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경호 행렬에서 과거에 없던 도요타 SUV(스포츠 유틸리티 차량) ‘랜드크루저 300′ 6대가 28일 확인됐다. 북한에 운송 수단이나 사치품을 판매·이전하는 것을 금지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 제재가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북한은 최근 대북 제재를 비웃듯 고급 차량들을 잇따라 노출시키고 있다.
미국의 북한 전문 매체 NK뉴스는 김정은이 지난 25일 인민군 창건 92주년을 맞아 김일성군사종합대학을 방문했을 때 조선중앙TV가 보도한 화면을 분석해 행렬을 이룬 외제차 18대 중 6대가 일본 도요타사의 랜드크루저 300 시리즈라고 보도했다. 김정은의 경호원들이 탑승한 것으로 보이는 이 차량은 대당 가격이 8만달러(약 1억1000만원) 이상이다.
이날 김정은은 지난 2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선물받은 러시아산 고급 차량인 ‘아우루스’ 리무진에 탑승했다. 푸틴의 의전 차량인 아우루스는 개발에 1700억원이 투입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러시아판 롤스로이스’로 불린다. 김정은의 차량 행렬에는 그 외에 독일 메르세데스벤츠사의 고급 SUV인 마이바흐 GLS 600 2대, 일본 렉서스의 LX SUV 2대, 미국 포드사의 승합차인 트랜짓 2대, 구형 메르세데스 세단 5대 등이 있었다. 모두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가 제대로 지켜진다면 북한이 구입할 수 없는 외제차다.
지난 2월 말 김정은이 평안남도 성천군의 한 공장 착공식에 참석했을 때도 그를 수행하는 차량 행렬 속에서 미국 포드 자동차의 ‘트랜짓’으로 추정되는 승합차들이 확인돼 논란이 됐다. 당시 김정은은 마이바흐 리무진에 탑승했는데, 그 앞에서 렉서스 SUV가 길을 안내하고 트랜짓으로 보이는 대형 승합차 4대가 뒤를 따랐다. 그로부터 약 두 달 만에 또 다른 외제차가 김정은의 차량 행렬에서 목격됐다.
김정은의 고급 외제차 사랑은 널리 알려져 있다. 올 초에는 고급 SUV인 마이바흐 GLS 600을 탄 모습이 북한 기록영화에 나왔다. 지난해 12월 전국 어머니 대회에 참석할 때는 2019년 이후 판매가 시작된 마이바흐의 신형 세단인 S650에 탑승했다. 2018년 남북 정상회담 당시 이용한 마이바흐 S600 풀만 가드 리무진과는 다른 차량이다. 김정은은 2018년 10월 마이크 폼페이오 당시 미국 국무 장관의 방북 당시 롤스로이스 팬텀의 방탄 차량을 타고 맞이했고, 2020년 8월에는 수해 현장을 방문하면서 렉서스 LX570으로 추정되는 SUV 차량을 타고 갔다.
2020년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 전문가 패널은 김정은이 사용하는 마이바흐 방탄 리무진이 이탈리아에서 네덜란드, 중국, 일본, 한국, 러시아 등 6국을 거쳐 평양에 밀반입된 것으로 추정했다. 최근 북·러가 밀착하며 김정은이 러시아를 통해 신형 외제차를 반입하기도 수월해졌을 가능성이 높다. 러시아는 지난달 유엔 안보리에서 이뤄진 대북 제재 전문가 패널의 임기 연장 표결에 거부권을 행사해, 대북 감시망을 무너뜨렸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