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호 주중 대사가 지난달 22일 재외공관장 회의 시작을 앞두고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참배를 마치고 방명록 작성을 기다리고 있다. /뉴시스

지난 3월 대사관 직원을 상대로 ‘갑질’을 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던 정재호(64) 주중 대사에 대해 외교부가 일부 부적절한 발언은 있었지만 징계 사안은 아니라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7일 전해졌다. 갑질과 함께 제기된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판단돼, 조태열 외교부 장관이 정 대사에게 ‘직원들의 인화(人和)’를 신경써 달라는 정도의 구두 조치를 할 전망이다.

베이징의 주중 한국 대사관에 근무 중인 주재관 A씨는 갑질과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가 있다며 3월 7일 외교부 본부에 정 대사를 신고했다. A씨는 외교부가 아닌 다른 부처 소속의 주재관이다. A씨는 2022년 8월 베이징에 부임한 정 대사가 취임 초기 주재관을 대상으로 한 교육에서 ‘갑질’에 해당할 만한 발언을 했고, 이후에도 자신에게 부당한 업무 지시를 하는 갑질을 했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또 지난해 9월 주중 한국 대사관에서 열린 국경일 리셉션을 두 달여 앞두고 정 대사에게 이메일을 보내 한국 기업들이 매년 수천 만원을 들여 이 행사에 홍보 부스를 차리는데, 대사관이 합당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것은 청탁금지법 위반이라고 주장했다고 전해졌다. 정 대사는 같은 공관에 있는 대사에게 이메일로 보고하는 법은 없다며 대면 보고를 요구했지만, A씨는 이를 거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외교부는 지난달 15일부터 현지에서 정 대사, A씨와 함께 근무한 다른 주재관들, 주중 대사관 행정관 등을 두루 조사했다. 하지만 정 대사가 심각한 갑질을 하거나 청탁금지법을 위반했다는 혐의는 확인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 대사가 취임 후 첫 주재관 교육에서 ‘주재관들이 문제다. 사고만 안 치면 된다'는 취지의 부적절한 발언은 한 것으로 보이지만, 참석했던 주재관들이 기억하는 발언이 조금씩 다르고 징계위원회에 회부할 정도의 문제는 아니라고 한다.

또 주중 대사관 리셉션의 경우 기업들에게 참여 여부를 물어본 뒤, 참여를 원하는 기업만 비용을 내서 홍보 부스를 차리고 홍보 효과란 반대 급부를 받기 때문에 청탁금지법 위반은 아니라고 한다. A씨는 청탁금지법 주무기관인 권익위원회에도 같은 내용의 신고를 했지만, 권익위도 청탁금지법 위반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결론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외교부는 또 정 대사가 같은 공관에 근무하는 A씨에게 이메일이 아닌 대면 보고를 요구한 것은 하급자에 대한 합당한 업무 지시라고 판단했다고 한다. A씨는 정 대사의 대면 보고 지시에 법적 근거가 없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공직 사회에서 이메일 보고는 이례적인 일이라는 것이다.

이에 따라 외교부는 정 대사에게 인사 기록에 남는 징계 조치나 서면 경고 등은 하지 않았다. 다만 주중 대사관 직원들의 인화를 위해 구두 조치를 할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