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되지 않은 외서(外書)를 가장 먼저 읽고 해제해 드리는 국내 유일의 뉴스레터 ‘노석조의 외설(外說)’의 이메일 구독자 수가 26일 2710명을 넘어 3000을 향해가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어떤 외서를 소개해드릴까 궁리하다가 미 현지 뉴욕타임스의 책 지면을 살펴봤습니다. 논픽션 부문 베스트셀러 1위인 책 제목이 눈에 확 들어왔습니다. 피 냄새, 돈 냄새 나는 제목이었습니다.
‘블러드 머니(Blood Money)’.
미국의 보수 논객 피터 슈와이저(Peter Schweizer)의 신간입니다.
한국에선 외서를 아마존 킨들로 사서 읽었는데 미국에 와서는 대학 도서관이나 페어팩스 공립 도서관을 주로 이용하고 있습니다. 이번에도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려고 했는데요, 웬걸 ‘블러드 머니’는 다 대여 중이었습니다. ‘베셀(베스트셀러 줄임말)’이 맞긴 하구나 실감했습니다. (달러당 1400원에 육박하는 ‘금(金)달러’ 20장을 주고 책을 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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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책에서 작년 초 중국의 스파이 열기구가 미 상공을 침투해 알래스카에서부터 사우스 캐롤라이나까지 이동하며 각종 정보를 수집한 사실이 드러나 미 전역을 놀라게 한 사건을 언급하며 " 잘 드러나지 않았지만 사실 더 심각한 중국발(發) 문제가 있다”고 운을 뗍니다.
그러면서 “미국의 군인들은 해병대들은, 미국의 청년들과 시민들은 요즘 전쟁터 아닌 곳에서 죽어가고 있다”면서 “총성이 들리지도, 군홧발 소리나 발자국도 없는 아주 일상적인 공간에서 소리 소문 없이 희생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이라크 전쟁, 아프가니스탄 전쟁 때보다도 더 많은 미국인이 펜타닐 중독으로 죽어나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미국을 뒤덮은 펜타닐은 중국의 직배송 우편물이나 캐나다·멕시코 등 제3국 경유 등을 통해 유입되고 있다고 말합니다.
중국 정부는 나 몰라라 하지만 미 마약단속국(DEA)에 따르면, 펜타닐의 주요 공급원은 다름 아닌 중국이라는 것입니다. 특히 국제 우편으로 펜타닐이 광범위하게 밀매되고 있다고 합니다.
펜타닐은 모르핀보다 80~100배 더 강력한 합성 아편 유사제입니다. 분말, 정제, 캡슐, 용액, 패치 및 암석과 같은 다양한 형태로 제공됩니다.
책은 “중국 공안은 나라 안팎을 드나드는 우편물을 별다른 영장이나 법적 절차 및 허가 없이 샅샅이 들여다보고 통제하는 것으로 유명하지만, 신기하게도 펜타닐은 걸러내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중국이 자국 내로 들어오는 마약 물질은 철저하게 걸러내면서도 나라 밖으로, 특히 미국으로 나가는 펜타닐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엄격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요즘 미 마약단속국에는 새로운 매뉴얼이 생겼다고 합니다. 마약 신고가 들어와 출동했을 경우 우선적으로 발신지가 중국인 우편물이 있는지부터 확인하라는 지침이 시행됐다는 것입니다. 중국발 소포가 있으면 십중팔구 펜타닐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또 펜타닐의 마약성이 유난히 강한 만큼 섣불리 환자와 신체 접촉할 경우 구조 대원이 피해를 볼 수 있어 각별히 주의할 것으로 가르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2022년 12월 미 플로리다주에서는 마약 단속에 나섰던 경찰이 바람에 날린 펜타닐에 노출되자 그대로 기절한 영상이 공개되기도 했습니다.
합성 마약인 펜타닐을 생산하는데, 필요한 제약 성분 대부분은 중국 베이징 인근에 있는 허베이성 성도 스자좡(石家庄)에 있는 화학 회사들이 만들고 있다고 지목했습니다. 스자좡에는 군사화 도시로 여러 군사 시설이 있다고 합니다. 펜타닐 화학물질을 생산하는 기업은 세금 공제 혜택도 받고 있다고 합니다.
또 다른 펜타닐 주요 생산지는 우한이라고 합니다. 우한은 코로나 발원지로 알려진 곳인데, 현재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를 놀라게 하는 펜타닐의 주요 생산지이기도 한 것입니다. 중국에선 펜타닐 원료를 만드는 것이 불법이 아니라고 합니다.
저자는 중국이 멕시코 등 제3세계를 이용해 미국에 펜타닐을 유입시키는 수법이 ‘차도살인’과 비슷하다고 했습니다. 중국 병법서 36계 가운데, ‘남의 칼을 빌려서 사람을 죽인다’는 제3계 차도살인(借刀殺人) 수법을 중국이 쓰고 있다는 주장입니다.
실제로 중국발 펜타닐 확산 사태가 심각해지자 미국 정부는 지난해 중국 정부에 펜타닐 불법 유통과 이로 인한 대미 유입의 심각성에 대한 우려를 직접 전달했습니다. 하지만 중국은 잘 점검하겠다면서도 “미국인들이 펜타닐을 오남용 하는 것이 문제 아니냐”는 반응을 보였다고 합니다.
저자는 중국의 과거 아편 전쟁에 대한 복수극을 펜타닐로 벌이는 건 아닌지 심히 의심된다는 주장도 했습니다.
펜타닐은 아편으로 만든 모르핀보다 환각성 등 강도가 100배 이상 강하다고 합니다.
미국에서 펜타닐 과다복용에 따른 사망자 수는 계속 급증세입니다.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2010년 펜타닐 과다복용으로 죽은 사람은 4000명 미만이었지만, 2021년에는 6만6000명을 넘어섰습니다. 지난 10년 동안 약 4배 넘게 폭증한 것입니다.
2022년 7만5000명이 펜타닐 과다복용으로 사망했고, 2021년에는 8만411명이 사망했습니다.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전사자의 10배를 넘어선 것입니다.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 연구진이 2010년부터 2021년까지 미국에서 발생한 모든 약물 과다복용 사망자 추이를 조사한 결과 2010년에는 미국 전역에서 약물 과다복용으로 사망한 사람이 4만명이 채 되지 않았습니다. 이 중 펜타닐과 관련된 사망자는 10% 미만이었습니다. 그 이후부터 이상하리만큼 펜타닐 유입과 이로 인한 피해가 갑자기 늘어난 것입니다.
저자는 책에서 중국보다는 이러한 펜타닐 침투 사태에 제대로 대응하지 않는 미국 정치인들의 안일한 태도도 어쩌면 진짜 문제라고 꼬집습니다. 이대로 방치했다가는 과거 중국이 아편 전쟁으로 나라가 병들었듯이 미국도 눈 뜨고 코 베일 수 있으니 적극적인 조처를 하라는 주문을 책 전반에 걸쳐 합니다.
미 재무부 해외자산통제국은 지난해 10월 펜타닐 제조와 밀매에 관여한 중국 기업과 기업을 제재했습니다. 제재 목록에 오른 14개 기업 중 1곳은 캐나다에 있었으며 나머지는 중국 기업이었습니다. 개인 14명은 2명을 제외하고 모두 중국인이었습니다.
펜타닐은 쌀 한톨 만한 양으로도 전신이 뒤흔들리고 극심한 환각증세를 겪다 죽음에 이를 정도로 강력하다고 합니다. 극소량만으로도 환각, 중독성이 심하다 보니 국제우편물에 살짝 끼워만 넣어도 숨기기 손쉽습니다.
한번 손만 댔다가는 헤어나올 수 없는 중독의 늪에 빠지고 얼마 뒤에는 ‘좀비’처럼 되어 버리니 어쩌면 육중한 겉모습의 핵무기보다도 이 펜타닐 한 톨이 더 위협적이고 국가 안보에 치명적인 건 아닐까 싶습니다. ‘블러드 머니’라는 책이 미국 베스트셀러 1위에 몇 주째 올라 있는 것 자체가 현재 미국인들의 관심사가 무엇인지 얼마나 심각하게 여기고 있는 것인지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아울러 ‘블러드 머니’를 보다 과연 펜타닐 세계 최대 생산지인 중국 바로 옆에 있는 한국은 과연 안전한가? 의문이 들었습니다.
미국에서는 최근 중앙정보국(CIA), 법무부, 국무부, 재무부, 주 정부 할 것 없이 모든 기관과 조직이 펜타닐 방어에 총력전을 펴고 있다고 합니다. 관련 예산만 수천억 달러에 달합니다. 우리 국정원(NIS)이나 외교부, 법무부 등도 더 각별히 관심을 갖고 예방책을 마련해야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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