가 클린턴과의 관계를 위해 들인 정성은 음미해볼 게 많다고 생각합니다.

#2 지난주 <이하원기자의 외교·안보 막전막후> 첫 회가 나간 후, 클린턴 대통령의 세종문화회관 방문 상황을 잘 알고 있던 관계자들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한 관계자는 “클린턴 대통령이 녹화장에 올 가능성을 동생 로저로부터 들었는데, 그렇다면 김대중 대통령도 함께 오면 좋지 않느냐”는 얘기가 극비리에 거론됐다고 했습니다.

당시 클린턴이 세종문화회관으로 갈 것을 예상하지 못했던 우리 측은 경호 문제를 고려, 정문으로 들어가지 않도록 했다고 합니다. 세종문화회관 외부에서 공연 관련 장비들이 무대 옆까지 곧장 들어갈 때 사용하는 문이 있는데, 이곳을 통해서 비밀리에 입장시켰다는 겁니다. 다른 관계자는 “세종문화회관 무대 옆면과 연결되는 통로에 굵은 전선들이 바닥에 깔려 있어서 클린턴 대통령이 발을 헛디디지 않을 까 걱정했다”고 했습니다. 미 대통령이 한국 방문에서 전기 배선 등이 깔린 곳을 통해 이동한 것은 전례 없는 일로 앞으로도 나오기 어려울 것입니다.

빌 클린턴 미대통령이 1998년 11월 22일 오산의 미 공군 기지를 방문하자 장병들이 환호하고 있다. /조선일보DB

이하원의 막전막후 뉴스레터 구독하기 ☞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3285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