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미 테리 미 외교협회(CFR) 선임연구원이 국정원 요원들과 교류한 혐의 등으로 미 연방 검찰에 기소된 것과 관련해 17일 국정원은 “한·미 정보 당국은 긴밀히 소통 중에 있다”는 입장만 냈다. 테리 연구원의 기소 사실이 언론에 공개되기 전에 국정원이 이를 얼마나 파악하고 있었는지는 분명치 않다. 기소 주체가 국정원의 직접적 카운터파트인 미 중앙정보국(CIA)이 아니라 법무부 산하 연방 검찰이기 때문에 국정원이 사전에 미 측에 입장을 설명하거나 재고를 요청하기 어려웠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공소장에 따르면, 미 연방수사국(FBI)은 2013년부터 지난해 6월까지 10년간 테리 연구원과 국정원 요원 교류를 추적했다. ‘명품 쇼핑 동행’은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19~2021년에 집중돼 있다. 한 정보 소식통은 “문재인 정부 시절 베테랑 현장 요원 상당수가 한직에 가거나 퇴사했고 공작에 서툰 분석관 출신들이 해외에 파견되면서 정보 활동에 영향이 있었다고 들었다. 현재도 유능한 현장 요원이 전임 정부에서 중용됐던 탓에 한직에 있는 경우가 있다”며 “올해 상반기에도 국정원이 미국에서 모종의 공작을 하다가 현지 당국에 저지된 적이 있다고 알고 있는데 현장의 정보력이 복구되지 않은 것 아니냐”고 했다.
특히 국정원 요원이 테리 연구원의 ‘명품 쇼핑’에 동행해 결제를 하면서 외교관증으로 면세 혜택을 받고, 함께 외교 번호판을 단 차량 등으로 이동한 것 등은 정보기관 요원의 기본이 지켜지지 않은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한 전직 고위 당국자는 “외교관이든 정보 요원이든 해외에 파견되면 주재국 정보·사법 당국의 24시간 감시를 받는다는 것은 상식인데, 너무 허술했다”고 했다.
연방 검찰이 테리 연구원을 ‘간첩법’이 아닌 ‘외국대리인등록법’ 위반 혐의로 기소한 것은 그가 미국의 기밀 문건 등을 직접 국정원에 제공한 것은 아니기 때문으로 보인다. 실제로 공소장에 적시된 내용 중 테리 연구원과 함께 식사를 하고 섭외가 어려운 미국 측 관계자와의 만남 주선을 요청한 것 등은 해외에 외교관 신분으로 파견된 국정원 직원들이 일상적으로 하는 활동에 해당한다.
국정원이 테리 연구원에게 제공했다는 3만7000달러(약 5100만원)도 현금으로 건네진 것이 아니라 주미 한국 대사관 명의로 테리 연구원이 근무하던 싱크탱크에 기부됐다. 당시 이 싱크탱크의 한국 담당 국장이었던 테리 연구원이 정부 다른 부처에서도 비용을 받아 한국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한국 관련 학술 행사 등을 열었던 점을 고려하면 ‘외교 활동’의 일부로 볼 측면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