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용산 국방부 청사. /뉴시스

국군의 해외·대북 첩보 기관인 국군정보사령부의 사령관과 정보여단장이 충돌하면서 정보사 기밀이 외부에 드러나는 일이 6일 벌어졌다. 정보사 사령관 A 소장(육사 50기)과 여단장 B 준장(육사 47기)이 폭로전 수준의 법적 공방을 벌이면서, 정보사의 기밀 공작명 ‘광개토 사업’, 안가를 활용하는 공작 방식까지 외부에 알려지게 됐다. B 여단장은 ‘휴민트(인적 정보)’를 담당하고 있다.

이런 일은 지난 6월 이후 정보사 군무원이 ‘블랙 요원’ 정보 유출로 방첩사 수사를 받고 구속되는 사건이 터진 와중에 벌어졌다. 기밀 유출에 책임지고 조직을 추슬러야 할 정보사 사령관과 여단장은 지난 6~7월 다른 문제로 갈등을 빚다가 국방부 조사본부에 서로 고소·고발장을 냈다. 안보 전문가는 “가장 은밀해야 할 첩보 조직이 연일 구설에 오르내리고 있다”며 “향후 첩보 활동이 가능하겠느냐”고 했다.

6일 본지가 입수한 B 여단장의 고소장 등에 따르면 두 사람은 올 초부터 정보사 출신 예비역 단체 ‘군사정보발전연구소’의 정보사 영외 사무실 이용 문제를 놓고 갈등을 빚었다. B 여단장은 고소장에서 “해당 단체는 정보사의 기획 공작인 ‘광개토 사업’에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해야 하기 때문에 사령관을 설득하고자 노력했다”며 “영외 사무실은 공작 업무 지원용으로 운용하고 있고 유관 연구소 지원은 공작 교육 및 공작 활동 인프라 확보에 지대한 도움을 주기 때문”이라고 했다.

B 여단장 측 고소장에는 “다음 보고 시 광개토 기획 사업을 문서로 구체화하고 해당 영외 사무실에 여단 공작팀을 상주시키는 방향으로 사무실 지원에 대한 정당성과 명분을 보강하는 쪽으로 보고를 하겠다”고 했다.(5월 22일) “여단 참모 회의에서 ‘광개토 기획 사업 계획을 구체화해서 작성할 것과 해당 오피스텔 상주 공작팀 구성’도 지시했다”(5월 23일) 등 구체적 내용도 적시했다.

‘광개토 사업’이라는 극비 공작 사업의 코드 네임은 물론 정보사가 서울 시내에 안가를 마련해 상주 공작팀을 운영하는 정황 등의 추진 경과가 고소장에 담겨 정보사 바깥으로 드러난 것이다. 민간 사단법인인 ‘군사정보발전연구소’가 정보사 공작 업무와 관계가 있음도 고소장에서 드러났다. 광개토 사업의 세부 내용은 알려지지 않고 있지만 명칭으로 볼 때 중국 지역에서 진행될 대북 공작 기획으로 추정된다.

군 소식통은 “B 여단장이 과거 정보사 주도로 2016년 류경식당 종업원 집단 탈북을 성사시켰을 때 공작 관련자였다”고 했다. 육사 3기 후배를 정보사령관으로 ‘모시는’ 입장인 B 여단장이 확실한 성과를 내기 위해 정보사령관은 허용하기 어려운 무리한 공작에 나섰던 것이 갈등의 시작이었다는 해석도 군에서 나온다.

B 여단장 측은 “광개토 기획 사업은 국방부 장관에게 독대 보고해 이미 추진 중이었던 사안”이라며 “공작 업무 특성상 사령관에게 보고하지 않고 장관에게 독대 보고한 것을 사령관이 나중에 알았고, 이에 대해 불만을 표출한 것”이라고도 고소장에서 주장했다. 직속상관인 정보사령관과 국방정보본부장을 두 단계나 건너뛰고 국방 장관에게 직보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국방부 관계자는 “정보사 임무 특성상 장관에게 직보하는 경우도 있지만, 사건이 불거지기 전까지 B 여단장이 주장하는 사업에 대해 신원식 장관은 보고받은 바가 없다”고 했다.

국방부 조사본부는 조만간 이번 사건에 대해 B 여단장 기소 의견으로 군검찰에 송치할 것으로 알려졌다. 양욱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정보사의 휴민트 기능은 완전히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정부 차원에서 국정원과 정보사 등에 분산된 정보 기능을 통합 관리해야 한다”고 했다.

한편 블랙 요원 명단을 중국인에게 흘린 의혹을 받는 정보사 군무원은 돈을 받고 정보를 건넨 정황이 수사에서 확인된 것으로 전해졌다.

☞정보사령부

해외·대북(對北) 군사 정보와 첩보 수집을 담당하는 국방부 직할 부대. 국방정보본부 산하에 있다. 사업가·유학생 등으로 신분을 위장해 현지에서 활동하는 ‘블랙 요원’ 등 정보 네트워크를 활용한 휴민트(인간 정보) 확보가 핵심 기능이다. 국군방첩사령부가 적국 등의 한국군 관련 첩보 활동을 막는 ‘방패’ 역할을 한다면, 정보사는 해외·대북 정보를 확보하는 ‘창’ 역할을 한다.