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최전방 지역에서 대북 확성기 방송을 튼 것은 2018년 이후 6년 만이다. 북한이 최근 이날 밤까지 총 네 차례에 걸쳐 대남 오물 풍선을 무더기 살포하자 우리 정부가 맞대응으로 강력한 대북 심리전 카드를 다시 꺼낸 것이다.
군은 지난주에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를 위한 ‘자유의 메아리’ 훈련을 진행한 데 이어 이날 오후 공식적으로 방송을 실시했다. 합참은 “방송 추가 실시 여부는 전적으로 오물 풍선 살포 중단 등 북한의 행동에 달려 있다”고 했는데, 방송 직후인 9일 밤 북한이 추가로 오물 풍선을 띄운 만큼 대북 확성기 방송은 당분간 지속할 가능성이 커졌다.
군은 고정식 대북 확성기 24개와, 확성기를 차량에 얹은 형태인 이동식 대북 확성기 16개를 투입할 수 있다. 이날은 고정식 확성기 위주로 일부 전력만 운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군은 확성기를 주로 서부 전선 일대에 집중 배치했다고 한다. 인구밀도가 낮은 동부 전선보다 개성 등에 직접적 영향을 줄 수 있는 서부 전선에서 확성기 방송 효과가 높다고 판단한 것이다. 고출력 스피커를 이용한 대북 확성기 방송은 장비와 시간대에 따라 청취 거리가 10∼30㎞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북한의 오물 풍선에 담긴 내용물이 치명적이지는 않더라도 국민에게 미치는 심리적 타격이 있을 수 있어 당연히 강력한 대응을 할 수밖에 없다”며 “평화는 돈으로 구걸하는 게 아니라 힘을 통해서 쟁취하는 것”이라고 했다.
앞서 정부는 북한이 군사위성 발사와 오물 풍선 살포, GPS 교란, 탄도미사일 발사 등 복합 도발을 이어가자 “감내하기 어려운 조처를 할 것”이라며 확성기 방송 재개를 예고했고, 지난 4일 9·19 군사 합의 전부 효력 정지를 결정하면서 확성기 방송 재개와 군사분계선 인근 훈련 등을 가능하게 했다. 우리 군의 능력을 제한해 온 족쇄를 푼 것이다.
정부는 이날 확성기 방송 재개 방침을 알리며 “앞으로 남북 간 긴장 고조의 책임은 전적으로 북한 측에 달려 있을 것임을 분명히 한다”고 했는데, 북한의 추가 도발을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된다. 북한은 2015년 우리 군이 북한의 목함 지뢰 도발 이후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하자 확성기를 향해 고사포와 직사 화기를 동원해 조준 사격 도발을 감행했다. 북한은 이번에도 확성기 방송을 막기 위해 물리적 공격에 나설 수 있다. 신원식 국방부 장관은 이날 전군 주요 지휘관 회의를 주관하고 “대북 방송 실시에 만전을 기하고, 이를 빌미로 적이 도발 시 ‘즉강끝(즉시, 강력히, 끝까지)’ 원칙에 따라 단호히 응징하라”고 했다. 군 당국은 이달 중 재개할 방침인 서북 도서와 군사분계선 일대 등 남북 접경 지역 내 훈련 준비도 서두를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6년 만에 다시 꺼낸 대북 확성기는 1963년부터 활용된 대표적인 대북 심리전 수단이다. 방송은 인기 K팝 등 한류 관련이나 김정은 체제의 실상을 북한 주민들에게 적나라하게 알리는 내용으로 주로 구성된다. 일각에서는 “고작 확성기 방송 트는 게 무슨 효과가 있냐”는 비판을 하지만, 북한 정권은 주민들의 내부 동요를 유발할 수 있다는 점에서 확성기 방송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한다. 북한은 2015년 우리 군의 확성기 방송 중단을 끌어내고자 남북 고위급 회담을 먼저 제의했고, 2018년 4월 ‘판문점 선언’에서도 확성기 방송 중단을 핵심 내용으로 집어넣었다. 탈북 외교관 출신인 태영호 전 의원은 “휴전선 30㎞ 안에 북한군 70만명이 나와 있는데, 이들이 수년간 확성기 방송을 통해 한국의 음악·뉴스 등을 계속 접하다 고향으로 돌아가면 북한 체제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북한은 우리 정부가 ‘확성기 재개 검토’ 방침을 밝힌 지난 2일 오물 풍선 살포를 잠정 중단한다고 밝혔지만, 국내 민간단체가 지난 6~7일 대북 전단을 보내자 8일 풍선 살포를 재개했다. 정부는 ‘대북 전단 금지·처벌 조항’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 이후 탈북 민간단체의 전단 살포 활동을 직접적으로 제한하거나 통제하긴 어렵다는 입장이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북한학과)는 “북한 내부에 체제 실상을 알리는 정보를 퍼뜨리는 것은 긍정적이지만 공개적으로 대북 전단을 살포하면서 남북 긴장이 고조되면 비용 대비 효과가 떨어진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