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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터 차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부소장 겸 한국 석좌. /뉴스1

미국의 대표적인 한반도 전문가인 빅터 차(Victor Cha·63)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부소장이 최근 핑크 빛깔 표지의 책을 출간했습니다. ‘코리아 : 남과 북의 새로운 역사(Korea : A New History of South & North)’입니다.

표지에는 한반도 지도를 떠올리게 하는 길쭉한 몸체의 호랑이 두 마리가 날카로운 발톱과 이빨을 드러내고 서로 으르렁거리는 그림이 그려졌습니다. 이민 2세 한국계 미국인인 그는 지난 29년간 북핵, 한미, 한일 관계, 호주 등 한반도 및 인도·태평양 문제에 천착했습니다.

1995년부터 조지타운대 정치외교학 교수로 재직했고, 조지 W 부시 행정부 때는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 들어가 2004년부터 2007년까지 아시아 담당 국장을 지냈습니다. 이 기간 6자 회담 차석대표 등 여러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학자면서도 현실 정치에 몸담아 한반도 실무를 직접 해본 몇 안 되는 미국 전문가입니다.

얼마 전에는 한국계로서는 처음으로 미 대학에서 뛰어난 업적을 낸 학자들에게 주는 ‘우수 대학 교수(Distinguished University Professor)’ 직위를 조지타운대로부터 받았습니다. 한국 대학에는 없는 직위인데, 미 대학교수들 사이에선 영예롭게 여기는 것이라고 합니다.

축하할 겸, 이것저것 물어볼 겸 지난 5일 워싱턴 D.C. 로드아일랜드 애브뉴에 있는 CSIS 사무실을 찾아가 그를 만났습니다. 차 교수는 “통계를 내보니 북한은 도발을 평소보다 미 선거철에 4배 이상 벌이는 것으로 나타났다”면서 “북한은 선거 전보다는 선거가 끝나고 당선된 대통령을 상대로 협상을 벌이려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김정은은 이미 경험해본 트럼프가 다시 대통령이 되기를 바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한일 정상의 노벨 평화상 수상 자격을 미 국무부 부장관이 언급한 데 대해서는 “아주 어려운 역사적 배경이 있는데도 국익을 위해 인기에 연연하지 않고 소신 있게 정책을 추진하는 것은 용기있는 리더의 모습이고 인정받아야 할 행동이라고 보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빅터 차 교수와 라몬 파르도 교수의 공동 저서 '코리아'. /노석조 기자


-책 소개부터 해주시죠.

“유럽연합 한국 석좌인 라몬 파체코 파르도 킹스칼리지 런던 정치학 교수와 공동 저술했습니다. 한국의 현대사를 압축한 영문 책입니다. 놀랍게도 지난 20년 가까이 이런 책이 없었습니다.

대부분의 미국인들, 영어로 책을 읽는 사람들이 한국사를 알려고 할 때 찾는 책이 하나 있습니다. 워싱턴 포스트 기자죠, 돈 오버도퍼가 쓴 ‘두 개의 코리아(The Two Koreas)’입니다. 많은 사람이 이 책을 읽습니다. 그런데 이 책은 김정은이나 김여정에 대해 다루지 않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나 BTS(방탄소년단)에 대한 언급도 없지요. ‘업데이트’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예일대 출반부와 팀을 짜서 이렇게 책을 내게 된 것입니다.”


-두 개의 코리아는 1997년 출간된 책이죠. 저를 비롯해 한국 기자들 사이에서도 널리 읽힌 책입니다. 이번 책 반응은 어떤가요?

“이 책을 쓰면서 이 책이 출간되고 이렇게 유럽은 물론 전 세계에서 큰 호응을 받을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그건 아마도 저 때문은 아니고 K문화, K팝, K영화의 인기와 관련된 것 같습니다. 이 책은 한반도의 1895년 무렵부터 시작합니다. 일제 강점기, 남북 분단, 6·25전쟁, 1953년 휴전, 그리고 이후 남북한의 성장기로 이어져서 통일에 대한 이야기로 마무리됩니다.


-책에서 한반도의 지정학적 환경과 이에 따른 영향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열강에 끼여 있는 한반도의 지정학적 상황이 외세의 침략을 빈번하게 받게 되는 요인이 됐다고도 했는데요.

“한반도 역사에서 지정학이 미치는 영향은 아주 큽니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는 변하지 않습니다. 아시아 열강이 보기에 한반도는 지리적, 전략적 이익이 달린 허브입니다. 문제는 이런 한반도의 지정학적 특수성은 한국이 내부적으로 위약해졌을 때 특 강하게 작용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구한말 때,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직후 등과 같은 시기에 한국은 각축전을 벌이는 열강들에 의해 나라의 운명이 결정지어졌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이제는 한국이 과거와는 다르다는 점입니다. 지금 한국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경제적으로, 군사적으로, 강합니다. 첨단 기술도 보유하고 있습니다. 열강들에 휘둘렸던 지정학적 환경은 한국이 강할 때는 오히려 미국에, 일본에, 중국에 영향을 미칠 수 있게 해줍니다.


-북핵에 대해서도 많은 연구를 해왔습니다. 최근 북한 비핵화가 가능하겠느냐는 회의론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군축으로 가야 한다는 거죠.

“네, 저도 이런 질문을 여러 차례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건 비핵화나 군축이냐는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미국이나 한국, 일본 모두 비핵화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북한은 핵비확산조약(NPT) 회원이었는데 이 조약을 어기고 핵을 개발한 유일한 케이스입니다. (이스라엘, 파키스탄 등은 애초 NPT에 가입하지 않았습니다.) 북한이 핵을 갖는다는 건 아주 부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므로, 북한의 비핵화는 우리의 목표입니다.

그렇지만, 전직 북핵 협상가로서 말하자면, 만약 북한이 협상 테이블로 돌아온다면, 우리는 비핵화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영변 핵 시설 동결이나 IAEA 사찰 재개, 핵시설 봉인, 감시 카메라 설치 등과 같은 사항에 대해서도 논의할 것입니다. 이런 것은 필수적인 단계입니다. 이런 조치를 시행하면서 제재 완화와 같은 인센티브를 제공해줘야겠지요. 저는 비핵화, 군축 중 택일이 아닌 두 가지를 동시에 진행해야 한다고 봅니다.”


-북한이 올 11월 미 대선이란 정치 이벤트는 어떻게든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활용할 것이란 관측이 있습니다.

“북한이 무력시위 등 도발을 평소보다 미 대선이 있는 해에 4배나 더 많이 한다는 CSIS 보고서가 있습니다. 저는 북한이 지금 당장 미국에 바라는 것은 없다고 봅니다. 북한은 현재 원하는 것은 러시아로부터 얻고 있습니다. 선거 결과가 어떻게 되는지를 지켜보고 있을 겁니다. 그러다 워싱턴 D.C.에 새 정부가 들어서면 제재 해제 등 이득을 얻기 위해 자신들을 미 행정부의 주요 이슈로 만들려 할 것입니다. 그래서 올해는 도발을 많이 하면서 2025년 1월 미 새 행정부가 들어설 때 자신들이 가장 중요한 이슈가 되도록 하는 상황을 조성하려 할 겁니다.”


-북한은 누가 당선되길 바랄까요?

“투표를 할 수 있다면 꼭 투표를 할 겁니다. 김정은은 트럼프가 되길 바랄 겁니다. 자신과 이미 관계를 맺었기 때문입니다. 거래하기 더 좋다고 생각할 거에요.”


커트 캠벨 미 국무부 부장관. /AFP 연합뉴스

-얼마 전에 캠벨 부장관이 한미일 정상들이 노벨 평화상 수상감이란 말을 했습니다. 왜 이런 말이 나온 건가요?

“실제로 이게 고려되고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한국과 일본 지도자들이 아주 어려운 역사적 배경에도 양국 관계 개선 노력을 한 것은 정치적으로 용기 있는 일이기 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 두 나라 모두에서 국내적으로 인기가 없는데도 이런 정책을 계속 추진하고 있잖아요. 자국 내 정치적 반대 진영으로부터 비판도 받고 있습니다. 정치학에서 리더십이란 인기가 없을지라도 국가를 위해 옳다면 하는 것을 말합니다. 한일 정상의 노력은 정치적 용기이고 인정받아야 할 행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미국 존 F. 케네디 재단이 수여하는 2023년 ‘용기 있는 사람들 상(Profile in Courage Award)’도 받았지요. 국제 정세가 매우 혼란한(disarray) 상황에서 두 지도자가 관계 개선을 위한 노력한 리더십을 존경하기에 캠벨이 그런 말을 한 것 같습니다.”

이날 현안 외에도 빅터 차 개인사에 대해서도 질문을 했습니다. 그는 학자의 길을 걸어야겠다고 결심한 것이 미 뉴욕 콜롬비아대를 다닐 때 방문 교수로 온 한승주 당시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의 강의를 들으면서라고 말했습니다. 조지타운대 교수로 있다가 부시 행정부 때 백악관에서 일하게 된 것은 당시 미 국무부 장관이던 곤돌리자 라이스의 권유 때문이었다고 했습니다.

-교수님 개인사에 대해 이야기 좀 해주시죠.

“뉴욕에서 태어났습니다. 한국계 미국인 2세대입니다. 아버지가 1953년 전쟁이 휴전된 직후 미국으로 이민을 오셨습니다. 아버지는 처음에는 네브래스카에서 일을 시작했습니다. YMCA에서 일했고, 태권도와 양궁 관련 사업도 했습니다. 그러다 뉴욕에 이사를 와서 어머니를 만났습니다. 어머니는 음악가셨습니다. 줄리아드 음대를 다녔습니다. 두 분은 뉴욕에서 만나셨습니다.

제가 백악관 등 정부에서 일하긴 했지만, 저의 정체성은 학자입니다. 콜롬비아 대학원에서 객원교수로 오신 한승주 고려대 교수님의 강의를 들으면서 ‘교수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 분처럼 지식인이 되고 싶었습니다. 한 교수님은 뉴스위크 등 시사 잡지에 칼럼도 쓰셨던 걸로 기억합니다. 한 교수님은 발리 등 여러 도시와 나라에서 열리는 국제 회의에 참석했는데, 저도 그러고 싶었어요. 그러다 진짜 교수가 됐을 때 당연히 정부로 진출할 생각은 전혀 없었어요. 그런데 알다시피 백악관에 들어가게 됐습니다. 곤돌리자 라이스가 같이 일하자고 권했습니다.

한승주 전 외무부 장관. /뉴시스

-트럼프 행정부 때 주한 미 대사로 내정되기도 했는데요. (막판에 모종의 이유로 내정이 철회되고 군 출신인 해리스 대사가 임명됐습니다.)

“백악관 근무도 그렇고 제가 계획한 건 없습니다. 지금도 저의 주된 정체성은 교수이자 학자입니다. 책 쓰는 게 좋고, 연구하는 게 좋습니다. 상황에 따라 정부에서 정책 결정에 참여할 기회가 있다면 할 수도 있겠지만, 기본적인 정체성은 교수입니다.”

차 교수는 올해 9월 남북 통일에 대한 책도 출간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그는 최근 북한이 남북 관계를 ‘한민족’이 아닌 ‘적대적 두 국가 관계’로 규정하고 ‘통일’ ‘민족’ 개념을 지워나가는 정책 변화를 꾀한 것에 대해서는 “윤석열 정부가 통일 정책을 펼 것을 미리 알고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북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5형' 시험발사 모습.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혹자는 북한의 통일 거부가 당장 전쟁하겠다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윤석열 정부가 통일 정책을 펼 것을 미리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이 통일 정책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우리는 통일을 믿지 않는다’라고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윤 대통령은 올해 광복절에 아마 남북 통일에 대해 말할 것입니다. 통일과 자유를 함께 거론할 수 있습니다. 이건 북한의 지도자에게 매우 위협적으로 들릴 것입니다. 통일은 북한 주민이 원하는 것을 자유롭게 생각하고 자유롭게 먹고, 자유롭게 옷 입을 수 있다는 말이 됩니다. 김정은 입장에서는 위협적으로 느껴질 것입니다. 그래서 한국에서 통일 이야기를 할 때 북한 주민들이 공감할 것이 아예 없도록 ‘통일’이라는 단어를 지워버리려는 것이라고 저는 분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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