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조현동 주미대사는 23일 워싱턴 DC에서 열린 특파원단 간담회에서 ‘아메리카 퍼스트(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측도 한미 동맹의 중요성을 확고히 인식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미국 행정부가 바뀌더라도 한미 관계는 크게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조 대사의 발언은 조선일보, KBS, YTN, 한국경제 등 여러 매체에 “트럼프 측 한미동맹 전략적 중요성 확고히 인식” 등의 제목으로 보도됐습니다. 영자 신문 코리아 헤럴드는 “Trump aides stress importance of South Korea-US alliance”라는 제목으로 보도했습니다.
문제는 과연 트럼프와 ‘트럼프 측’을 어느 정도 동일시할 수 있느냐는 겁니다. 일반적으로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유력 정치인들의 생각과 측근, 보좌진의 인식은 표현이 다르더라도 큰 차이가 없습니다. ‘싱크로율’이 최소한 80~90%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역대 미국 대통령 후보들의 경우, 측근이나 참모들의 말을 들으면 한반도 정책을 대략 가늠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대선은 다릅니다. 유력 후보가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트럼프이기 때문입니다.
2. 미 대선이 약 100일 앞으로 다가오면서 한미관계, 미북관계 관련 트럼프와 트럼프 측이 하는 이야기의 ‘싱크로율’이 과연 어느 정도인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트럼프 측은 트럼프가 재임 1기 때 주한미군 경시 및 주한미군 철수 발언을 예사로 해 온 것이 마음에 걸렸는지, 한국을 안심시키는 발언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트럼프가 재집권에 성공할 경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기용 가능성이 거론되는 프레드 플라이츠 미국우선주의정책연구소(AFPI) 부소장이 대표적입니다. 최근 방한했던 그는 지난 9일 “2기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하더라도 주한 미군 전면 철수는 물론 감축도 없을 것”이라고 확언했습니다. 플라이츠 부소장은 “트럼프 1기와 비교해 중국, 러시아, 북한 관련 상황이 달라졌다”며 “트럼프의 재집권은 한국의 안보에 좋은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했습니다.
트럼프는 1기 때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5배 인상을 요구한 바 있는데, “트럼프 2기에서는 한미 방위비 분담 협상이 그렇게 힘들지 않을 것”이라고도 했습니다. 트럼프 측의 엘브리지 콜비 전 트럼프 행정부 국방부 부차관보도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한미동맹이 인도태평양 지역의 안정과 안보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특히 한국의 방어 능력 강화와 미국과의 긴밀한 협력이 지역 안보를 유지하는 데 필수적이라고 강조했습니다.
3. 하지만 트럼프 측의 이런 발언과는 달리 트럼프는 주한미군의 가치, 한미동맹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습니다. 오히려 지난 5월 타임지와의 인터뷰에서는 다시 방위비 문제를 언급했습니다. 그는 인터뷰에서 “위험한 곳에 (주한) 미군이 있다. 말도 안 된다. 한국은 부유한 나라다. 왜 우리가 누군가를 방어해야 하느냐”고 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북한에 대해서는 정반대의 입장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는 최근 김정은 국무위원장과의 ‘우호적 관계’를 언급하며 뉴욕 양키스 야구 경기에 초대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최근 미시간에서 열린 집회에서 트럼프는 “북한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나쁜 것이 아니다”라며 북한과의 재협상을 기정사실화했습니다.
4. 트럼프가 만약 당선된 후에도 이 같은 입장을 고수하려 할 경우 트럼프 측은 과연 그를 설득할 수 있을까요? 이에 대해 ‘트럼프의 귀환’을 쓴 조병제 전 국립외교원장은 회의적입니다. 트럼프에게 조언하거나 견제할 사람이 공화당에 남아있지 않고, 트럼프가 1기와는 달리 자신을 ‘지도’하려는 사람을 기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봅니다. 조 전원장이 얼마 전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한 분석은 이렇습니다. “트럼프는 1기 때는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 허버트 맥매스터 국가안보보좌관, 댄 코츠 국가정보국(DNI) 국장,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 등이 제 역할을 했다. 게리 콘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은 한미 FTA를 폐기하려는 서한을 발견하고, 이를 몰래 갖고 나와 없애기도 했다. 그런데 이들은 2018년 중간선거 이후 모두 쫓겨났다.” “트럼프 1기 때는 공화당의 주류가 그를 견제했다. 2021년 1월 의사당 난입 사건 때 탄핵에 찬성한 공화당 하원의원 10명 중 4명이 은퇴했고, 4명은 2022년 예비선거에서 탈락했으며 이제 2명만 남아 있다. 상원의원 중에는 7명이 찬성했는데 3명은 은퇴했고, 가장 강력하게 탄핵을 주장했던 미트 롬니 의원은 올해 말 은퇴한다.”
5. 마크 에스퍼 전 국방장관은 자신의 회고록 “성스러운 맹세( A Sacred Oath: Memoirs of a Secretary of Defense During Extraordinary Times)”에서 트럼프가 주한미군의 완전 철수를 제안한 사실을 언급했습니다. 에스퍼는 트럼프가 여러 터무니없는 아이디어를 제안했으며, 그는 이러한 제안들이 국가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단하여 이를 저지하려고 노력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미국의소리(VOA) 방송 인터뷰에선 주한미군 철수와 관련한 “트럼프 대통령의 결심은 단호했고 끊임없이 이를 언급했다”고 했습니다.
지난해 12월 에스퍼 장관을 인터뷰한 조선일보 이민석 특파원은 “트럼프의 대선 출마 여부를 묻는 질문에 그의 얼굴은 굳게 변했다”고 전했습니다. 당시 에스퍼는 “트럼프가 2024년 대선에 출마하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그가 한국에 미칠 영향이 우려되기 때문입니다. (트럼프 당선은) 한국에 대한 방위력 약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큽니다”라고 했습니다. 국방장관으로서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트럼프를 관찰했던 에스퍼이기에 그의 발언은 그냥 지나칠 수 없습니다. 부디 한반도 문제에서 트럼프와 트럼프 측의 싱크로율이 100%는 아니더라도 최대치가 나오기를 바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