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 주재 북한대사관의 리일규(52) 정치 담당 참사(참사관)가 지난해 11월 초 아내와 자녀를 데리고 망명해 한국에 정착했다. 리 참사는 북한 외무성의 대표적 ‘쿠바통’으로, 2019년 4월부터 쿠바 주재 정치 담당 참사를 지내며 지난해까지 한국과 쿠바의 수교를 저지하는 임무를 맡았다. 2016년 귀순한 태영호 당시 주영국 북한 공사 이후 한국에 온 북한 외교관 중 가장 직급이 높다. 2019년 탈북한 조성길 이탈리아 대사대리, 류현우 쿠웨이트 대사대리의 내부 직급은 1등 서기관과 참사였다.
지난 14일 본지 인터뷰에 응한 리 참사는 “북한 주민이라면 누구든 한번쯤은 한국에서 살아봤으면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며 “북한 체제에 대한 염증, 암담한 미래에 대한 비관, 이런 사회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탈북을 고민하게 된 출발점이었다”고 말했다.
1999년 외무성에 입부한 리 참사는 2013년 북한 선박 ‘청천강호’가 쿠바에서 지대공 미사일과 전투기 부품을 싣고 파나마 운하를 통과하려다가 적발됐을 때 쿠바 대사관의 3등 서기관(대외직명은 1등 서기관)으로 파나마 측과 교섭을 벌여 청천강호의 억류를 해제하고 선장과 선원들을 석방시켰다. 이 공로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표창장을 받았다. 이후 2016년부터 약 3년간 평양 외무성 본부서 중남미 담당 부국장으로 근무하며 김정은 정권을 가까이서 지켜봤고, 2019년 다시 쿠바 참사로 부임했다.
‘김정은 표창장’까지 받았던 엘리트 외교관인 리 참사는 “사실 북한 주민들이 한국 국민들보다 더 통일을 갈망하고 열망한다. 내 자식이 미래가 좀 더 나은 삶을 누리려면 ‘답은 통일밖에 없다’는 생각을 누구나 다 공유하고 있다”며 “오늘날 김정은 체제는 주민들 속에 남아있던 그 한 가닥의 희망마저 무참히 뺏어버렸다”고 했다. 김정은은 지난해 말 남북을 ‘동족 관계’가 아닌 ’적대적 두 국가관계’로 규정하며 “(남북이) 통일될 가능성은 없다”고 밝힌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