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WHC)가 27일 오후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회의에서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 노역이 이뤄졌던 일본 니가타현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를 전원 동의(consensus) 방식으로 결정했다. 우리 정부는 일본이 사도광산 인근 향토 박물관에 ‘조선 반도 출신자를 포함한 광산 노동자의 삶’이란 제목으로 ‘가혹한 근로 환경’ 등에 대한 전시물을 선제적으로 설치한 점 등을 고려해 등재에 동의했다.
이날 WHC 회의에 일본 정부 대표로 나선 가노 다케히로 주유네스코 일본 대사는 “일본 정부는 사도광산의 전체 역사를 종합적으로 반영하는 해석과 전시 전략 및 시설을 개발할 것”이라며 “사도광산의 모든 노동자, 특히 한국인 노동자를 진심으로 추모한다”고 발언했다. 또 “일본 정부는 그동안 WHC에서 채택된 모든 관련 결정과 이에 관한 일본의 약속들을 명심할 것이며, 앞으로도 한국과 긴밀한 협의하에 해석과 전시 전략 및 시설을 계속 개선하고자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외교부는 전했다.
당초 일본은 “17세기 세계 최대 규모의 금 생산지였던 사도광산을 세계에 알리겠다”는 명분을 내세워 에도시대만을 대상으로 하는 등재를 원했다. 조선인 노동자들이 동원된 시기를 제외하는 ‘꼼수’를 부린 것이다. 우리 정부는 유네스코 자문 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에 문제를 제기하며 자료를 제공했다. ICOMOS는 지난 6월 사도광산의 전체 역사를 설명하라는 권고를 했다. 한국이 끝까지 반대하면 ‘표결’로 가야 하는 상황에서 한일 정부가 교섭을 벌여 일본이 강제 노역과 관련한 ‘전체 역사’를 알리는 전시관 등을 설치하는 조치를 이끌어낸 것이다. 일본 아사히신문은 “우호적인 한일 관계가 이번 합의를 가능하게 했다”고 보도했다.
사도광산 갱도와 약 2㎞ 떨어져 있는 아이카와 향토 박물관에 마련된 전시물에는 제2차 세계대전 중 ‘국민징용령’이 한반도에 도입돼 1945년까지 사도광산에 1000명 이상의 한반도 출신 노동자가 있었다는 내용이 담겼다. 또 위험한 갱도 내부 작업에 이들이 일본인보다 더 많이 종사했고, 식량이 부족하고 사망 사고가 나는 환경에서 일했다는 내용도 명시됐다. 조선총독부 관여 아래 ‘관 알선’과 모집이 있었다는 사실도 명시됐다. 박물관은 총 다섯 전시실로 구성돼 있는데, 이 중 한 전시실의 한 구획을 당시 조선인 노동자들이 처한 가혹한 노역 환경 등을 소개하는 공간으로 만들었다. 일본 측은 관련 안내문 등도 관광객들에게 제공하고, 매년 열릴 사도광산 노동자 추모식에도 한반도 출신을 포함하기로 했다.
하지만 전시 시설에 조선인 노동자들이 강제 노역을 했다는 내용은 명기되지 않았다. 2015년 이른바 ‘군함도’를 포함한 메이지 산업 시설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할 때 일본 정부가 ‘강제로 노역했다(forced to work)’는 표현을 사용했던 것에 비하면 후퇴한 조치란 지적이 가능하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사도광산은 구미의 기계화에 견줄 만한 일본 독자 기술의 정수였다”고 하면서도 조선인 강제 노역 문제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이를 두고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에서는 “역사를 망각한 정부”란 비판이 나오고 있다.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가노 대사가 “WHC에서 채택된 모든 관련 결정과 이에 관한 일본의 약속들을 명심할 것”이라고 발언한 점을 거론하며 “(강제 노역을 인정한) 과거 약속을 그대로 이어가겠다는 뜻이 담겨있다”고 말했다. 가노 대사의 발언 자체가 “(한일) 협상의 결과물”이며 “해당 발언문은 세계유산위원회 결정문에 각주로 포함되어 결정문의 일부로 간주된다”는 것이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은 “(일본이) 우리 정부와 긴밀히 소통하며 진정성 있는 모습을 계속 보여주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