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 만에 이뤄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방북은 ‘당일치기’였다. 푸틴은 애초 계획한 ‘18일 저녁’보다 훨씬 늦은 19일 새벽 2시 반이 넘어서 북한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했다. 김정은은 활주로에 깔린 레드카펫에 서서 푸틴 대통령이 비행기에서 나오기를 기다렸다. 러시아 매체 콤소몰스카야프라브다는 김정은이 간부들을 대동하지 않은 채 홀로 푸틴 대통령을 기다리는 장면을 두고 ‘최고의 신뢰 표시’라고 평가했다.
푸틴 대통령은 비행기 계단을 내려와 김정은과 환하게 웃으며 악수했다. 두 사람은 인사를 나누며 두 차례 껴안았다. 통역을 통해 한참 대화를 나눈 두 사람은 다시 한번 포옹했다. 대화 중에도 손은 계속 맞잡은 상태였다.
푸틴과 김정은은 의장대가 도열한 레드카펫을 따라 자동차 쪽으로 걸어가면서도 계속 이야기를 나눴다. 주로 푸틴 대통령이 손짓하며 말하고 김정은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듣는 모습이었다. 공항에 마중 나온 북한 측 인사들이 러시아 측 방문단에 러시아어로 “덥다. (기온이) 32도”라고 말하는 소리도 영상에서 들렸다.
푸틴 대통령과 김정은은 레드카펫 끝에 주차된 러시아제 최고급 리무진 ‘아우루스’ 앞에서 서로 먼저 타라고 양보하는 손짓을 했다. 결국 푸틴 대통령이 양복 상의를 벗으면서 뒷좌석 오른쪽에 먼저 탔고, 김정은은 웃으면서 건너편으로 이동해 뒷좌석 왼쪽에 탔다.
공항에선 김정은 의전을 담당하는 현송월 당 부부장 모습만 조선중앙TV 카메라에 포착됐다. 새벽에 도착한 탓인지 2019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방북 때처럼 대규모 군중 동원이나 예포 발사 같은 의식은 눈에 띄지 않았다. 이를 놓고 푸틴 대통령의 지각에 대한 불만 표시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푸틴과 김정은이 탄 아우루스는 의전용 오토바이 호위를 받으며 숙소인 금수산 영빈관으로 이동했다. 두 사람은 숙소로 이동 중 밀담을 나눴을 것으로 보인다. 조선중앙통신은 북·러 정상이 이동 중에 “황홀한 야경으로 아름다운 평양의 거리를 누비면서 그동안 쌓인 깊은 회포를 풀었다”고 보도했다. 평양 시내 도로 양옆에는 러시아 국기와 푸틴 대통령 사진이 줄지어 걸려 있었다. 새벽인데도 인근 고층 건물은 대부분 모든 층에 불이 켜진 상태였다.
푸틴의 숙소인 금수산 영빈관은 시진핑 주석이 방북했을 때 처음으로 묵은 곳이다. 김정은이 푸틴 대통령을 숙소까지 직접 배웅하면서 “좋은 밤 보내시라”고 인사했다고 크렘린궁은 전했다. 노동신문은 푸틴 대통령이 새벽에 도착했음에도 이날 오전 1∼2면에 걸쳐 푸틴 대통령의 평양 도착 소식을 사진과 함께 실었다.
이날 낮에는 회담에 앞서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의장대가 도열한 가운데 공식 환영식이 열렸다. 평양 주민들은 러시아기와 북한 인공기, 꽃을 흔들면서 열렬히 푸틴 대통령을 환영하는 모습이었다. 중앙에는 푸틴 대통령과 김정은 초상화가 걸렸다. 의장대 사열 후 김정은은 푸틴에게 노동당 주요 간부들을 소개했다. 푸틴 대통령은 환영식에 참석한 최선희 외무상, 박정천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 정경택 인민군 총정치국장, 리일환 당 비서와 김여정 당 부부장 등과 악수했다.
이날 회담 후 푸틴은 김정은에게 신형 아우루스 리무진과 차(茶) 세트, 해군 장성의 단검 등을 선물했다. 푸틴은 지난 2월에도 김정은에게 아우루스 한 대를 선물했었다. 김정은은 푸틴에게 다양한 예술품을 선물했다고 타스통신이 전했다. 회담 후엔 두 사람이 아우루스 리무진을 번갈아 운전하며 친밀을 과시했다. 푸틴이 먼저 김정은을 조수석에 태워 직접 운전을 하다 내려서 정원을 산책했다. 산책 후엔 김정은이 운전대를 잡고 푸틴을 조수석에 태워 운전했다. 두 사람은 6·25전쟁 때 사망한 소련군을 추모하는 해방탑에 헌화하고, 공연과 국빈 연회에 참석했다. 출국을 위해 공항으로 가는 길에 두 사람은 러시아정교회 성당인 정백사원에 들렀다. 푸틴 대통령은 김정은 배웅을 받으며 다음 국빈 방문지인 베트남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