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핀 나랑 미국 국방부 우주정책차관보대행이 10일 오후 서울 국방부에서 열린 한미 핵협의그룹(NCG) 공동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과 미국이 북한의 핵공격 감행 시 한국 재래식 무기와 미국 핵무기를 통합해 대응하는 가이드라인이 담긴 ‘공동지침’ 작성을 완료했다. 한미가 핵우산 등 확장 억제를 공동 실행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된 셈으로, 이는 1953년 한미상호방위조약이 맺어진 이후 70여 년 만에 처음이다. 양국은 오는 8월 한미 연합 연습인 ‘을지자유의방패(UFS)’ 때 처음으로 북한의 핵무기 사용을 상정한 핵 작전 시나리오 훈련을 하기로 했다. 최근 다양한 형태로 도발 수위를 높이고 있는 북한을 향한 강력한 경고 메시지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미는 10일 서울 용산 국방부 청사에서 열린 제3차 핵협의그룹(NCG) 회의 뒤 발표한 공동 언론 성명을 통해 “NCG는 신뢰 가능하고 효과적인 동맹의 핵 억제 정책 및 태세를 유지하고 강화하기 위한 동맹의 원칙과 절차를 제공하는 ‘공동지침 문서’ 검토를 완료했다”고 밝혔다. 공동지침은 양국의 서명 절차를 거쳐 최종 확정된다.

군사기밀이 포함돼 구체적인 내용이 공개되지 않는 공동지침 문서에는 북한의 핵 공격을 미리 방지하고, 만에 하나 핵 공격이 이뤄졌을 때 어떻게 대응할지에 대한 총체적인 가이드라인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문서화를 통해 지난해 윤석열 대통령의 ‘워싱턴 선언’을 통해 설립된 NCG의 제도화 수준을 한 단계 더 높인 것이다. 윤 대통령은 정부 출범 직후부터 한미 연합 연습에 핵전쟁 시나리오가 포함돼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지난해 훈련에도 이 부분이 빠지자 안보 라인을 질책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회의에서 북핵 위협에 대응하는 양국의 역할을 구체적으로 문서화한 것은, 양국의 정권 교체 등 정치 변수가 한미 안보 분야에 미칠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날 발표는 북한이 지난달부터 위성 발사, 대남 오물 풍선 살포, GPS 교란 공격, 탄도미사일 발사 등 복합 도발을 감행하는 가운데 나왔다. 특히 공동지침에는 북한이 선제적 핵 공격에 나섰을 때 한미가 미국의 핵무기와 한국의 재래식 무기체계를 통합(Conventional-Nuclear Integration·CNI)해 북한에 대한 응징 보복에 나서기 위한 절차 및 양국 무기체계 통합 방안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최우선 목표는 북핵 사용 억제이지만, 이에 실패해 북한이 핵무기 공격에 나서는 ‘억제 실패’ 상황에서 북한을 상대로 어떻게 군사적 대응을 할지에 대한 논의도 이뤄졌다고 한다.

미측 대표로 참석한 비핀 나랑 미국 국방부 우주정책 수석부차관보 대행은 “공동지침 문서를 통해 NCG가 향후 지속적으로 활용할 아키텍처를 제공하고 한국 재래식 능력과 미 핵 능력을 통합하는 개념을 발전시켜 향후 작전과 연습 훈련에 반영할 것”이라고 했다. 우리 측 대표인 조창래 국방부 국방정책실장은 “범정부 시뮬레이션과 한미 국방·군사 당국 간 도상 훈련을 연례적으로 개최하고 북핵 위기 시 협의 절차를 발전시켜 나가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12월 2차 NCG에서 합의한 대로 양국은 오는 8월 을지자유의방패(UFS) 때 북한의 핵무기 사용을 상정한 핵 작전 시나리오 훈련도 실시한다. 지금까지 양국은 북한의 핵무기 사용 가능성 등만을 상정한 훈련을 실시했고, 핵 사용을 전제로 한 훈련은 없었다.

양국은 또 한반도 주변 미국 전략자산 전개와 연계한 한미 핵·재래식 연습 및 훈련 시행 방안도 논의했다. 미 전략자산 전개를 보다 늘리는 방안도 논의된 것으로 알려졌다.

관건은 NCG 공동지침에 담긴 내용들이 한미 연합 작계(작전 계획)에 포함될지다. 북한의 전면전에 대비한 작계 5015에는 핵 보복 관련 내용이 포함돼 있지 않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3차 NCG 발표 내용을 토대로 향후 작계에 관련 내용을 포함시킬 수 있을지가 핵심”이라고 했다. 이렇게 되면 지금까지 따로 움직이던 한국군의 재래식 전력과 미국의 핵무기가 완전히 통합 운용된다는 의미가 있다.

‘한미가 협의·결정·행동하는 일체형 확장 억제’ 강화 방안을 논의하는 협의체인 NCG는 한미 동맹 70주년을 맞아 지난해 4월 백악관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 합의에 따라 출범했다. 북 핵·미사일 능력이 고도화하면서 미 핵우산 공약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고 한국에서 자체 핵무장 여론이 비등하는 것을 감안해 탄생했다. 미국의 대북 핵 정책을 결정·실행하는 데 우리 입장이 반영될 여지가 생겼다는 점에서 기존 핵우산에 비해 진일보한 측면이 있다.

북한은 NCG에 민감하게 반응해왔다. 북한은 한미 양국이 지난해 12월 NCG 2차 회의에서 오는 8월 한미 연합 UFS 연습 때 북한의 핵무기 사용을 상정한 핵 작전 시나리오 훈련을 하기로 하자 “노골적인 핵 대결 선언”이라며 반발했다. 이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도발에도 나섰다.

앞서 NCG 1·2차 회의는 한미 NSC가 주관했는데 이번에는 양국 국방부 주도로 열려 구체적 논의를 강화했다. NCG 3차 회의 논의 결과는 양국 대통령과 올해 가을 미국 워싱턴 DC에서 열리는 제56차 한미 안보협의회의(SCM) 등에 보고된다. 제4차 NCG 회의는 올해 연말에 미국에서 개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