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로명(92) 전 외교부 장관의 업적을 기리는 ‘공로명 세미나실’이 3일 국립외교원에서 개관했다. 대한민국 외교부 장관의 이름을 딴 세미나실이 국립외교원에 생긴 것은 처음이다.

3일 국립외교원에서 공로명 세미나실 개관식이 열렸다. 앞줄 왼쪽부터 김성환 전 외교부 장관, 박철희 국립외교원장, 공로명 전 장관, 조태열 장관, 유명환 전 장관, 뒷줄 왼쪽부터 국립외교원 인남식 교수, 이문희 외교안보연구소장, 김 건 국회의원, 심윤조 전 의원, 정구종 전 동아일보 편집국장, 심규선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이사장, 김종한 국립외교원 인태연구부장, 이용준 세종연구소 이사장, 조양현 국립외교원 교수

박철희 국립외교원장은 개관식에서 공 전 장관이 “1958년 외무부 입부 후 한일 회담에 참여하고, 중국 민항기 납치 사건 해결로 한중 수교 밑거름을 마련했으며 초대 소련 대사, 남북핵통제공동위원장, 외무부 장관(1994~1996)을 역임하며 남북 문제, 중소 관계는 물론 미국과 일본을 포함한 한국 외교의 모든 영역을 섭렵했다”고 소개했다. 박 원장은 “한국 외교의 산 증인으로부터 지혜와 경험을 배우자는 취지로 공로명 세미나실을 만들었다”고 했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은 “공 전 장관은 대한민국 외교사에 큰 족적을 남긴 우리 외교의 거목”이라며 “상대의 이야기를 경청하면서도 국익을 관철할 때는 한 치의 양보도 없는 탁월한 협상력과 리더십을 보여줬다”고 했다. 그는 “수년 전에는 후배 외교관을 비롯한 각계 인사들이 존경의 마음을 담아 문집을 펴내기도 했다”고 밝혔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 공로명 전 장관, 박철희 국립외교원장이 공로명 세미나실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조 장관이 언급한 문집은 2021년 공로명 장관 구순기념문집 편찬위원회에서 펴낸 ‘공로명과 나’를 말한다.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 유명환·김성환 전 외교부 장관을 비롯한 외교관과 학자, 언론인 등 51명의 기고를 모은 이 문집에서 이용준 세종연구소 이사장은 “외교부에서 38년간 근무하면서 21명의 장관을 겪었는데, 애국심, 전문 지식, 상황 판단력, 인품, 영어 실력에서 공 장관에 필적할 만한 장관은 보지 못했다”고 했다. 심윤조 전 국회의원은 “(주일 대사관 근무 시절) 일본인들도 공 대사의 인품과 실력에 대해 존경심을 표하는 것을 보면서 외교관의 표상이란 이런 것이구나 하고 느낄 때가 많았다”고 했다.

조태용 국정원장은 공 전 장관이 김영삼 정권에서 모함을 받아 사표를 내고 국군수도병원에 입원했을 때 레이니 주한 미 대사가 직접 문병을 가서 미국 정부의 아쉬움을 표현했다고 했다. 박용민 주태국대사는 “국민의 생명과 안위가 걸린 외교안보를 담당하는 고위공직자라면 사사로운 자존감의 덫이나 영욕에 빠지지 않고 직을 걸고 일해야 마땅함을 공 장관으로부터 배웠다”며 “정말 중요한 주장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하는 법이라는 사실을 가르쳐준 나의 영웅”이라고 했다.

공로명 전 외교부 장관 구순기념 문집

일본에서는 고노 요헤이 전 중의원 의장, 오코노기 마사오 게이오대 명예교수 등이 이 문집에 참여했다. 오구라 가즈오 전 주한 일본 대사는 공 전 장관이 차관보였을 때 한일이 100억달러 규모의 경제 협력 문제로 팽팽하게 협상할 때 일화를 거론하며 “냉정함이랄까, 어딘가 타오르는 애국의 불꽃을 숨긴 듯한 그 엄숙함은 지금까지도 눈에 선하다”고 했다.

이날 휠체어를 타고 참석한 공 전 장관은 “표사유피 인사유명(豹死留皮 人死留名) , 표범은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데, 살아서 외교부 일각에 이름을 남기게 돼 무한한 영광”이라고 했다. 그는 “외교 협상이 성공하려면 상대방에게 신뢰를 줘야 한다”며 “외교관들은 영웅호걸이 못될지언정 하늘을 우러러 부끄럽지 않고 성실한 앙천불괴(仰天不愧)의 삶을 살아가기를 바란다”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공로명 세미나실 개관을 축하하는 꽃다발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