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5월 1일 오후 경기도 파주 육군 9사단 교하소초에서 병사들이 임진강변에 설치된 대북 심리전 확성기 방송시설을 철거하고 있다.

정부가 9·19 남북 군사합의 전면 효력 정지에 나선 것은 그동안 이 합의가 일방적으로 우리 군에 불리한 ‘족쇄’로 작용했다는 판단과 더불어 필요시 신속한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를 위한 준비 움직임으로 해석된다. 최근 북한의 도발이 우리 국민들에게 실제적인 피해와 위협을 가하는 상황에서 군의 대비 태세가 제약받는 현실을 더 두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4일 국무회의, 대통령 재가 등의 절차를 거쳐 군사합의 효력이 정지되면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훈련이 가능해지는 등 북한의 도발에 대한 충분하고 즉각적인 조치가 가능해질 것으로 정부는 보고 있다.

그래픽=박상훈

◇”군사분계선 5km 내 훈련 재개”

2018년 9월에 열린 평양 남북정상회담 공동선언의 부속합의인 9·19 군사합의는 육상 및 해상 완충 구역 설정, 비무장지대(DMZ) 내 감시초소(GP) 철수, 전방 지역 비행 금지 구역 설정, 공동경비구역 비무장화 등이 주 내용이다. ‘육해공 모든 영역에서의 상호 적대 행위 중지’를 위한 광범위한 ‘적대 행위 중지 구역’도 설정했다. 이에 따라 우리 군은 군사분계선 남측 5㎞ 내 포사격과 여단급 이상 기동훈련을 하지 않고 있었지만, 군사합의 효력이 정지되면 훈련을 정상화할 수 있게 된다. 정부 관계자는 “우리 군 포병훈련장은 대부분 군사분계선 5km 안에 있고 북한군은 거의 다 후방에 있다. 9·19 군사합의로 손해보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며 “또 백령도 서북도서 해상 사격도 금지했는데, 전부 효력 정지하면 해상 사격 등이 가능해지면서 대비 태세를 더 강화할 수 있다”고 했다.

반면 북한은 2019년 2월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이 결렬된 이후 사실상 군사합의를 무시해왔다. 위반 사례가 3600회에 달한다. 2019년 11월 23일에는 서해 창린도에서 포격 훈련을 벌였고, 김정은이 직접 사격 현장을 찾아 지휘까지 했다. DMZ 내 한국군 GP를 향해 총격을 가해 지상 관련 조항을 어겼고, 2022년 12월 26일에는 무인기 5대를 우리 영공에 침투시켜 용산 등 서울 중심지까지 위협 정찰하고 돌아가며 공중 관련 조항을 위반했다.

북한의 도발이 이어지면서 우리 군은 대응 차원에서 군사합의 중 감시·정찰 활동을 제한하는 ‘비행 금지 구역 설정’의 일시 효력 정지를 지난해 11월 결정했다. 그러자 북한은 이를 구실 삼아 다음 날 9·19 군사합의 전면 파기를 선언했다.

◇”이동형 확성기 배치 준비”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하기 위해서도 9·19 군사합의 효력을 정지하는 절차가 필요하다. 확성기 방송을 금지하는 내용은 2018년 4월 27일 ‘판문점선언’과 9·19 군사합의에 모두 담겨있다. 정부는 당시 국회 비준을 받지 못한 판문점 선언은 법적 구속력이 없는 정치적 선언으로 보고 있다. 반면 9·19 군사합의는 문재인 정부가 국회를 ‘패싱’하고 국무회의에서 의결을 했기 때문에, 국무회의를 통해 효력 정지를 하는 절차를 밟아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가 ‘선 9·19, 후 판문점’이라는 단계별 접근으로 대북 압박을 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먼저 군사합의만 효력 정지하면 다음 압박 카드로 판문점선언 파기를 꺼낼 수 있다”며 “바이든 행정부가 ‘북한 비핵화’를 판문점선언에서 시작하겠다고 천명한 것도 고려됐을 것”이라고 했다.

정부는 북한이 지난 2일 ‘오물 풍선 살포 중단’ 방침을 밝힌 이후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 등 우리 측 대응 수위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정형 대북 확성기를 바로 전방에 설치하기보다는 이동형 대북 확성기를 언제든 배치할 준비를 하고 북한 도발 수위에 맞춰 대응하는 방침이 유력하다. 합참 관계자는 “군은 즉각 임무 수행이 가능하도록 준비와 태세를 갖추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