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서울에서 한·중·일 정상회의가 열린 지난 27일부터 나흘째 백화점식 도발에 나서고 있다. 군은 북한이 한·중·일이 4년 5개월 만에 정상회의를 재개한 데 불만을 드러내며 동북아 지역에서 긴장을 고조시키려는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 27일 밤 쏘아 올린 군사 위성 발사 실패로 인한 내부 동요를 단속하려는 뜻도 있다고 군은 분석한다. 이와 함께 남북관계를 ‘적대적 교전국 관계’로 규정한 북한이 전쟁까지는 아니더라도 군사적 수단을 동원해 한국 사회를 흔들어 놓으려는 ‘회색지대(gray zone)’ 공격을 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무력 도발, 테러, 심리전 등이 결합한 하이브리드전(戰) 양상이 본격화하는 것이다.
이성준 합참 공보실장은 30일 북한의 단거리 탄도미사일(SRBM) 도발과 관련해 “북한이 주장하는 군사 정찰 위성이 실패했고, 북한의 내부적인 갈등 사항을 외부로 돌리기 위한 목적이 있다”며 “그러한 (의도로) 오물 풍선도 보내지 않나 평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합참은 이날 북한의 SRBM 무더기 발사에 대해 “20발 가까이 되는 미사일을 이동식 미사일 발사대(TEL)에서 발사했다”며 “하루에 이렇게 많이 쏜 것은 극히 이례적”이라고 했다. 이날 북한이 발사한 SRBM은 600㎜ 초대형방사포란 분석이 유력하다. 김정은이 지난 3월과 4월 두 차례에 걸쳐 현지 지도를 하며 사격 장면을 공개한 무기 체계다. 사거리 350㎞ 이상으로 핵탄두를 장착하면 수도권은 물론 한국의 주요 군사 시설을 핵 공격할 수 있다.
북한은 전날에 이어 이날도 두 차례 서해 북방한계선(NLL) 일대에 GPS 전파 교란 공격을 했다. 꽃게잡이 철 조업을 나선 어민들이 GPS 오작동으로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정부가 최근 NLL 이남 꽃게 어장을 추가로 개방해 지난달 꽃게 어획량이 지난해 같은 달과 비교해 80% 이상 늘어난 상황에서 어업 활동에 피해를 준 것이다.
합참은 “GPS 교란으로 인한 군사작전 제한은 없다”고 했다. 군용 GPS는 민간 상용 GPS와는 다른 주파수 대역대를 쓰는데, 북한의 이번 재밍(Jamming·전파 방해) 공격은 상용 GPS를 겨냥한 것이란 얘기다. 한국군 전투기와 함정에는 GPS 교란 공격에 대비한 보조 장비 등이 갖춰져 있다고 한다.
북한이 지난 28일부터 이틀 동안 살포한 ‘대남 오물 풍선’에 대해 정부 관계자는 “(남한) 내부 분열을 일으키려는 목적”이라고 했다. 북한은 미사일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비용이 적게 드는 ‘대남 풍선’ 도발을 6년 만에 꺼내 들었고, ‘오물 풍선’이 한국 미디어에서 다뤄지면서 도발 효과도 누렸다고 평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김여정은 29일 대담에서 “’표현의 자유 보장’을 부르짖는 자유민주주의 귀신들에게 보내는 진정 어린 ‘성의의 선물’”이라며 “계속 계속 주워담아야 할 것”이라고 했다. 한국군 관계자는 “북한이 생화학 무기 등 위험물질을 풍선에 매달아 보낼 경우 풍선 살포지점을 원점 타격하겠다”고 했다. 한국군은 북한군이 오물 풍선을 띄워 보낸 살포 지점을 파악하고 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의 GPS 교란과 오물 풍선 도발은 군사적 긴장을 한반도에 조성하면서도 한미 동맹의 맞대응을 초래할 위험은 낮추는 회색지대 전략으로 풀이된다. 한미와 정면 대결을 하기보다는 해킹, 소규모 테러, 가짜 뉴스 유포 같은 회색지대 도발을 통해 사회 혼란을 일으키는 것이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2010년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전에 준하는 고강도 도발 대신 긴장감 고조와 국면 전환을 위해 북한이 가진 카드를 모두 활용하고 있다”며 “올여름 한미 핵 협의그룹(NCG) 회의, 8월 을지프리덤실드 연습, 그리고 11월 미국 대선까지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한 도발을 지속할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