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포옹하는 尹대통령과 바이든 - 윤석열 대통령이 11일(현지 시각) 미국 워싱턴 DC에서 열린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의에 참석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포옹하고 있다. 양국 정상은 이날 정상회담을 갖고 ‘한미 한반도 핵억제 핵작전 지침’을 승인했다. 미국의 핵 자산을 한반도 주변에 사실상 상시 배치해 북한의 핵 위협에 대응한다는 계획을 공식화한 것이다. /대통령실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1일(현지 시각) 한국 재래식 전력과 미국 핵전력의 통합을 의미하는 ‘한미 일체형 확장 억제(핵우산)’ 시스템을 구축하는 내용의 ‘한미 한반도 핵 억제 핵 작전 지침(이하 공동 지침)’을 승인했다. 북한이 핵 도발을 할 경우 언제든 미국이 핵으로 보복할 수 있다는 내용도 최초로 문서에 담겼다. 미국이 결정해 제공하던 방식의 핵우산이 앞으로는 한미가 공동 연합 대응하는 형태로 진화한다는 의미로, 북·러의 사실상 군사 조약으로 더욱 커진 북핵 위협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능력이 갖춰졌다는 평이 나온다. 국방부는 “기존 미국 확장 억제 공약이 북핵 ‘억제’에 중점을 둔 선언적 수준이었다면, 공동 지침을 통해 최초로 북핵 ‘대응’까지 포함한 것”이라고 했다.

한미 정상은 이날 미국 워싱턴 DC에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 회의를 계기로 정상회담을 열고 공동 지침을 승인하는 한편 이에 대한 의미를 부여하는 공동성명을 채택했다. 양 정상은 “북한의 한국에 대한 어떠한 핵 공격도 즉각적, 압도적, 결정적 대응에 직면할 것임을 강조한다”고 했다. 북한이 핵을 사용하면 한미도 주저하지 않고 김정은 정권을 붕괴시킬 정도의 응징 보복에 나서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그래픽=김하경

수십 쪽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진 공동 지침은 군사기밀 내용을 담고 있어 전문이 공개되진 않았지만, 전시·평시를 가리지 않고 우리나라의 조직·인력·자산이 미국 핵 자산 운용·전개 등의 과정에 적극 참여한다는 내용을 담았다고 정부는 밝혔다. 또 미국 핵전력이 한반도에 상시 배치되는 수준으로 미국 전략 자산 전개의 빈도와 강도를 확대하고, 미 전략 자산과 연계해 한미 핵·재래식 통합(CNI) 훈련을 시행하기로 했다. 그간 재래식 전력에 기반해 온 한미 동맹을 확고한 핵 기반 동맹으로 격상시켰다는 의미다. 정부는 “비핵 국가가 미국과 직접 핵 작전을 논의하는 최초이자 유일한 사례”라며 “북핵 관련 양국 공동 대응 절차를 번복하기 어렵도록 문서화했다는 의미도 있다”고 했다. 정권 교체 등 정치 변수에 따른 불확실성을 최대한 줄였다는 것이다.

공동 지침은 즉각 효력을 가진다. 미국의 ‘3대 전략 핵무기(전략핵잠수함·대륙간탄도미사일·전락폭격기)’가 사실상 24시간 한반도 방어에 투입돼 확장 억제를 가동한다는 의미다. 지금까지는 ‘확장 억제 제공’이라는 큰 틀의 약속 아래 전략 자산 전개를 미국 쪽이 결정하고 한국에 통보해 주는 식이었지만, 앞으로는 특정 한반도 상황에서 미국의 핵 자산을 어떻게 운용한다는 시나리오를 미리 설정해 두고 해당 자산 전개를 한미가 지속적으로 협의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현지 브리핑에서 “미국의 핵무기에 한반도 임무가 특별히 배정된 것”이라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11일(현지 시각) 미국 워싱턴 DC에서 열린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의에서 타국 정상과 인사하고 있다. 윤 대통령 왼쪽은 크리스토퍼 럭슨 뉴질랜드 총리, 오른쪽은 에디 라마 알바니아 총리. /대통령실

양국은 이 같은 내용을 오는 8월 진행될 을지프리덤실드 훈련에서 구체화할 전망이다. 군 정보 소식통은 “예를 들어, 북한이 북한판 이스칸데르 탄도미사일로 우리 측에 핵 공격을 할 경우 미국 특정 핵잠수함에서 응징 공격을 하겠다는 내용을 우리 측과 미국이 공유·협의한다는 것”이라고 했다.

양국은 유사시 한미 정상 간 즉각적인 협의를 보장할 수 있는 절차 및 통신 보안 체계도 구축하기로 했다. 특히 한미는 북핵 위기 시 한미 간 핵 관련 민감 정보 공유도 확대하기로 했다. 정부 관계자는 “미국 전략핵잠수함이 어디에 배치돼 있는지 같은 민감 정보를 과거와 달리 즉각적으로 공유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했다. 북핵 위기 시 양국 정상은 즉각적인 협의에 나선다는 내용도 공동 지침을 통해 명문화됐다. 또 우리 측 요청에 따른 미 전략 자산 전개도 상당 부분 이뤄질 수 있을 것으로 관측된다.

다만 이번 지침은 양국 국방부의 공식 문서일 뿐 현 단계에서는 한미 연합 작전 계획 등에 반영된 내용은 아니다. 이 때문에 ‘미국이 서울을 지키기 위해 LA를 희생할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대표되는 핵우산에 대한 근본적인 불안은 해소되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직 외교관은 “전술핵이 한반도에 배치돼 있지 않은 상황에서 한국 재래식 전력과 어떻게 유기적인 운용을 한다는 것인지를 좀 더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미국이 동맹국에 이 정도 수준까지 핵 억제력을 보장한 적은 없지만 앞으로 얼마나 더 발전시키고 구체화하는지가 관건”이라고 했다. 장기적으로는 한미의 핵·재래식 전력 통합 방식을 보다 면밀히 구체화하고, 이를 한반도 유사시 한미 연합 작전 계획으로 도출하는 수준까지 가야 한다는 것이다.

엄효식 한국국방안보포럼 사무총장은 “국민 입장에서는 이번 공동 지침에도 불구하고 ‘전략적 모호성’을 이유로 미 전략 자산 24시간 전개를 체감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며 “미 측 전략 자산 전개가 있었으면 사후적으로라도 이를 국민에게 공개하는 조치를 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는 이어 “이번에 정부가 성과를 강조하기 위해 이전까지의 미국의 확장 억제에 대한 이행 의지를 과도하게 평가절하해 정부 발표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해칠 우려가 있다”고 했다.

분쟁 지역에 대한 미국의 개입을 줄이고 동맹에 부담을 떠넘기려는 트럼프가 재집권할 경우 이번 합의가 계속 유지될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 군사 전문가는”‘문서화’로 불확실성을 최대한 줄이긴 했지만 국제 정치에서 불변의 원칙이란 없다”며 “이번 공동 지침만 믿고 자체 핵 보유 노력이나 핵 잠재력을 키우기 위한 노력을 경시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