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2일 북한의 오물 풍선 살포와 위성항법장치(GPS) 교란 도발이 이어질 경우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하기로 사실상 방침을 정했다. 문재인 정부는 2018년 4월 판문점 선언으로 ‘확성기 방송’을 적대 행위로 규정하고 대북 확성기를 철거했는데, 북한의 이어지는 도발에 북한 정권이 민감해하는 심리전 카드를 다시 꺼낸 것이다. 다만 북한이 이날 밤 ‘풍선 살포 중단’ 입장을 밝힘에 따라 북한의 상황을 보며 대응 수위를 조절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 관계자는 “북한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좀 지켜보겠다”고 했다.
◇”9·19 합의 전면 폐기로 이어질 수도”
정부는 확성기 방송 재개 준비를 위해 이르면 4일 국무회의에서 판문점선언과 9·19 남북 군사합의 일부 또는 전부를 무효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대북 확성기 방송을 제약하는 조항은 판문점 선언 2조 1항의 “확성기 방송과 전단 살포를 비롯한 모든 적대 행위들을 중지하고 그 수단을 철폐한다”와 9·19 군사합의 1조의 “남과 북은 지상과 해상, 공중을 비롯한 모든 공간에서 군사적 긴장과 충돌의 근원으로 되는 상대방에 대한 일체의 적대 행위를 전면 중지하기로 하였다”이다.
9·19 군사합의 무력화는 우선적으로 확성기 방송 재개를 위한 절차이지만, 해당 조항이 아닌 합의 전체에 대한 무효화로 결정될 경우 우리 군의 대북 억지력을 제한했던 ‘족쇄’가 풀린다는 점에서 북한에 대한 최고 강도의 압박이 될 것으로 보인다.
9·19 군사합의는 체결 당시부터 우리 측에만 압도적으로 불리하고 북한에 유리하다는 안보 전문가들 지적이 나왔다. 북한이 수천 차례에 걸쳐 합의를 어겼지만 우리 측은 현재 일부 조항과 내용에 대해서만 효력 정지를 선언한 상태다. 지난해 북한이 군사정찰위성을 세 차례 발사하자 9·19 합의가 규정한 ‘비행 금지 구역’ 관련 조항 효력을 정지하고 군사분계선 일대 공중 감시·정찰 활동을 복원했다. 이어 북한이 지난 1월 연평도 등 서북도서 인근에 사흘간 포 사격을 실시하자 ‘해상 및 지상 적대 행위 중단 구역은 존재하지 않는다’며 해당 내용을 무효화했다.
하지만 이번 북한의 연쇄 복합 도발로 정부 내에서는 ‘이번 계기에 판문점 선언 및 부속 합의서인 9·19 군사합의를 완전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까지도 우리 군은 군사분계선 인근 실기동·실사격 훈련을 자제하고 있다.
◇북 도발 재개 시 확성기 바로 튼다
정부가 6년 만에 다시 꺼낸 ‘대북 확성기’는 1963년부터 활용되기 시작한 대표적인 대북 심리전 수단이다. 인기 K팝 등 한류 관련이나 김정은 체제의 실상을 북한 주민들에게 적나라하게 알리는 내용으로 주로 구성된다. 우리 군은 현재 신형 고정식·이동식 대북 확성기를 40여 개 보유하고 있는데, 소리가 잘 전파되는 저녁 시간에는 최대 30㎞ 밖에서도 방송 소리가 들린다고 한다.
확성기는 과거에도 대북 응징의 단골 수단으로 활용됐다. 노무현 정부 때인 2004년에 남북 군사합의를 통해 중단됐지만 목함 지뢰 도발(2015년)이 터지자 11년 만에 방송을 재개했다. 이후 북한의 4차 핵실험(2016년) 등에 대한 대응 조치로 방송이 이어졌다.
북한은 주민들의 내부 동요를 유발할 수 있는 확성기에 민감하다. 2017년에는 군사분계선을 넘어 탈북한 북한군은 “대북 확성기 방송을 듣고 귀순을 결심했다”고 했다. 2015년에는 고사포와 직사 화기 등을 동원해 경기 연천 대북 확성기에 조준 사격을 가하기도 했다. 우리 정부가 확성기 재개 방침을 밝힌 2일 밤 북한이 바로 ‘풍선 살포 중단’ 담화를 낸 것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정부 고위 관계자 “우리 측에서 세게 나가니 북한이 반응한 것”이라고 했다.
군에 따르면, 대북 확성기 방송 외에 다른 대응 수단도 검토되고 있다고 한다. 우리 군 심리전 부대는 ‘대남 오물 풍선’ 이상의 심리전 수단을 보유하고 있고 최근에도 비공개로 대북 심리전 관련 훈련을 진행한 것으로 전해졌다. 장호진 국가안보실장은 “(오물 풍선 및 GPS 교란 도발이) 반복될 경우 우리의 대응 강도도 더욱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판문점 선언
2018년 4월 27일 판문점에서 열린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간 정상회담 직후 발표된 선언.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한다는 공동의 목표를 확인했다”는 선언과 함께 그해 5월 1일부터 확성기 방송과 전단 살포를 중지하며 서해 NLL 일대를 평화 수역으로 하고 단계적 군축, 종전 선언을 위해 연내 회담을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9·19 남북 군사 합의
2018년 9월 19일 평양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 당시 송영무 국방장관과 노광철 북한 인민무력상이 서명한 판문점 선언 이행 후속 합의. 그해 11월 1일부터 군사분계선 주변 육지, 바다, 하늘에서 포 사격, 기동 훈련, 정찰 비행 등 군사 활동을 중단하고 비무장지대 안 감시초소(GP)를 철수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